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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고사 희망에 대해

조한 2013.07.17 15:28 조회수 : 2162

 

 

글쓴이 : 조항준 글쓴날 : 2013/04/28 23:50 조회수 : 18

희망하지 않아도 되기를 희망하며

 

1) 거품이 꺼진 일본에서는 청년 세대를 미지근한 (warm) 세대라고 부르는 정신의학자도 나타났고

 

우 리 나라에서는 '나약한 세대'라는 주제로 특집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우리 수업에서는 EBS 특집 팀에게 이 관련해서 토론을 하기도 했다.) 또한 일본에서 이 청년들을 희망도 절망도 없는 세대, 득도(깨달음)의 세대라고 부른다는 기사도 나오고 있다. 동경대 겐다 교수는

 

희망은 좌절을 극복한 경험이 있어야 생기는 것이라는 점,

 

그리고 좁은 의미의 합리성을 추구하는 경향은 창의성과 유연성이 발현되는 것을 억제하기 때문에 상호 부정적 상관관계에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무슨 생각이 드는가? 자신의 삶을 희망이라는 단어로 꾸려온 적이 있는가? 이 면에서 부모님 세대는 어떤가? 희망이라는 단어를 중심으로 자기의 삶을 성찰하고, 세대론과 연결을 해본다.

 

 

 

 

이러한 말이 유행한 때가 있었다.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희망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다.” 이 말이 때로는 유명한 강사의 입에서, 때로는 종교지도자들의 입에서 심심치 않게 들리곤 했으며, 사람들은 따라서 희망이라는 단어로 쉽게 범주화되곤 했다. 현실에 불만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희망이라는 단어에 자신의 몸을 던져야했다. 아니, 그 선택 밖에 없었다. ‘희망의 유무로서 개인을 접근하다보니 이 세상은 잘못된 것 하나 없이 멀쩡하지만, 문제는 희망 없는 개인에게로 돌려졌다. 나를 포함한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희망혹은 비전마케팅에 자기 자신을 채찍질하는 것에 금새 익숙해졌고, 그러한 세상을 살았던 지금의 20대가 도달한 곳은 허무함내지는 공허감혹은 상처투성이의 무인도가 종점이었다.

 

 

나는 희망이라는 단어를 굉장히 좋아했던 사람이다. 내가 도달했던 곳이 허무함이었기에, 더 큰 희망을 품어보자는 구호는 현실이라는 어두운 방안에 내려오는 따뜻한 한 줄기 빛과도 같았다. 연세대 경영학과하면 누구나 알아주는 곳 아닌가? 하는 생각이 나를 건방지게 만들던 때였다. 그런데 나는 밀려오는 불안감과 학문이 던져주는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 신음했다. 그러면서도 어느 상황에서도 희망을 버리지 말자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실제로 희망이라 불리는, 내가 그리는 미래의 나 혹은 나를 둘러싼 환경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며 나의 현실에 나름대로의 진통제를 스스로 처방했다. 갑자기 아버지가 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집이 큰 빚을 떠안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때도 희망을 품어보려 애썼다. 이제 곧 나아질 것이라 아버지께서는 말씀하셨다. 당신이 평생 동안 모은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처럼 느껴졌을 텐데도, 아버지는 희망을 버리지 말라 하셨다.

 

 

희망이라는 단어는 우리 부모님 세대들이 격하게 반응하는 단어다. 이 세대는 우리나라의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격변기를 살아내신 분들이다. 경제대국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와 일본의 무조건 항복, 일제강점기로부터의 해방과 대한민국정부 설립, 한국 전쟁과 휴전, 경제개발5개년과 새마을운동, 민주화와 국제화, 세계화 등은 우리 부모님들에게 더 큰 희망이라는 것에 몸을 던질 것을 요구했다는 것에 공통점이 있다. 미국만 있으면, 더 많은 돈만 있으면, 성장만 하면, 민주화만 이루면 우리의 현실은 더 좋아질 것이라는 약속 하나를 붙잡고 그분들은 그렇게 열심히 살았다. 공부를 했다. 넥타이를 맸다. 저 거래만 하나 잘 붙잡으면, 회사에서 임원으로 승진만 하면, 내 귀한 아들, 딸들이 좋은 대학만 들어가면 내 암울한 현실은 나아질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희망의 끝을 잡고 그들은 20세기의 대한민국을 살아내었다. 그 모든 슬픔과 억울함의 중심에는 희망과 좌절이라는 단어가 서로를 정복하며 엎치락뒤치락 했다.

 

 

꿈을 꾸고, 미래를 정복하여 꿈을 현실화시키는 것에 모두가 달려들었지만, 이제 나는 그 꿈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CEO가 되겠다던 나의 꿈은 도대체 누가 심어준 것인가? 나는 이 꿈을 왜 꾸게 된 것인가? 3 때에 누구나 가지고 있었던 자신의 희망을 중심으로 이렇게 아리송한 질문들을 던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질문들은 세상에 근본을 이루는 ''에 직구로 던지는 질문이기에, 이 세상에서 돌려대는 쳇바퀴에서 멈추지 않고서는 그러한 질문을 던질 수가 없었다. 그래서 1년을 넘게 휴학을 하고, 다른 사람들이 품고 있는 꿈과 희망을 묻고 다녔다. 그런데 이를 어쩌나.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꿈과 희망이 공장에서 찍어낸 것처럼 똑같다. 조금씩 다른 색깔의 옷을 입고 있을 뿐, 그 옷을 벗겨보면 모두 같은 존재다.

 

 

그러한 세대를 보고 희망세대인 우리 부모님은 나를 보며 한숨을 쉬셨다. 미간을 찡그리며 도대체 무엇이 문제냐?’며 답답해하셨다. 어떤 이들은 젊은 세대를 보며 너무 나약하다라고 비난한다. 어떤 이는 싸움에서 진 패배자들이라 지칭하고, 어떤 이는 발 빠르게 처방전을 가져다가 우리를 힐링하려 한다. 부모님 세대에게는 이 젊은 세대들이 제발 좀 더 강해졌으면 좋겠다. 그래야 강함과 약함이라는 힘의 논리로 살아온 자신의 삶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게 될 테니.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청춘은 원래 아픈 것이라 위로할 수밖에 없다. 천 번이나 흔들려도 좋으니 제발 제자리로 돌아오라 한다. 하지만 청춘이 가지는 아름다움도 나이듦이 가지는 아름다움을 부정해야 얻을 수 있는, 경쟁의 논리이자, 정당화의 논리였다.

 

 

아뿔싸. 속았다. 이 세상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거짓말에 희망이라는 단어를 비겁하게 사용한다. 많고 많은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이 이 세상이라면, 그 많고 많은 사람의 숫자만큼이나 다양성을 인정해주는 세상이어야 올바른 곳일 터인데, 세상은 희망이라는 단어를 주입함으로 모든 사람들이 비슷한 미래를 그리게 만든다. 지금 경쟁하지 않으면 모두 망할 것이라고, 지금 당장 일어나 사람들을 밟고 일어서서 이 세상에서 최고가 되지 않으면, 당신은 가치 없는 인간이라는 눈에 보이는 뻔한 거짓말을 하고 있는 세상 앞에 우리는 그대로 속는다. 이것이 거짓말임을 아는 사람도 더러 있지만, 저항할 용기는 없다. 순응하거나,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공간 속으로 침전하거나.

 

 

희망이라는 것에 비관적이면서도 나는 또 다른 희망을 품는다. 우리의 꿈이 조금이라도 덜 같아지기를. 우리의 삶의 모습이 조금이라도 더 달라지기를. 나의 웃음이 진정한 즐거움으로부터 기인하는 웃음이기를. 아무리 힘이 빠져도 친구와 어깨동무를 할 힘만은 남아있기를. 세상이 우리를 뭐라 부르든, 우리가 가진 미지근함이 이 세상에 조용히 남아있기를. 이제 좀 찬란한 희망을 그만 품어도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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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고사 글쓰기 '에 대한 의견글

 

글쓴이 : 정혜윤 글쓴날 : 2013/04/28 23:24 조회수 : 14

그래도, 살아간다. 살아갈 것이다.

 

1. 꿈도 희망도 없다

 

 

우리 시대의 유행어다. 유행어는 사람들의 마음 밑바닥의 공통된 것을 담아낸다. 각자가 처한 맥락은 달라도 무수하게 적용될 수 있는 말은 공감을 먹고 생명을 얻어 퍼져나간다. 억지 미소를 지으면서 성추행을 참아 내며 시급보다 비싼 커피를 내리면서 뼈빠지게 일했는데 서울에서 숨만 쉬어도 돈은 남지 않는다. 남들 다 가는 거라서 우정을 파괴해가며 4년제 대학에 들어갔는데 새삼 적성을 찾기는 커녕 술만 먹게 된다. 연애, 결국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넘어서지 못해 깨어지기가 수차례다. 돈도 무지하게 든다. 그럼에도 외로운 마음을 의지할 누군가를 찾아 다시 사냥을 나서기 위해 섹슈얼리티를 가꾼다. 거울 속 현재의 몸으로 표상되는 자아는 쉬이 부정된다. 조급함에 떠밀리듯 꾸역꾸역 열심히 놀고 열심히 학점을 따려 아등바등하며 물에 술 탄 듯 술에 물 탄 듯한 밍숭맹숭한 세월을 보내고 나니 졸업을 해야한다. 취직이 하늘의 별 따기라 학교를 떠나기가 두렵다. 겨우 별을 따고 뒤를 돌아봤더니 기천만원의 빚이 남았다. 무한 경쟁의 신자유주의 시대, 라는 거창한 말보다 개인을 지치게 하는 것은 생활과 삶 그 자체다. 순간 순간 우리는 멘탈붕괴하며 중얼거린다. 안 될거야, 아마.

 

 

2. 젊은이들은 나약한가

 

 

고등학교 3년 내내 같은 반을 했던 친구 K가 있다. 애초에 공부에는 흥미가 없고 화장을 좋아했다. 중학생 때 이미 메이크업 자격증을 땄고, 전문대에 들어갔다. 나는 세 번의 수능을 치렀다. 이 친구가 졸업하며 사회로 진출할 때 나는 겨우 대학에 입학했다. K는 아모레퍼시픽의 백화점 화장품 매장에서 3개월의 인턴 근무 후 정직원으로 취직했다. 하루 12시간 노동하고 3천에서 35백 정도의 연봉을 받는다. K의 사촌언니는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나와 대기업에 취직했는데 K와 비슷한 연봉을 받는다. 나는 이제 겨우 대학을 1년 다녔고, 논술 아르바이트를 한다. 너그러운 고용주를 만나 하루 한 시간 정도의 재택 근무에 50만원의 월급을 받는다. 물론 K의 월급과는 비교할 것도 안 된다. 만나면 자연스럽게 K가 밥이나 술을 사고 나는 자잘한 군것질 거리를 산다. K가 취직한 지 13개월째, 우리는 한달에 한 번 정도 계속 만났다. 그녀가 하는 얘기는 항상 같다. 싫은 것들에 대한 것이다. 같이 일하는 누구가 어떻고 어떻기 때문에 싫다, 본사의 남자들은 현장 경험이 없어서 맨날 어이가 없는 지시를 내린다, 옆 매장은 8시간 근로인데 이렇게 힘들게 다니느니 그만두고 싶다 등등등. 저번 주에 만나서는 맥주에 소주를 말아마시며 K1년만에 이런 말을 했다. 맨날 자기 욕 하는 거 들어주느라 너도 힘들겠다고. 그래도 어쩔 수 없다고.

 

 

시험이 끝나고 오랜만에 본가에 갔다. 연근전을 먹으면서 어머니와 K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직을 고민하는데 엄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묻자 그렇게 금방 그만둬버리면 습관이 된다고 말했다. 어느 직장을 가든 장점과 단점은 공존하기 때문에 현재 상황에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직을 하더라도 적어도 3-5년은 버티며 경력을 쌓은 뒤에 하는 게 좋다고. 아니면 창업할 수 있을 만큼 자금을 모은 후에 그만두거나. 이어서 <아프니까 청춘이다> 같은 책을 읽고 힐링되는 젊은이들도 있지만, 우리의 현실을 모르니까 할 수 있는 '꼰대질'이라고 생각하는 친구들도 많다면서, 우리 세대가 나약하다는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바로 대답이 나왔다. 나약하지. 그건 사실이야. 하지만 단지 너네들만의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젊은이들이 꿈을 꿀 수 없게 만든 건 어른들이 만든 이상한 교육제도, 기형적인 입시제도의 탓이 크다. 게다가 체제에 순응하고 도전정신 없는 사람들이 선생님이 되어버리니까 모험 같은 건 가르치지도 않지. 나는 끄덕였다. 맞아. 하고 싶은 걸 하지 못 하게 만드는 교육제도는 너무 이상해.

 

 

3. 나에겐 꿈이 없었나

 

 

고등학교 2학년 때 우연히 대학생들의 MT에 끼게 됐다. 지부가 많은 어떤 봉사동아리의 MT였는데 유명한 분들의 강연을 듣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팀을 꾸려 몸을 움직이는 게임을 했다. 고등학생은 몇명밖에 없었다. 그 중에 5분 스피치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뭐가 됐든 간에 단상으로 올라가서 5분 동안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할까 말까 망설였지만 모두가 하는 분위기였고 무엇보다도 나는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나의 꿈에 대한 이야기였다. 17살까지의 나를 가장 강하게 붙잡았던 것은 꿈이라는 단어였기에 나는 그것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의 발표 차례를 기다리며 내가 가졌던 수많은 꿈들을 돌이켜봤다.

 

 

내가 제일 먼저 가진 꿈은 화가였다. 거실에 누워 그림을 그리는 건 행복했다. 자연스럽게 화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졌다. 어떻게 한 자리 숫자인 나이에도 불구하고 어떤 직업을 미래로 그렸다는 것이 지금 생각하기 약간 신기하다. 그 다음 꿈은 요리사였다.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셨고 나는 혼자 집에 있을 때가 많았다. 가스레인지는 내 목 정도의 높이에 있었지만 나는 꿋꿋이 요리를 했다. 다른 어머니들과 달리 나의 모친은 내가 부엌에 들어가는 것에 대해서 걱정하거나 말리지 않았다. 핫케이크, 계란 후라이 등 가벼운 요리를 . 머핀도 굽고 다양한 것을 만들어 봤다. 요리를 해서 엄마 회사에 가져다주면 엄마가 참 좋아했다.

 

 

초등학교 4학년이 되어서는 학교에서 바둑을 배웠는데, 나에게는 환희와 절망이었다. 하나하나 배워가는 것이, 다음 수를 들여다 보는 것이 너무나 즐거웠다. 바둑 교본을 열심히 풀고, 열과 성을 다해 바둑을 뒀다. 승부욕이 강한 나는 한 판 한 판에 정말 열심을 다했다. 감정을 엄청나게 이입해서, 승리하면 너무나 즐거웠고, 패배하면 그 자리에서 소리내어 엉엉 울어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엄청난 민폐지만, 그만큼 순수했다. 지역대회에서 두어번 작은 상을 타고, 아버지와 바둑을 두고, 바둑 티비 프로를 시청했다. 내 삶에서 그 이전으로도 그리고 지금까지도 바둑만큼 나를 강하게 사로잡은 것은 없었다. 나는 확신을 갖고 아버지한테 말했다. 바둑 기사가 되고 싶다고. 그런데 아버지는 절대 안된다고 말했다. 이세돌이나 이창호 같은 프로 바둑기사는 보통 10살 때 바둑 기사로 데뷔한다고. 너는 11살인데 16급밖에 안 되면서 기사가 되겠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냥 취미로 둬라. 아버지의 말씀은 절대적이었고, 나는 정말 많이 울었다. 혼이 빠지도록 울었다. 나는 11살밖에 안됐는데 벌써 늦어버렸다. 억울했다. 10살에 바둑을 알게 된 게 너무 억울했다. 10살에 데뷔할 만큼 똑똑하지 못했던 게 억울했다. 아니 그냥, 바둑을 내 꿈으로 키울 수 없다는 게 억울했다. 아버지는 취미로 하라고 했지만 그 때의 나에게 바둑을 절대 취미가 될 수 없었다. 내 생각과 감정을 가장 지배하는 모든 것을 어떻게 취미로 삼나. 나는 그렇게 좋아했던 바둑을, 바둑 기사가 될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자마자, 그만 둬 버렸다. 아무리 좋아하고 열심히 한 들 내 직업으로 삼을 수 없었기에 그만 둬 버렸다.

 

 

그러고 나서는 만화책을 많이 보면서 만화가를 꿈꿨다. 그림을 많이 그렸다. 아주 많이 그렸다. 초등학교 고학년때부터 중학교 1학년 정도까지 수업은 거의 듣지 않고 그림만 그렸다. 선생님들이 노골적으로 눈치를 주거나 화내기도 했지만 아랑곳 않았다. 일주일에 한 권 정도를 그렸는데 정말 하찮은 그림들이었지만 책장에 다 쓴 연습장을 빼곡히 채워넣으며 뿌듯함을 느꼈다. 1의 여름방학때는 집에서 하루에 10시간씩 컴퓨터로 그림을 그렸다. 다시 생각해도, 그 때 만큼 온전히 차올랐던 때는 드물다. 2때부터는 학원을 다니면서 공부도 열심히 했지만 여전히 그림을 많이 그렸다. 나는 고등학교에 갔고, 생각보다 성적이 좋았다. 전교 1등도 몇 번 했다. 그런데 미대에 가고싶었다. 한 번 좌절당한 경험이 있었기에 나는 조심스럽게 내 꿈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부정당했다. 이유는 간명했다. 공부를 잘 하니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을텐데 뭐하러 사서 고생하냐. 미대 입시할 때 한달에 3,4백씩 드는 돈 감당할 수 없다. 너 중학교 때 잠깐 학원 다녔었지, 그 때 학원 원장이 뭐라고 했는지 알아? 뭐라고 했는데요? 너 정도면 그냥 평범한 재능이래. 특별할 거 하나도 없다는 거야. 재능이 없다고. 재능도 없이 미술해서 뭐 먹고 살래? 예체능이 얼마나 힘든지 알아? 후회해. 상처를 주려고 작정하고 내뱉는 말들 같았다. 가슴 아팠고, 울었지만, 처음 거부당한 게 아니었기 때문에 좌절이 크지는 않았다. 사실 나는 좋아하는 만큼 자신감이 있지는 않았고, 부모님의 반대도 예상했던 바였다. 생각해보면 부모님의 모든 반대는 나를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한 것이었다. 결국 나는 그 뒤로는 가능한 꿈들만을 꾸며 입시를 준비했다.

 

 

4. 그래서

 

 

첫 수능은 잘 봤다. 원서영역에서 망했다고나 할까. 안전하게 생각했던 과가 오히려 커트라인이 높았고 생각해 본 적도 없던 재수를 했다. 군대와 인권 상황이 비슷한 기숙학원에서 수능만을 생각하며 피폐해졌다. 현역 때보다 수능을 못 봤고, 절대 가기 싫었던 모 여대를 갔다. 정말 죽어라고 열심히 한 것 같은데, 수능 점수는 생각대로 나오지 않았다. 물론 두 문제만 더 맞았어도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었다. 아버지한테는 내가 많은 걸 포기했던 1년을 의심받는 질타를 들었다. 그 때만큼 아버지가 원망스러울 때가 없었다. 이것도 안되고 저것도 안되고 공부해서 좋은 대학 가라더니, 못 가게 되니까 이제는 나의 열심을 의심했다. 그의 안타까움에서 발로했음을 안다. 그래도 상처는 받는다. 자라면서 모든 꿈을 거부당하고 원하는 대학마저도 가지 못했던 내 마음은 너덜너덜했고, 학교에 거의 가지 않고 침대나 침대 옆에 누워 시체처럼 공기만을 먹고 지냈다. 자주 우울했지만 살면서 그만큼 우울했던 때는 없었다. 우울하다는 느낌도 없을 정도로 우울했다. 힘이 없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하고 싶지 않음, 이라고 표현할 만큼의 의지도 사실 없었다. 공허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낸 하루가 쌓여갔다. 가끔 담배나 피웠다. 두어달을 그렇게 보내다가 이대로는 그냥 죽겠구나 싶어 학내의 인권단체에 가입했다. 내가 꿨던 가능한 꿈들 중의 하나였기 때문에. 그리고 수많은 가치관과 경합하며 나를 만들어갔다. 기력을 되찾고, 다시 수능에 도전했다. 성공이라고 부를 만한 결과를 얻었다. 그런데 문득 그렇게 바라던 SKY 대학에 입학하고 나니 다시 허무감이 나를 찾아왔다. 뭐야. 별 거 없잖아. 마땅히 자연스럽게 즐겁고 발랄해야 함에도 구석에 자리한 억울함과 허탈함 때문에, 꾸역꾸역 일정을 채웠다. 할 수 있는 건 모두 다 해보고 싶어 이것저것 앞 뒤 안가리고 덤볐다. 충만하고도 정신 없이 대학 생활을 보냈다. 겨울방학이 되어서야 내가 지쳤다는 걸 깨닫고, 마음의 여유를 갖고 쉬면서 내 속을 구경할 수 있었다. 쉽지 않게.

 

 

5. 현재, 현실

 

 

고등학교 3학년 정도까지 나는 꿈이라는 거에 어마어마하게 집착했다. 지금의 나조차 믿기지 않게도 엄청나게 신자유주의적인 인간이었다. 경쟁은 당연한 것이며 심지어 좋기까지 하고, 내가 그것에서 승리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좌절과 실패의 경험은 나에게 꿈에 대해 의심하게 만들었다. 스무살이 넘어 세상이 뭔지에 대해 직접 보고 글로 읽고 타인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생각했던 것 만큼 세상이 좋은 곳이 아니란 걸 알게 됐다. 다 이루지는 못했을망정 꿈을 꿀 수라도 있는 환경이었다는 게 감사한 세상이었다. 그런 세상이었다.

 

 

6. 정말로 20대는

 

 

나약하다. 나약할 수밖에 없다. 결정하는 것이 두렵고, 스스로 멋대로 해버리는-하고싶은 것에 대해 자신이 없으며, 자신을 강박처럼 의심하게 되고, 좌절하지 않기 위해 기대를 하지 않게 된다. 사회에 대해 알고 싶지 않거나, 알더라도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없거나 매우 미미하다고 생각한다. 끔찍한 현실을 알게 되면, 투지가 타오르기 이전에, 내가 이런다고 뭐가 바뀌나, 그런 질문을 던지게 된다. 지젝이 표현한 거짓 긴박감만이 감돌지만 '그러나 나도 힘들어.'라는 말도 자위할 뿐이다.

 

 

7. 그럼에도 나는

 

 

꿈을 꾼다. 어떤 직업을 갖고 싶다는 꿈은 더이상 꾸지 않는다. 다만 내 삶을 추동하는 무언가를 순간 순간에 찾으려 노력한다. 작은 꿈과 간간한 희망들로 인간은 살아간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죽음을 두려워했다. 내가 열심히 살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욱 그랬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열심히 살아가는데 어느날 죽어버리면 모든 게 허무하겠구나. 죽음에 대해 생각하면 등이 싸늘해지면서 몸을 웅크리게 된다. 어찌할 줄 몰라 발가락만 쳐다보게 된다. 죽으면 어떡하지. 죽어버리면, 내가 없어지는 걸까. 그런 생각들을 이어서 하다보면 눈 앞이 하얗게 된다. 가끔 찾아오는 그런 감각을 떨치려 노력한다. 죽음에 대한 무수한 생각 끝에 내가 내린 잠정적 결론은 결국 이거다. 삶 그 자체가 희망이라는 것. 두려움과 즐거움, 좌절이나 절망이나 희망까지도 내가 살아있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것이라는 것. 때로 즐겁거나 자주 우울해도 이야기를 나눌 사람들이 있는 세상이기에 삶은 계속되고 나는 계속해서 작은 희망을 던진다. 사실 대부분의 삶은 상처다. 그래도 자조섞인 웃음과 솔직한 분노로 상처에 밀랍을 덕지덕지 바른다. 그냥, 계속해서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살고 싶다. 사람이, 당신이 나의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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