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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있는 마을

조한 2013.06.06 07:03 조회수 : 528

 


[조한혜정 칼럼] 아버지가 있는 마을



한겨레


조한혜정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서울 도심부에 있는 작은 마을의 진화를 다룬 다큐멘터리 <춤추는 숲>이 상영중이다. 어린 소년이 뿌리가 드러난 작은 나무를 도닥거려주는 장면에서 눈물을 흘리고 말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남자도 참 아름다운 존재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근대 자본주의 체제 최악의 시나리오는 공적 영역이 가정영역을 압도해 측은지심의 재생산이 불가능해지는 상황을 초래하는 것이다. 공공영역이 아버지들을 독점하고 어머니들까지 포섭해, 마침내 개인의 가장 친밀하고 원초적인 호혜공간인 가정영역이 사라지게 되면 그 사회는 망하고 만다. 현재 한국 사회는 이 최악의 상태로 나아가고 있다. 아버지와 절반이 넘는 어머니들이 경제 생산 활동에 참여하며 숨가쁜 일터의 속도에 몸을 맡긴 채 자녀를 시장에 ‘외주’ 주어 키우고 있다. 그나마 바깥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전업주부들도 자녀의 명문대 입학이라는 분명한 목적을 두고 달리게 되며 직장인들 못지않게 성과와 효율성에 집착하게 되었다. 가정이 남편의 투자와 아내의 정보력으로 운영되는 ‘주식회사’로 변해버린 것이다. 그런데 가족이란 친밀한 관계를 키워 가는 곳이기에 아버지가 아무리 투자를 많이 한들 함께 나누는 시간을 내지 못하면 설 땅을 잃게 된다. 투자하는 금액에 비례해서 경제적 동맹자로서 예우를 받기는 하겠지만 아내가 만들어낸 친밀한 ‘자궁가족’에 끼어들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말이다. 게다가 아버지들의 투자 능력은 점점 불안정해지고 있지 않은가? “주말부부가 되려면 3대가 공을 들여야 된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남편은 귀찮은 존재가 되었고 ‘기러기 가족’이 오히려 자연스럽고 성공적인 가족인 듯 간주되는 현실이다. 이를 간파한 영리한 남자들은 독신의 삶을 선택하고, 돈 잘 버는 중년의 가장은 가정에서 겉돌다 딸 또래 젊은 여성의 뒤를 밀어주는 원조교제형 연애에 빠져들기도 한다. 아버지 표류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춤추는 숲>에는 표류하지 않는 아버지들이 등장한다. 어린이집 페인트칠을 하고 대안학교를 만드는 아버지들이다. 이들은 아기가 태어날 때 아내와 함께 진통을 겪으며 지켜보았고 아기 기저귀를 채우고 목욕을 시키고 이유식을 먹이며 아이와 깊은 정을 쌓아간 남자들이다. 이들은 아기를 안고 있을 때 밀려오는 사랑의 감정을 우주의 축복으로 기억하고 있으며, 아기가 도마뱀처럼 쏜살같이 기어다닐 때 울타리가 되어주었다. 아이가 원숭이처럼 어디건 올라가려고 발버둥칠 때 기어오를 나무가 되어주고 아기가 걸음마를 시작했을 때 아이보다 더 자랑스러워했을 사람들이다. 이들은 아이들과 보낼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노동시간을 줄이고 부부가 가정의 소비를 줄여가기도 했다. 아이들과 보낼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직장을 옮기거나 동네 안에서 해볼 일거리를 만들어낸 아버지들도 있다. 이들은 아이들의 주요 놀이터인 동네 숲이 훼손될 위기에 처하자 서슴없이 공사 현장에 텐트를 치고 나무 위에 올라가서 포클레인과 대치해 싸운다. 어처구니없는 싸움의 와중에 지역 정치의 중요성을 깨달은 이들은 부모 중 한명을 구의원에 출마시키기도 한다. 세상일이 힘으로만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일러주려고 아버지들은 아이들과 산에 올라 숲을 지켜달라는 정성스런 기도를 올리기도 한다. ‘노찾사’의 노래와 비틀스의 ‘렛 잇 비’, “냅둬요”를 부르는 100인 합창공연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다. 아이들과 노래하는 유쾌한 모습에서 나는 아름다운 남자들을 본 것이다. 아버지들이 사랑과 존경을 받는 날이 오기를 고대한다. 아버지들은 더는 사악한 공공영역에 목매지 말고 아이들 편에 서서 선한 공공영역을 만들어내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숲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자란 아이는 잉여인간이나 좀비가 되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을 괴물로 만들어가고 있는 ‘폭력이 구조화된 학교’를 바꾸어내기 위해 마을을 ‘발견’할 때가 온 듯하다. 아이의 손을 잡고 골목길을 걸어서 학교까지 데려다 줄 수 있는 그날을 위해 가정과 공공의 경계에서 아버지들이 해야 할 일이 적지 않다. 우선 주민자치회관에서 <춤추는 숲>을 모여 보면 어떨까? 조한혜정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선생님, 

글 읽어보고 아주 간단한 수정(예를 들어 따옴표라거나)과 글자수를 맞추었습니다.

 

사냥꾼들의 시대가 초래한 '사냥의 범람'이 가정까지 침입했을 때에 겪게 될 불행들을 그토록 많이 알고 있고, 또한 그러한 사냥꾼들... 남성들이 지금 사회에서 설 위치는 점점 요원해지는데, 그 와중에 성미산 마을에 사는 남성들(아버지들)은 남성들이 잃어가는(본래부터 배우지 못한..) 가치들에 대해 다시금 깨닫고 실천한다는 것이 감동적이에요. 한편으로는 전 그럼에도, 여 전히 성미산 마을의 남성상은 계급적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기도 했었는데, 지금 화이트칼라 계층의 남성들은 계급적으로 상위 클래스임에도 불구하고 선택하지 못하고 있는 '제 3의 길'(?)에 대해서 이 영화가, 그 삶이 더 행복할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참고자료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물론 그 구조를 탈피하려면 포기해야 할 것들이 많겠지만 그 포기가 실은 더 많은 얻음일텐데. 저희 아버지도 나이가 들어서야 가정에 복귀한(?) 사례라 할 수 있는데, 여전히 저와의 서먹함은 저도 극복이 힘들거든요... 많은 아빠들의 비애이자, 미래겠지요... 

 

그 리고 전 무엇보다 이러한 아버지들이 키워낼 아이들이 궁금해요. 유럽 여행 갔을 때에 참 한국사회에서만 살아온 저에게 매우 인상적이었던 것은 의외로, 그토록 많은 유모차를 끄는 아빠들이었어요. 박물관, 미술관, 공원, 길거리.. 어딜 가도 갓난 아기들의 유모차를 미는 건 대부분 아빠들이었거든요. 저 역 시도 전혀 그러한 가정에서 자라지 않았고,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젊은 부부들이 아니면) 그런 모습은 낯선 편에 속한 것이었다는 생각이 유럽에 가서야 새삼 많이 느껴지더라구요. 그래서 아빠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고, 저렇게 아빠와 가까이 자라온 아이들은 분명 커서 나와는 다른 사람으로 자라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들구요.(그래서 나중에 내 아이의 아빠를 선택하게 될 때는 그게 매우 중요한 필터링이 될 수 밖에 없으리라는 예상을 하고..ㅋ) 훨씬 많은 사랑과 덜한 결핍을 갖게 되지 않을까... 한국 사회에서 그동안 참 드물고, 또한 경시되오던 것아 아빠의 보살핌, 양육에 있어서의 아빠의 중요함이었던 거 같다는 생각도 새삼스레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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