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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과 장미- 한겨레 컬럼 3/13

조한 2013.03.13 12:09 조회수 : 399

 

[조한혜정 칼럼] 빵과 장미



한겨레

조한혜정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3월8일 세계 여성의 날이 어김없이 돌아왔다. 이날은 “우리에게 빵과 장미를 달라”는 슬로건을 되새기는 날이다. 여기서 ‘빵’은 생계를 위해 일할 권리를, ‘장미’는 서로 사랑하고 돌보며 살아가는 권리를 말한다. 1900년대 초반 번창하던 미국 의류산업계 여성노동자들은 하루 12시간에서 18시간 노예노동을 하며 병들어가고 있었다. 폭압적 상황을 견디다 못한 노동자 1만5000여명은 1908년 3월8일 뉴욕 럿거스 광장에 모여 13주 동안 대대적인 파업 시위를 벌이며 노동자의 현실을 전세계에 알렸다. 그 이후 3·8 여성대회는 노동은 ‘생산 영역’과 ‘재생산 영역’에 걸쳐 있는 활동임을 주지시키며 노동운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는 기폭제가 되어왔다. 105번째를 맞는 이날을 기념해서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26개 오이시디(OECD) 회원국들의 ‘유리천장 지수’를 발표했다. 1위가 뉴질랜드이고 한국이 꼴찌였다. 어린이 행복지수 꼴찌, 최장 노동시간, 최저 출산율, 최고 성범죄율. 왜 한국은 부정적인 항목은 도맡아서 일등을 하는 것일까? “열 아들 부럽지 않게” 키운 딸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모두 씩씩하게 사회로 나갔다. 그들은 당당한 사회인이 되었고, 열심히 돈벌이를 하였고, 결혼과 출산을 미루면서까지 일에 몰두했다. 그 결과 한국은 초저출산 국가가 되었고 첫 출산 산모의 평균 연령은 점점 늦어져서 2010년에 30.48살을 기록했다. 최근 30대 이상 산모가 늘어나면서 출산율 1.30명을 넘겼다는 소식이 들리기도 한다. 저출산 관련 대대적인 여론과 정책이 출산파업 중인 여성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일까? 상황은 좀 나아질까? 한국의 고도 경제성장은 재생산 영역의 희생을 담보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자기 조절적 시장이 삶 전반을 지배하게 되면서 부모들은 자녀 스케줄을 철저하게 관리하는 투자자가 된 한편, 집에 있기보다 직장에 나가는 것이 더 편하다거나, 그냥 아이가 귀찮다는 엄마들이 늘어나고 있다. 남자와 똑같이 경쟁판에서 살아남은 엄마들은 시테크와 재테크를 통해 아이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친밀성을 위한 최소한의 시간도 갖기 어려운 상황에서 부부는 경제적 동맹자로 한 지붕 아래 각자 외롭게, 또는 바람피우는 것도 묵인하면서 지낸다. 다음 세대를 제대로 키울 역량을 가진 공간도, ‘몸’도 급격히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조부모가 키운 훌륭한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티브이 스페셜’을 통해 방영되는가 하면, 60살 이상 노인들이 노후에 가장 희망하지 않는 것은 ‘황혼 육아’이고 가장 희망하는 항목은 취미교양활동이라는 조사 결과도 나오고 있다. 아기는 낳은 부모가 알아서 키워야지 웬 정부 지원이냐는 비혼자의 피해의식과 자기가 낳은 아이가 나중에 두 명의 어른을 먹여 살려야 한다며 억울해하는 엄마의 피해의식은 같은 뿌리에서 나온 것이다. 국민들을 극도로 타산적인 개체로 만들어버린 생산 위주의 근대화가 그 뿌리다. 뿌리를 건드리지 않는 한 재생산 영역의 회복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국가 정책은 여전히 경제 생산영역만을 보고 있다. 참고로 우리나라 가족 부문 지출 예산은 2009년 기준 지디피(GDP) 대비 1.01%로 오이시디 평균 2.61%의 절반 수준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남녀 모두를 시장으로 몰아넣는 것은 파국으로 치닫는 일이며, 여성을 값싼 임금 노동자로 전락시키면서 취업률이나 높이려는 계산은 파국을 앞당긴다. 우리 사회의 ‘사회적 모성 지수’는 바닥을 친 듯하다. 아이를 출산한 지 석 달이 채 되지 않은 엄마가 ‘경력 단절’을 불안해하며 일터로 돌아가게 만드는 사회에서 희망을 찾기는 어렵다. ‘경력’으로 말하면 아이를 잘 키운 경력보다 더 대단한 경력이 있을까? 군 가산점 제도를 시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당연히 육아 가산점 제도도 고려해야 한다. 모성 휴직제와 함께 부성 휴직제가 제대로 실시되는 일터 문화도 정착시켜야 한다. 풍성한 모성을 간직한 어르신들이 즐겁게 손주와 이웃 아이를 돌볼 수 있는 방안과 그러한 돌봄과 사랑이 ‘호혜 경제’로 이어지는 방안을 찾아내야 한다. 아무리 빵이 넘쳐난들 사랑 없는 세상은 사람이 살 곳이 아니다. 조한혜정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