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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림 건축상 심사를 하고 쓴 글 (일상을 만나는 건축)

조한 2013.04.01 00:17 조회수 : 2562

 

일상을 만나는 건축, 착한 일 하면서 먹고 살기

 

조한 혜정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훌륭한 건축가는 모두 인류학자라고 나는 생각한다. 인류학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와 그들이 지향하는 가치, 그리고 그런 상호작용이 만들어낸 권력구조를 특정한 시간과 공간의 틀 안에서 탐구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인류학자가 현장에 가서 ()주민과 만나는 것은 건축가가 건축주들과 만나가는 과정과 기본적으로 같다. 상대를 만나기 위해 둘 다 참여관찰과 심층면접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그래서인지 나는 건축학계 분들과 오래 전부터 친분을 쌓아왔다. 그 쪽에서 부르면 몸을 아끼지 않고 달려가서 기꺼이 협업을 하는 편이다. 이번 공모전도 그런 맥락에서 참여를 했고 또 참여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그간 나의 협업 이야기를 좀 해보면, 1980년대에 연세대 건축학과 김성우 교수와 연세대 앞 신촌 거리를 좀 바꾸어보자며 공동 수업을 했었다. 우리는 그 수업에 건축가들과 신촌 문화운동가들을 초대했고, 건축학도와 인류학도들로 하여금 팀을 짜서 신촌 탐사를 하게 했다. 신촌 주민들의 심층 인터뷰와 현장조사를 다니게 했던 것이다. 팀 작업을 하면서 내 학생들은 건축학과 학생들이 사람에 대한 호기심도 없고 기술적이라며 불만을 드러냈고, 건축학과 학생들은 반대로 문과 사람들이 말만 하고 작업할 거리를 갖고 오지 않는다고 불만스러워했다. 어쨌든 학기 말에 학생들은 신촌 기차역을 새롭게 단장하고 연대 앞 신촌 거리를 차 없는 거리로 만드는 등 대단한 설계도를 만들어서 공개발표회도 가졌다. 모두가 뿌듯해하며 헤어졌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그때 함께 했던 친구들 중 아직도 신촌문화 관련한 일을 하는 친구들이 있다. 그 설계도는 활용되지 못했지만 공동수업을 통해 몸 속에 쌓인 기억은 지금까지 효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인류학적인 감수성이 아주 풍부한 건축가 () 정기용 선생을 만난 것은 그 수업을 통해서였고, 그 이후 나는 그 분을 문화인류학 수업에 자주 초대했다. 우리 학생들 중에는 정기용 선생님의 팬이 많이 생겼었다. 1990년대 중반에 그 분은 서울 건축학교라는 곳에 나를 초대해주었고, 나는 그곳에 가서 종종 강의를 했다. 주로 탈식민주의에 대한 강의였는데, 그 곳 학생들의 인문학적 수준은 인문학도들 못지않게 높았다. 이 학교는 김수근 문화 재단에서 지원한 실험적인 건축학교였는데, 나는 그런 학교가 건축전문대학이나 대학원으로 정착 할 수 있다면 우리나라 건축계의 미래가 아주 밝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당시 그곳에 의기투합해 있던 건축학계 분들을 보면 그것을 해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들은 나라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가득했으며 후배를 잘 키워보겠다는 열의도 대단했다. 그들은 기성 대학에서 가르치는 건축학이 토건사업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을 반성하면서 건축학의 새 지평을 열어가고자 했고, 그래서 탈근대주의와 탈식민주의에 대한 공부를 열심히 했던 것이다. 아직 이 학교는 원래 목적으로 했던 시대적 전환을 전격적으로 해내지는 못한 것 같다. 1990년대 말 경제 위기를 기점으로 한국사회는 거대한 전지구화의 물결, 특히 금융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들었고 그로 인해 건축계만이 아니라 1990년대 들어서 시도되었던 다른 분야의 실험적 작업들도 상당히 위축되었다. 정부는 시장을 살려야 한다면서 거대한 국토개발사업과 아파트 건설 등 난개발공사들을 강행했고 부익부 빈인빈현상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건축학도들이 취직이 어려워진 것도 이러한 승자독식체제가 정착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최근 들어 많은 사람들은, 이 체제가 더 이상 지탱할 수 없는 체제임을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특히 2008년 뉴욕발 금융위기로 인한 세계경제의 파탄, 그리고 2011년의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재난은 더 이상 인류의 삶이 이대로 굴러갈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해주었다. 곳곳에서 사회적 경제와 협동조합의 논의가 일고 있고 공생과 나눔의 가치가 부각되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이다. 시장(도구적 합리성)에 의해 식민화된 일상적 삶(소통합리성)을 회복하지 않으면 경제도 회복될 수 없고 지구상의 모든 생물체도 오래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1960년대 후기 근대적 논의가 일어나던 당시, 앙리 르페브르는 <현대 세계와 일상성>이라는 책을 통해 일상성에 주목할 것을 촉구했다. 일상성은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일상의 흐름이며 간주관적 현실을 구성해내는 과정이다. 일상성 연구자들은 그간 근대 문명이 강조해온 거대주의, 추상주의, 이론주의, 과학기술주의의 한계를 넘어서서 개인들의 일상이 어떻게 사회구조와 연결되는지를 밝혀내고자 한다. 전기 근대의 사회과학이 뒤르껭이 말한 사회구조(집단의식)의 발견에서 시작되었다면, 후기 근대의 사회과학은 그 구조적 관점의 지나친 지배에 의해 사라질 지경에 이른 개인과 일상의 재발견에서 다시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문화인류학자들은 르페브르의 일상성 논의를 크게 환영했다. 그간 자신들이 해온 일이 바로 일상성 연구였기 때문이다. 인류학자들은 낯선 사회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그 곳의 지리와 공간 구성을 살펴보고 세밀하게 인구구성을 파악해간다. 그 동네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를 아는 사람은 인류학자인 것이다. 그를 통해 한 사회의 물리적 환경과 경제, 그리고 일상적 상호작용 아래에 깔린 욕망과 신념의 심층 구조를 파악해나간다. 마치 추리를 하는 탐정처럼. 이는 곧 개인과 사회, 미시와 거시, 일상과 제도, 구체와 추상을 연결하는 일이고, 특정 시간과 장소에 주목함을 의미한다. 바우만이 액체 근대라는 말로 표현했듯이, 현재의 삶은 너무나 복잡하고 유동적이며 불확실한 상태로 굴러가고 있다. 구조기능주의나 데카르트적인 세계관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상황이 온 것이다. ‘프랙탈의 원리로 작은 것의 총체성과 움직임을 제대로 파악해내고, 그 움직임의 원리를 통해 전체의 생성 원리를 다시 찾아내야 한다.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 일상을 되찾는 것, 사람에 주목하는 것이 중요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이번에 주제로 잡은 일상의 건축: 삶과 공간의 관계 회복을 위한 건축은 아주 시의적절한 주제이다. 내심 나는 이 건축상에 참여하면서 훌륭한 청년 건축도들, 곧 훌륭한 인류학도이기도 할 청년들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323일 금요일, 아르코 강당의 공개 심사장으로 가는 길이 즐거웠던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예상대로 나는 그곳에서 일상의 삶을 보고 사람을 만나가는 청년들을 만날 수 있었다. 창신동 봉제 골목의 작업장을 바꿔보려는 팀(잃어버린 사계를 넣어주다)과 성수동 구두 공장 내부를 바꿔보려는 팀(성수동 주인공들의 공간), 홍대 앞 오래된 카센터 사장을 인터뷰한 팀(그 카 센터), 여자 경찰들을 위해 경찰서 공간 개조를 시도한 팀(여경탐구생할)은 여러 차례의 인터뷰와 현장 관찰을 통해 타자의 삶에 가까이 가고 있었다. 이미 관여해오던 지역아동 센터를 새롭게 구성해본 작업(만복이네 공부방), 자기들이 다니는 캠퍼스 타운을 바꿔보기 위한 작업(동네 일상탈환)에서는 실제 문제를 풀어가는 현실적 감각을 크게 키워가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특히 일상 탈환 프로젝트에서 이동식 폴리 커뮤니티의 발상은 나같은 인류학자에게는 매우 신선한 것이었다. 급변하는 시점일수록 그런 중간적 매개의 시공간이 필요한데 왜 그런 생각을 미처 못 했을까 싶다. 구도심의 낙후된 상가를 다룬 작업(Leave a Space and Infill Usual)이나 공동주거(Omnibus hAus), 작업실 개조(사소 취대), 엄마의 동선을 고려한 집의 개조(입헌 군주제) 작업 등에서도 건축은 일상의 삶 읽기 작업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좋은 기회를 가졌을 것이다.

 

학생들 작업에는 여전히 추상주의와 거대주의, 기능에 치중하는 결과주의적인 관성이 남아 있다. 그러나 일상의 의미, 그리고 작은 것의 의미를 알게 된 이 청년들이 성장하면서 변화가 올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사랑하는 할머니의 가게가 있는 장소를 새로운 생성의 장소로 만들어가면서, 익숙한 봉제 작업장 배치를 좀 달리 하여 여유롭게 숨을 쉬게 된 장소로 만들어가면서 청년들은 점점 더 많은 것을 알아가게 될 것이다. 일상을 가능하게 하는 돌봄과 애정에 대해, 축적된 시간과 기억, 욕망이 아닌 욕구, 그리고 착한 일을 한다는 것에 대해서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번에 했던 공모전 작품들이 스펙의 한 줄이 아니라 실행 가능한 작업으로 이어지기를 바라고 있다. 때마침 사회적 기업과 협동조합 등의 이름으로 이런 작업들을 지원하려는 분위기가 형성되었고, 관과 기업의 지원이 아니더라도 텀블벅(https://tumblbug.com)과 같은 클라우드 펀딩 등 다양한 지원들이 사회를 아름답게 하는 작업들에게 주어지고 있다.

 

그래서 당부하건대 건축학도들은 공학과 인문학 사이에서 그 본연의 자리를 찾아가면 좋겠다. 좀 더 두리번거리고 역사 속에서 살아가는 를 알아가려 한다면, 그리고 인문사회과학을 하는 동료들을 만난다면 이 작업은 보다 즐겁고 쉬운 작업이 될 것이다. 사회에 도움이 되는 착한 일을 해보려는 마음, 사회의 문제를 해결해보겠다는 동기에서 시작하는 이들이 모인다면 그 작업의 어려운 고비들을 잘 넘길 것이다. ‘라는 것은 고정된 주체가 아니라 내가 맺는 관계의 합이며 사회적 과정의 일부라는 것을 알아차릴 때 역지사지의 훈련을 해갈 수 있을 것이며, 외톨이가 아닌 우리로서 작업을 계속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곧 미시와 거시, 개인과 집단/문화를 연결하는 작업들이며 역사를 새로 써가는 작업, 건축계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는 일일 것이다. 이 공모전의 자리가 바로 그런 가능성을 가진 이들이 만나는 자리였을 것이라 믿고 싶다. 착한 일을 하면서 즐겁게 먹고사는 건축가들, 그리고 일상의 감각을 가진 인류학적 건축가들이 늘어날 때 우리는 다시 즐거운 우리 집살기 좋은 우리나라/동네를 노래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