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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결혼, 돌봄과 환대의 지수 (2/19)

조한 2013.02.19 11:25 조회수 : 591

 


사설.칼럼

칼럼

[조한혜정 칼럼] 동성결혼, 돌봄과 환대의 지수

등록 : 2013.02.19 19:19 수정 : 2013.02.19 22:22



지난 12일 프랑스 하원은 ‘동성결혼 및 동성 커플의 입양 합법화’ 법안을 통과시켰다고 한다. 4월에 상원도 무난히 통과할 것이라고 하는데, 그렇게 되면 프랑스는 1989년에 처음으로 동성결혼을 허용한 덴마크와 스웨덴, 벨기에, 스페인, 네덜란드 등에 이어 11번째로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나라가 된다. 나치 정권 아래 동성애자를 심하게 처벌했던 독일도 1984년 동성애자의 동거 권리를 인정했고, 2002년 ‘평생 동반자법’을 통해 동성 커플의 권리를 확장했다. 동성애자와 관련한 이런 법제화 움직임은 무엇을 시사하는 것일까? 2001년 미국 골든글로브상 드라마 부문에서 버네사 레드그레이브가 여우조연상을 받았던 <더 월>(벽)의 주인공은 동거중인 두 여성이다. 애비와 이디스는 노년기에 접어든 오래된 파트너인데 애비가 갑자기 심장마비 증세로 입원하게 된다. 그런데 이디스는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병원에서 그를 간호하지 못하고 애비는 홀로 쓸쓸한 죽음을 맞는다. 사무적으로 장례를 치른 애비의 낯선 조카 부부는 애비의 유품과 그녀 이름으로 등기된 집을 팔고 가버린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1961년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이다. 유럽 국가들이 줄이어 통과시키고 있는 동성결혼법의 핵심은 바로 애비와 이디스 같은 동반자 관계를 보호하는 제도이다. 서로 돌보고 의지하는 동거 파트너 관계가 기존의 가족 관계와 다를 바 없음을 인정하고 안정성을 보장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상속과 건강보험 수급권, 배우자 입원 때 병원 면회권 등이 주를 이룬다. 이 법은 또한 동성 커플의 양육권을 보장하고 있다. 입안을 주도한 토비라 법무장관은 “이성 부부가 동성 부부보다 아이 성장에 더 나은 조건을 보장한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느냐”며 아이를 제대로 키우겠다는 성인 커플의 소망을 성적 지향성을 이유로 묵살할 근거가 없음을 명기했다. 이 법안과 관련해 정자은행을 통하거나 다른 여성의 자궁을 빌려 시험관 아이를 낳는 출산의 윤리도 논란이 되었다는데 사실상 이 문제는 동성결혼 이전에 이성애 불임부부들의 문제였다. 이미 시험관 아기들이 자라 자신들의 성장을 영화로 만들 정도로 시일이 지난 사안이다. 만일 출산 윤리를 문제 삼고자 한다면,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언제든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리는 생명공학계가 책임 추궁을 받아야 할 것이다. 사실 프랑스에선 이미 시민연대협약(PACS)이란 형태로 결혼을 하지 않고 동거만으로 동등한 권리를 누릴 수 있고, 동성애자들도 그런 계약을 통해 살아가는 데 큰 불편함은 없다고 들어왔다. 근대를 넘어서는 좀더 획기적인 방안을 추구하는 나로서는 꼭 부부 중심이어야 하는지, 좀더 공동체적인 해법을 내놓을 수는 없는지 아쉬운 마음이 없진 않지만 이런 주제로 국민들이 시대 공부를 하는 걸 보면 부러운 마음이 앞선다. 자기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타인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는 것, 공연한 적대적 감정이 생길 때면 먼저 자기 내면의 폭력성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 오랫동안 사랑하고 돌보아온 모든 관계도 존중돼야 하고, 다음 세대를 키우고자 하는 그들의 의사 또한 존중돼야 한다는 원칙에 대한 합의 과정으로서의 공부 말이다. 동거권과 양육권을 합리화하는 이 법제화는 개인의 고립화와 사회적 재생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매우 실질적인 방안이다. 유럽의 동성결혼 합법화 소식을 들으며 성소수자의 시민권 문제가 얼마나 긴밀히 우리 모두의 생존과 연결되어 있는지를 확인한다. 남성 부양자와 전업주부 아내, 자녀 둘로 구성된 이성애적 핵가족 제도는 급속히 붕괴하고 있고, (부모에 의해 버려지는 아이들, 그리고 심지어 친부와 의부에 의해 성폭행 당하는 아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첨가할 것) 그 와중에 재혼·비혼·동거 등 다양한 형태의 가족들이 출현하고 있다. 이러한 삶의 방식들이 서로 충돌하지 않고 공존하는 질서를 만드는 것이 격변기를 살아가는 우리가 해내야 할 일이다. 압축적 근대화 과정을 거치며 더욱 ‘핏줄’에 매달리게 된 한국의 주민들은 관용적이어야 할 시점에 오히려 더 강박적이고 획일화되고 있지는 않은지? 돌봄과 환대의 지수를 높일 때다. 밥을 나누고 서로를 돌보는 내 동반자(들)는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