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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을 공동체 사업 백서 2012-13 발간사 초안

조한 2014.01.25 11:45 조회수 : 2580

발간사

 

조한 혜정

 

인류는 늘 마을을 이루어 살아왔습니다. 인구의 다수가 도시로 이주한 근대에도 사람들은 마을을 이루어 살았습니다. 이웃 간에 인사하고 경조사를 함께 치르고 급할 때면 서로 도왔습니다. 최근 잠시, 마을이 없이 바쁘게 사는 시대가 있었는데 사람들은 아주 불행해했습니다. 서울에서도 요즘 부쩍 마을, 돌봄, 단골, 품앗이, 전환도시, 살림/살이 경제에 대한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습니다. 다시 마을살이를 하자는 마을 만들기 논의들이 일고 있는 것입니다.

 

개인주의를 강조해온 근대의 역사를 보면 도시의 마을 만들기 단계에 걸쳐 일어납니다. 번째는 배가 고픈 시기를 지나면서 양보다 질적 수준이 높은 삶,물질과 정신이 균형 잡힌 삶 찾게 되는 단계입니다. 이른바 선진국인 서양의 경우는 18, 19세기경에 이런 움직임에 의한 근대적 마을살이 정착합니다. 정원을 부지런히 가꾸고 창가에 제라늄 화분을 걸어두는 도시의 풍경이며, 동네 책방과 작은 가게들이 고즈넉한 옛 모습으로 단장을 하고 단골을 맞이하는 모습, 도심 광장에서 정기적으로 열리는 농부들의 시장이나 주민이 모두 참여하여 준비하고 즐기는 마을 축제, 일상생활에서 겪는 문제들을 시민들이 모여 진지한 회의를 통해 해결해가는 관행은 모두 주체적인 시민들과 지방자치체에 의한 지속적 마을 만들기 운동을 통해 이루어진 산물입니다.

 

서구를 좇아가느라 급급했던 아시아는 마을보다 국가가 보다 강력한 추동체 역할을 해온 경우입니다. 그래서 마을을 만들려는 움직임은 좀 늦게 시작됩니다. 고도 경제성장을 이룬 일본은 1964년 동경 올림픽을 거치면서 삶의 질을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경제성장이 절정에 달한 1970년대에 관과 민이 협력하여 마을 만들기 (마찌즈꾸리) 운동을 일으켰습니다. 한국도 비슷한 패턴을 따라 경제 성장률이 최고조에 달한 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그리고 1990년대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이 붕괴하는 충격을 겪으면서 삶의 질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특히 입시를 목적으로 한 제도권 교육을 거부하면서 공동육아를 하려는 부모들을 중심으로 마을 만들기와 비슷한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1990년대 말부터 서울시에서도 주민 참여형 도시 계획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아파트 투기열풍이 채 가라앉지 않은 상황에서 이런 움직임은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2000년 북촌 한옥 마을 사업을 시작으로 주민들과 함께 담장을 허물고 골목길을 개선하는 살마지(살기 좋은 마을 만들기형 지구 단위 계획 시법 사업)’ ‘서울 휴먼 타운 사업’ ‘주민 참여형 주거 재생사업등의 마을 만들기 사업이 이 단계의 마을 만들기 사업으로 간간히 시도되었다.

 

 

두 번째 마을 만들기는 딱히 국가별 경제사정에 의해 좌우된다고 보기 힘듭니다. 그 움직임은 총체적 난국이라 할 수 있는 상황에서 전지구적으로 동시에 일고 있습니다. 1980년대 말부터 지구상의 자연 자원은 한계에 도달했으며 환경 변화와 함께 경제성장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아지기 시작합니다. 자연과 사회적 위기가 상시화 되고 돌이킬 수 없는 심각한 사고들이 발생하면서 거대국가나 전지구적 단위가 아닌 지역단위의 중요성이 강조되기 시작합니다. 곧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위험사회적 상황에서 자구적 움직임들이 주체적인 시민들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영국에서는 화석 연료를 포함한 자원의 한계를 인식한 주민들이 외부 상황 변화에도 잘 견딜 수 있는 자급자족적 전환마을 transition town’을 만들기 시작했고, 이런 움직임은 급속도로 세계 차원으로 번지고 있습니다. 한편 일본에서는 불안정한 금융자본주의 사회에서 화폐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자각과 함께 상부상조하는 삶을 바탕으로 마을 기업과 사회적 경제를 활성화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특히 2008년 뉴욕발 금융위기와 2011년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태 이후 지속가능한 삶을 위한 마을 만들기 움직임들이 더욱 활기를 띄게 되었습니다. 기술의 진보, 민주적 제도, 분배가 제대로 되지 못하는 물질적 풍요로움만으로는 살기 좋은 사회가 오지 않으며 재앙만 커질 수 있다는 것을 자각한 시민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무리하게 성장주의적 전략을 펼치면 지자체도 파산을 할 수 있다는 것을 2006년 파산한 일본의 유바리 시의 사례가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2013년 미국 디트로이트 시가 파산한 경우를 보아도 거대 도시들은 전면전 방향전환이 필요한 시점에 왔습니다. 다행히 지금과 같이 복합적인 문제가 산적한 상황을 타개하는 방법은 국가나 기업이 아니라 문제를 안고 있는 당사자들이 함께 모여 지혜를 모아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해가는 방법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차린 이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국가와 국제기구에서도 인류의, 그리고 개별 도시의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 지역 회복력 regional resilience’이라는 개념에 초점을 맞추어 어떤 충격에도 잘 대응하고 회복하는 인프라와 높은 학습력을 가진 주민 공동체 형성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강조하기 시작했습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지속적 삶을 함께 고민하고 만들어가는 탄력성 있는 공동체만이 예상치 않은 재난 가운데서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런 방향으로의 대대적 전환을 이루어내고자 하는 것입니다.

 

서울은 지금 그 대대적 전환이 일어나고 있는 주요 도시 중 하나입니다. 최근까지 서울의 도시정책의 근간은 개발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허물고 새로 짓고 돈으로 해결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거대한 아파트들이 들어서고 시민들은 자주 옮겨 다녔습니다. 국가나 기업에서 주는 수입원을 바탕으로 돈을 빌려 아파트를 사고 적절한 투자와 부채를 굴리면서 핵가족 단위로 소비생활을 하는데 시민적 삶은 날로 각박해지고 이웃 간의 거리는 소원해졌습니다. 그 와중에 서울은 어느 도시보다 급속도로 비빌 언덕이 없는 파편화된 개인들의 도시로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특히 서울에서 자주 일어나는 층간 살인사건이나 성범죄, 그리고 은둔형 외톨이적 삶은 서울에 살고 있는 시민들의 긴장 상태, 또는 적대의 심리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지표입니다.

 

위기는 기회라는 말이 있습니다. 다행히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한 시민사회와 개혁성향의 시장이 의기투합하여 서울에서는 대대적인 전환의 움직임이 시작되었습니다. 201110월 박원순 시장이 취임 시 마을 공동체를 서울시정의 핵심으로 삼기로 하면서 본격화된 움직임입니다. 관과 민의 협력은 쉽지 않은 작업입니다만 우선 관에서는 우선 그간에 자생적으로 일고 있던 마을 공동체 사업들이 보다 활성화 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에 주력했습니다. 민간 중심의 <서울시 마을공동체 종합 지원센터>라는 중간 조직을 만들어 이 사업을 추진하게 하였고, 관과 민이 협력하면서 언어를 조율해가는 기간을 현재 거치고 있는 중입니다. 그간 자기 동네에서 풀뿌리 활동을 해온 지역 활동가와 후기 근대적 문명 전환을 연구해온 전문가들, 그리고 서울시의 개혁적 공무원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하면서 도시 전환의 토대를 닦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서울시는 대도시의 산적한 문제를 풀어낼 해법으로 관계망공유 공간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최근까지 서울시 25개 자치구에 수천 개의 다기 다종한 마을 커뮤니티들이 함께 배우고 일하고 즐기고 공부하면서 지역적 회복력을 높이는 작업에 활기를 더하고 있습니다.

 

마을 공동체 사업은 서울시의 주요 정책 중 하나가 아니라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식의 패러다임 전환을 주도하는 총체적 도약을 위한 사업입니다. ‘지역적 회복력분야에서 사용하는 용어를 빌리면 지역경제 역량인구 사회적 역량과 함께 커뮤니티의 학습과 연결역량을 키워가는 사업이며 개인이 아닌 우리의 내공과 소통력, 창의력, 지혜와 보살핌, 그리고 공동작업의 능력을 키우는 사업입니다. ‘결과못지않게 과정을 중시하고 성과못지않게 학습을 중시하며 근대초기에 확립된 행정의 개혁을 가져올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1960년대 빈곤에서 벗어나려는 새마을 운동이 협력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듦으로 가능했다면 2010년대 서울시에 의한 마을 공동체 사업은 시민들이 서로 돌보는 플랫폼을 만들어냄으로 시민들의 역량을 키우고 지속가능한 도시 서울을 만들어보려는 것입니다.

 

이 책은 이 거대한 시도의 첫 2연간의 기록입니다. 다시 강조하건데 이 마을 공동체 사업은 거대한 문명전환을 향한 작은 시작입니다. 이 책에 실린 서울시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다양한 돌봄 공동체’ (1장 마을에서 돌본다) ‘문화 공동체’ (2장 마을에서 놀고 즐긴다) ‘경제 공동체’ (3장 마을에서 일한다) 주거 공동체’(4장 마을에서 안전하게 산다)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새로운 세상이 보일 것입니다. 그들이 어우러져 오래된 미래를 만들어낼 때 행복한 서울 살이가 시작될 것입니다. 사람살이의 다양함을 기록하고 정리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이 책에서 왜 이런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고 어떤 흐름으로 왔는지, 그리고 현황은 어떤지 소상하게 정리하고자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이 분야에는 아직 제대로 된 전문가가 없습니다. 기존 패러다임에 익숙해진 전문가들은 이를 활동을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에 일단 실제 마을에서 활동하는 실천적 전문가들이 중심이 되어서 현장 보고서를 정리했습니다. 기존 기록만을 보아온 이들에게는 낯선 면이 있겠지만 새 전문가가 출현해야 하는 시점에는 아마추어적 작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풍부한 상상력과 애정 어린 시선으로 읽어내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의 노력이 그간 하드웨어에 치우쳐온 서울의 토건 국가 살이를 행복한 마을살이로 전환해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더 나아가 출구가 보이지 않는 현 전지구적 살이에 새로운 출구를 제시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런 작지만 거대한 전환의 발걸음에 각자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참여하시면서 오래 오래 즐겁고 유익한 나날 보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