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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방쓰는 부부 (자궁 가족) 4월 27일자

조한 2013.04.29 07:11 조회수 : 1099

 


[한겨레] [토요판/가족] 각방 부부

부 부 사이가 나쁘지 않은데 각방 쓰는 사람이 많습니다. 사실 전 ‘쿨하다’고 생각했는데, 김미영 서울가정문제상담소 소장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이 멀어지는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자녀라고 합니다. “자녀는 부모를 보며 인간관계와 역할을 배우는데, 각방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그게 자연스러운 부부생활인 줄 알게 된다”고요.

아이는 밤새 울고

남편은 아침 출근

서로 다른 방 쓰는 게

배려인 줄 알았다

애들도 다 컸는데

함께 잘 순 없는 걸까

내겐 관심없는 아내

집에 있으면 뭐하랴

몸도 마음도 멀어졌다


아이에게 아내를 뺏겼다.

오 늘도 남편은 혼자 침대에 누웠다. 온종일 회사에 있다 집에 오면 안방엔 사람 온기 하나 없다. 전업주부인 아내가 집을 지키고, 초등학생 두 아이 탓에 집안은 시끌벅적하지만 이곳만은 예외다. 셋이 하루 내내 붙어 있어 놓고도 밤이 돼도 떨어지질 않는다. 방이 네 개나 되지만 셋은 늘 한방에서 함께 잔다. 첫째가 태어나고 12년 동안 부부는 각방을 썼다.

각방의 시작은 ‘배려’였다. 첫째는 여느 아이들처럼 밤마다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그때마다 잠을 설치는 내가 안쓰러웠던 아내는 아이를 데리고 옆방으로 갔다. 아침 일찍 일어나 출근하는 나를 푹 재우고 싶었던 거였다. 혼자 푹 자는 게 미안했지만, 고맙기도 했다. 또 그만큼 열심히 일하는 게 내 몫이라고 생각했다.

아이가 3살이 되던 해 둘째가 태어났다. 큰애가 어느 정도 컸으니 따로 재워도 되겠다 싶었는데, 그때 또 아기가 생겼다. 둘째라고 밤에 달랐겠는가. 똑같이 우는 아이를 아내는 계속 데리고 나가 재웠고, 그 바람에 첫째도 엄마랑 함께 계속 밤을 보냈다. 또 참았다. 아이들을 위한 일이니까. 아이 둘 챙기기도 어려울 텐데 나까지 챙겨달라면 아내가 힘들어할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아이에게 몰입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배려인 줄 알았다.

아 이가 어린이집에 가고, 유치원에 가고, 초등학교에 입학해도 각방 생활은 계속됐다. 태어난 뒤 엄마와 늘 함께 잤던 두 아이는 엄마 없인 잠을 못 잤다. 그래도 어쩌다 하루 정도는 함께 자줄 수는 없는 걸까. 함께 자자고 몇 번을 요구했지만 아내는 “피곤하다”, “아이 돌봐야 한다”며 거절했다. 아이가 배고프다고 하면, 울 때면 전쟁터에 투입된 군인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더니 남편을 위해서는 왜 아무것도 하지 않을까. 왜 아이에게 하는 것의 10%도 남편에겐 못 해주는 걸까. 남편이 보기에 아내는 아내이기보다는 아이 엄마일 뿐이었다. 남편은 거절할 게 뻔한 잠자리 요구를 자존심 때문에 더는 하지 않았다.

욕구 불만이 커져갔다. 처음엔 인터넷을 보고 해결했지만, 점점 밤 문화의 유혹에 빠졌다. 욕구도 욕구지만 반겨주는 사람 없는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새벽 3시, 4시, 5시…. 아내는 술 냄새에 짜증을 냈고, 아이에게 관심이 없는 매정한 아빠로 매도했다. 아내를 12년이나 아이들에게 빌려줬는데 매정한 아빠라니.

남편은 가족을 사랑하지 않는 게 분명하다고 아내는 생각했다.

남 편은 만취해서야 술 냄새 풀풀 풍기며 아내에게 말을 건다. 뭐 잘했다고 늦게 들어와서 자는 사람 깨우는 건지. 주 5일 근무하면 주말에 집안일도 좀 하고, 애들 데리고 나가서 놀아주면 어디 덧나나? 애들한테 아빠가 얼마나 필요한데. 불만은 입으로 터져 나온다. 남편은 그걸 잔소리라며 화를 낸다.

각방 생활? 아내는 불만도 문제도 없었다. 남편이 싫어서가 아니라 애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생활이었다. 남편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둘 중 하나라도 편하게 자는 게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남 편이 “이제 그만 나랑 자면 안 돼?”라고 말한 적은 있었다. 애가 밤새 앙앙 우는데 그걸 그냥 뒀다가 성격 나빠지면 어떻게 하나 싶어 거절했다. 애가 많은 것도 아니고 달랑 둘인데, 남 못지않게 키우려면 신경 쓸 게 많다. 공부만 잘하면 되나. 텔레비전을 보면 부모가 제대로 돌보지 않아 성격이 이상해지거나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이 많이 나온다. 아이 나이에 맞게 제때 필요한 걸 해주지 않으면 엇나가게 돼 있다. 그런 불안 때문에 아내는 낮이고 밤이고 자신의 에너지의 99%를 아이에게 쏟아부었다. 남편도 ‘아이에겐 엄마가 중요하다’며 은근슬쩍 자녀 교육 잘하라고 압박하기도 했다.

그렇게 두 아이에게 내내 시달리고 난 뒤 만나는 남편의 손길이 아내는 부담스러웠다. 육아 스트레스만도 벅찬 아내는 ‘남편 수발’까지 들며 힘 빼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어색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부부관계 맺은 게 언제인지 까마득했다.

그래도 그게 매일 밤늦게 여자들이랑 놀다 들어올 만큼 속상한 일이었다면, 좀더 다정하고 적극적으로 구애해야 했던 게 아니었을까. 남편이 이상해졌다. 자정은커녕 아침이 다 돼 가는데도 집에 오질 않는다. 술 냄새 풍기는 옷을 정리하다 보면 웬 여자의 흔적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컴퓨터 하다 발견한 이상한 동영상들은 또 뭔가.

아내는 가족 해바라기가 되고 싶지 않았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다. 모두 집을 떠나고 나면 아내는 친구들을 만나러 밖에 나갔다. 처음엔 아이들 학교 끝날 시간에 맞춰 돌아왔다. 밖에서 속상한 일 풀고 나니 남편이 그러건 말건 눈에 안 들어왔다. 친구들과 만나 술 마시며 웃고 떠들다 보니 새벽 귀가가 늘어났다. 학교 마치고 학원 갔다 돌아온 아이들은 배달음식으로 저녁을 먹였다. “엄마도 아빠처럼 바빠”라고 떨어지기 싫어하는 아이들을 달랬다.

아내에겐 ‘명품 가족’이란 자부심이 있었다. 좋은 직장에, 충분한 월급에, 공부 잘하는 착한 애들까지 남에게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아내와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 남편, 애정 결핍으로 밖으로 도는 아내, 불안해하는 아이들… 이제 보니 ‘짝퉁 가족’이었다.

남편은 밤에 아파트 단지를 산책하는 부부들을 가끔 가만히 바라본다. 우리 부부는 이 시간에 각자 나가 술 마시고 못된 짓도 하는데, 저런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 걸까? 아이를 조금 일찍 독립시켰다면, 아이에게 주는 관심을 조금만 서로에게 나눴더라면 아내와의 관계가 조금은 달랐을까? 남편도 아내도 이혼을 원하진 않는다. 그러나 서로에게 집중하지 못한 시간이 너무 길어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지 막막할 뿐이다.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