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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보육과 보편적 복지

조한 2013.01.29 12:17 조회수 : 882

 

 

무상 보육과 보편적 복지

 

조한혜정

 

1987년에는 영국에서 연구년을 보냈다. 초등학생이던 두 아이도 함께 갔는데 영국 정부에서 수표가 든 편지를 보내왔다. 수표는 두 아이의 매월 간식비라고 했다. 나는 영국 정부가 우리를 이민자인 줄 착각해 보낸 줄 알고 전화를 걸어 돌려주겠다고 했더니 담당자는 현재 영국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아이들에게 주는 돈이라고 했다. 그 아이들이 다 행복해야 영국 아이들도 행복하다는 것이다. ‘보편적 복지의 혜택을 받은 내 첫 번째 경험이다. 복지와 관련해 또 하나 에피소드가 있다. 미국 학회에서 만난 교포 한 분이 부러운 표정으로 말을 건넸다. 전국민 의료보험제도가 실시되고 있고, 65세만 넘으면 대중교통을 무료로 사용하고 구민회관에서 공짜로 춤도 추고 그림도 그린다는 한국은 정말 좋은 복지 국가라며 공짜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미국에 이민 온 건 잘못된 선택이었던 것 같다고 했다.

 

선별적 복지보편적 복지에 대한 논의는 20106.2 서울시장선거에서 학교 급식이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며 본격화됐다. 선별적 복지는 기본적 사회생활을 영위할 수 없는 상태의 국민들을 가려내 국가가 기본 생계를 지원하는 제도다. 결핍 상황이 발생한 후 사후적으로 지원을 한다는 면에서 결과적 지원 제도라 할 수 있다. 반면 보편적 복지는 모두가 겪을 수 있는 난감한 상황을 공적 자금으로 함께 해결해가려는 예방적 제도다. 중산층에서 탈락한 이들을 보조하는 단순한 소득 재분배가 아니라 점점 질이 하락하고 해결 가능성이 적어지는 육아와 교육, 질병, 노령, 실업, 산업재해 등의 문제를 시민과 정부가 함께 해결해가려는 정책인데, 마치 공기와 물과 도로를 공유하는 것처럼 사회적 재생산 문제를 공공재를 통해 해결하려는 것이라 보면 된다. 선별적 복지는 개인의 능력을 극히 강조하는 미국에서 발전한 반면, 보편적 복지는 세계대전을 치른 유럽이 새로운 공공재를 만들지 않고는 자본주의체제가 더 이상 지탱될 수 없다는 인식에서 발전시킨 것이다. 현재 한국과 같이 중산층이 급격히 붕괴하고 높은 자살율과 과로사, 저출산 등으로 사회적 재생산이 위기에 처한 경우, 선별적 복지는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 보편적 복지정책을 통해 사회적 소생에 힘을 쏟아야 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달 27일 정부가 발표한 무상보육 지원 건은 매우 중요한 정책이다. 곧 시행될 이 계획에 따르면 만 0~5세의 자녀를 둔 부모는 소득수준과 관계없이 국가로부터 매월 지원금을 받게 된다. 어린이집을 이용할 경우엔 어린이집 이용료 전액(394천원에서 22만원까지), 어린이집을 이용하지 않을 경우에는 만 0세는 월 20만원, 1세는 15만원, 2~5세는 10만원의 지원을 받는다. 사실 이런 차등 지원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고, 이 제도가 잘못 운용되면 유아 교육의 획일화를 촉진 시킬 우려가 높다. 그러나 이 계획이 공적 자원을 풍부하게 함으로 공생의 감각을 높이고 신뢰사회를 회복함으로 경제를 활성화해낸다는 보편적 복지 원리에 충실하게 실행될 수 있다면 우리 사회를 크게 성숙시켜낼 것이다.

 

이를 위해 공무원과 시민들도 변해야 한다. 그간의 선별적 복지 체제에 길들여졌던 평가와 감시의 태도는 위험하다. 공무원들은 시민과 함께 공공재를 만들어가는 동반자로서의 태도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육아 수당을 받는 수혜자들도 지원금을 단순한 보조비가 아니라 돌봄의 공유지를 만들어낼 종자돈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사실상 현재 다수의 보육 시설들은 후기 근대를 살아갈 아이를 키울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부모들이 선택할 만한 어린이집도 턱없이 부족하다. 공공재를 풍성하게 하는 의미에서 이 제도를 선택했다면 뜻있는 부모와 주변 어른들이 모여 공동육아를 시도하거나 숲 어린이집을 하는 등 다양하고 참신한 시도가 열매를 맺을 수 있어야 하며 기존의 시설도 질적 성장을 해내야 하는 것이다. 이번 아동 수당 지급을 계기로 극도로 개인화된 우리 사회에 상부상조와 상호호혜의 관계가 되살아나고, 창의적 공공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장이 열릴 것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