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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후쿠시마 시대를 사는 하자작업장학교 이야기

조한 2013.05.24 07:40 조회수 : 1330

 

포스트 후쿠시마 시대를 사는 하자작업장학교 이야기

 

하자작업장학교는 2001년 하자센터의 탈학교 청소년들이 학교만들기프로젝트를 통해 설립한 학교입니다. 당시 센터장이던 조한혜정교수(연세대학교 인류학과)와 저를 포함한 하자센터의 몇 사람이 그 기획을 적극 도왔고, 당시로서는 좀 낯선, 도시형 비인가 대안학교가 만들어졌던 것입니다. 그리고 십 년째 되던 해 2010년 하자작업장학교는 두 번째 십년을 준비하며 다시 한 번 학교만들기를 진행했습니다.

 

2010년 하자센터는 낡은 건물의 보수공사를 진행중이었고 아주 더운 여름을 지내며, 저와 일곱 명의 하자작업장학교 학생들은 시즌2학교의 방향을 잡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가장 더운 폭염 속에서 종로구 쪽방촌에 들어가 폭염시 쪽방촌 노인들의 건강영향 평가조사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기후변화연구소와 사회의학연구소의 협력프로젝트의 조사원들이 되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하자청소년들이 비교적 다양한 사회적 관심을 가지고 있기는 했었지만, 2주동안 매일 이른 아침과 가장 뜨거운 한낮에 어르신들을 만나 체온을 재고 혈압을 재면서, 어르신들의 삶의 환경을 근접하여 만나고, 개인사와 넋두리와 하소연을, 더운 쪽방에 무릎꿇고 앉아 귀기울여 들으면서 마음에 깊은 상처와 충격을 받았습니다.

 

서울처럼 번화한 메트로폴리스에 왜 이런 마을이 있는가? 이 마을의 어르신들은 폭염속에서 종이 한 장보다 작은 창문마저 마음대로 열지 못하는 쪽방에 갇혀 이러고 있는가? 두 사람이 겨우 어깨를 닿지 않고 지나갈 수 있는 거미줄같은 좁은 골목길에 아침부터 만취하여 큰소리를 지르며 방안의 노인들을 겁먹게 하는 장년의 남자들은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가? 그들을 미워해도 좋은가?

 

미움에 대한 얘기가 나오고 나서, 학교 만들기팀에게 있어서 가장 좋은 단어였던 행복의 의미는 상당히 선회했습니다. 그전까지의 질문, 대안학교학생들에게 익숙한 질문인 나는 이런 공부를 하면/이런 일을 하면 즐거운가? 그래서 행복한가?’라는 것이, 이제부터 나의 행복은 쪽방촌의 행복과 더불어 함께 물어져야 한다는 좀더 답을 성취하기 어려운 질문으로 바뀐 것입니다.

 

그 여름의 끝자락, 하자센터가 진행중이던 프로젝트에도 참가할 겸 학교 만들기의 마무리작업을 위해 들렀던 제주도 서귀포의 한 마을에서 만난 노인들은 이런 말도 했습니다. 우리는 전쟁과 4.3에 얽힌 지난 역사를 너무 상세히 얘기하고 싶지 않다. 덮어두고 싶다. 누가 누구에게 무슨 짓을 했든 앞으로의 세대는 평화만을 생각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서울, 마침 정대협 20주년 기념심포지엄이 열리고 있어 모두 함께 들렀습니다. 학자들과 활동가들이 단상에서 갑론을박할 때 갑자기 한 할머니가 울분을 터뜨리며 소리쳤습니다. 보상은 필요없어! 우리가 원하는 건 정의란 말이야. 정의의 심판 없이 무슨 보상이며 무슨 평화야. 그런 건 다 거짓말이야!라고.

 

행복한 삶에 대한 질문은 어느 곳에 닻을 내리고 시작할 수 있을까요? 겨울이 되자 가축들의 살처분 때문에 충격을 받았고, 다시 봄이 되어 아직 추위도 가시지 않았을 무렵,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났습니다. 좀 더 충격적이고 절망적인 사건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행복에 대한 질문을 꺼내놓고 들여다보기 전에 너무 많은 일들이 일어나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뒤이은 사건 때문에 앞의 사건이 잊혀지고 더 강력한 사건 앞에서 이전의 충격은 둔감해지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그럴수가?!

 

가장 투명한 눈으로 세상을 들여다보고 삶을 채워나가는 학습의 공간인 학교에서 어떤 공부를 해야하는 걸까? 공부가 의미는 있을까? 다행히 아주 소수의 인원이었기 때문에 학교의 모든 공부를 잠시 중단하고 핵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잘 알아듣지 못해도 핵관련 심포지움이나 토론회를 따라다니며 시작한 핵에 대한 공부는 곧 탈핵에 대한 공부로 이어졌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뭐야? 뭐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어.라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2년이 지난 지금 하자작업장학교는 그 사이에도 계속 변화하고 있습니다. 교사와 학생이, 그래서 학교가 무언가를 계속 새로 배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에너지에 대해서 배우고 만들고, 먹거리에 대해서 배우고 재배하고, 목공이나 철공에 기반한 적정기술도 익히면서 학교의 모습도 내용도 자꾸만 달라지고 있습니다. 어디까지 어떻게 달라질지 계산하지 않고 지금은 열심히 변화하고 있습니다.

 

평화롭고 행복해야 한다는 원칙만은 지키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평화와 행복은 의 것만이 아니고, 여전히 쪽방촌의 행복과 제주의 평화와 함께이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작년에 하자센터 주변과 옥상에 시작했던 텃밭프로젝트는 올해는 문래텃밭과 선유도공원으로 넓어졌습니다. 작년까지는 가방에 꼬박 챙겨다녔던 텀블러와 수저집이 있었는데, 올해에는 전에는 하지 않던 오관게를 하고 밥을 먹게도 되었습니다. 텀블러와 수저집을 가지고 다니면서 익숙해지고 했던 학교의 문화형식은 오관게 덕분에 걱정, 감사, 기도를 통해 다른 내용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전에는 분리수거를 열심히 하려고 노력했는데 올해는 작년부터 시작한 퇴비/액비 만드는 일과 지렁이농장이 자리를 잡아 덕분에 좀 다른 분리수거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작년 내내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만나고 가르침을 받았던 적정기술 장인들은 이제 적정기술학교를 계획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하자작업장학교의 청년과정도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적정기술장인들과 청년들이 함께 만든 화덕이며 벽난로며 난로들이 도시형 대안학교인 하자의 모습을 아주 많이 바꿨습니다. 심지어 옥상에는 한 평짜리집도 짓고 있어요. 뚝딱뚝딱 망치질이나 톱집을 하면 사람들이 정말 궁금해하지요. 화덕에 넣을 장작을 팰 때는 도끼 좀 한 번 만져보자는 분들도 꽤 있습니다. 작년에 해둔 김장은 신퉁방퉁하게도 여전히 맛이 있고, 화덕에 불지펴 김장김치로 만든 김치찜이나 시래기된장국을 자주 해먹게 되었습니다. 요즘은 채소를 많이 수확해서 하자센터의 사람들과 나누기도 하고, 이중 일부는 하자센터에서 독립한 케이크 가게에 팔게 되었습니다. 화덕을 활용한 동네나눔부엌을 하자는 제안도 받았습니다. 그렇게 뭔가 달라진, 재밌는 일들이 많이 생겼지요.

 

그런데 요즈음은 아침 저녁으로 밀양으로부터 오는 긴박한 소식들을 접하고 있습니다. 서울에 어떻게 쪽방촌이?하던 학생들의 놀라움은 이제, 우리 사회에 어떻게 밀양과 같은 상황이?라고 묻고 있습니다. 페이스북에 학생들은 , 어떡해! 이제 그만해!’라고 안타까운 탄식으로 댓글을 달고 있습니다. 밀양의 어르신들과는 여러 번 만났고, 밀양에 내려가 두 개 마을을 행진하며 퍼레이드 공연도 하고 흙벽돌을 지고 산위에 있는 집을 짓는 일도 조금 도와드렸었기 때문에 밀양과 밀양의 노인들은 하자작업장학교의 학생들에게 특별한 애정과 존경의 대상이 되어 있었습니다. 존경하는 어른들을 하자 청소년들이 어떻게 지킬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그런 것들이 저희 학교 학생들에게 중요한 일일 것입니다.

 

한 가지 덧붙이면, 올해 처음 생긴 것은 청년과정뿐 아니라 중학과정도 있습니다. 목공과 자전거공방 기술 같은 실과교실로부터 시작한 학교입니다. 지난 주말에 중학과정학생들만 내성천에 다녀왔습니다. 고등과정이나 청년과정에서 함께 갔더라면 무척 심각해졌을지 모르지만, 중학과정 학생들은 지율스님을 따라 걸으며 꽃등을 만들고 물놀이 하는데 흠뻑 빠져서 그저 신나게 놀다왔다고 했습니다. 한 두 해 지나 철이 들 때 즈음이면 이 학생들 또한 지율스님 법복 자락에 그림자 드리우던 꽃등의 아름다운 불빛과 모래 강, 함께 놀던 친구들을 그리워하게 되지 않을까요. 그렇게 마음에 하나씩, 소중한 것, 마음 쓰이는 것, 그리운 것을 만드는 학교의 상태를 잘 유지하려고 합니다.

 

2013. 5. 23. 하자작업장학교 히옥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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