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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마을을 짓다: 함께 모여 사는 것이 대하여 (23일자)

조한 2014.05.22 20:51 조회수 : 2467

 

다시 마을을 짓다: 함께 모여 사는 것이 대하여

 

 

조한 혜정 (연세 대학교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 하자 마을 주민)

 

 

일본은 한국보다 한 15년 앞서 간다고들 한다. 근대화는 애초부터 글로벌 차원에서 진행된 것이고, 문화적으로는 매우 대조적인 특성을 보였던 일본과 한국이 사실상 매우 비슷한 과정을 거치는 것을 보면 새삼 그 점을 확인하게 된다. 점점 자기 속으로 숨어드는 우리들의 모습에서부터 후쿠시마 사태와 세월호 사태를 다루는 두 국가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비슷한 모습을 보게 된다. 그리고 한국이 일본을 따라잡는기간은 점점 앞당겨지고 있다.

 

 

이 책은 일본의 주택과 주거 양식의 변화를 통해 사회의 패러다임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책 속에서 저자 야마모토 리켄은 일본 주택정책의 근간을 이루었던 ‘1가구 1주택주의에서 벗어나 지역사회권 주의로 전환할 것을 촉구하며 그간 해온 작업들을 소개한다. 그에 따르면 ‘1가구 1주택 정책은 하나의 사상이자 체계인데 모든 사람들이 가족구성원으로 한 주택에 모여 사는 것을 전제로 한 국민국가 형성기에 만들어진 정책이다. 이는 전후 폐허를 딛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좀 더 풍요로운 미래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던 시절에 출현한 정책이고 가족 사생활 보호와 안전이 이 정책의 핵심내용이었다. 경제 성장기를 지나 경제 쇠퇴기와 가족 해체가 역력해진 지금, 그 주택정책의 개혁을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되었다. . 그는 1960년 도쿄 인구를 보면 세대당 평균 4, 고령화율은 1.0%였는데, 2013년 세대당 인원은 1.98명이며 고령화율은 24.7%로 늘어난 인구학적 사실을 들며 불가피성을 강조한다. 가족 해체와 노령화, 그리고 갖가지 재난으로 사회안전망이 깨지는 상황에서 정책 변화는 시급한데데, 일본 정부는 그 전환을 제대로 이루어내지 못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에 따르면 2000년 일본정부는 민간(시장)주택업자가 주택 공급을 주도하는 방향으로 주택관련 법률을 개정했는데, 이것은 주택정책이라기보다 경제성장정책으로서 부동산의 증권화만 부추겼다. 지난 십여 년간 도쿄의 최고층 맨션화는 바로 이런 식의 투자중심 주택 정책의 산물로서, 시장은 투가 가치가 높은 주택만을 지었고 이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한 사회적 변수는 사생활 보호와 안전이었다. 현관 자동잠금장치와 인터폰 신분 확인, 철저한 방음 장치 등을 갖춘 거대한 밀실 주택군을 만들어낸 것인데 이는 사실상 후기 근대 내지 탈근대적 상황을 살아가는 이들의 욕구를 전혀 반영하지 않는 주택이었다. 그리고 이런 건축은 지역의 폐허화를 낳았다. 저자는 신자유주의적인 돈 중심주의를 넘어선 주택 정책이 나와야 하는 시점에서 고려해야 할 점을 책 서두에서 명료하게 정리해주고 있다. 첫 번째로 주택은 더 이상 독점 자산이 아닌 사회 자본으로 인식되어야 한다는 것, 두 번째로 공급자의 이윤을 지켜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곳에서 생활하는 사람, 즉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목적에서 집을 지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생활 보호와 안전에 집착하면서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건축이 아니라 개방성과 유연성이 확보되는 건축이어야 한다는 것이며, 저자는 이를 지역사회권개념으로 소개한다.

 

두 시스템을 좀 더 구체적으로 비교해보면 지역사회권 시스템의 기본 단위는 가족이 아니라 개인이다. 또한 ‘1가구 1주택시스템에서는 주변 환경과 지역사회에 무관심했다면 지역사회권에서는 그 변수를 매우 중요하게 고려한다. ‘1가구 1주택시스템에서 주택/하우스는 소비의 단위이자 국가의 거시 경제의 단위로만 고려되었다면 지역사회권 시스템에서 하우스는 지역내부 경제권으로 자체 생산적 역할을 한다. 두 시스템 모두 사생활 보장과 보안을 중시한다. 그러나 차이는 전자가 이를 기술적으로 해결하면서 고립된 주택을 지었다면, 후자는 그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상호작용하며 풀어가는 사회문화적 방법을 채택한다는 점이다. 기본적으로 이 두 시스템은 전용공간과 공용공간에 대한 개념상에서 큰 대조를 보인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1가구 1주택 시스템의 집이 일반적으로 단독의 침실, 주방과 화장실의 자족적이며 폐쇄적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지역사회권의 하우스개방 공간사적 침실로 구성되어 있어서 외부와의 협동이 용이해진 방식이다. ‘개방 공간은 외부를 향해 열려 있어서 지역주민들이 쉽게 섞일 수 있다. 이를 툇마루나 어린이 놀이터처럼 사용할 수 도 있고, 사무실이나 아틀리에, 또는 가게를 차리거나 임대를 할 수도 있다. 화장실과 욕실, 작은 주방은 함께 사용하는 공간이며 이 공용 공간의 확보는 간병, 간호, 복지, 에너지, 교통, 지역경제 등의 개념을 전면 재구성하는 효과를 낳는 토대가 된다. 혼자 사는 노인에게 변이 났을 때 이웃이 쉽게 들여다 볼 수 있다거나 가족이 떠난 빈 공간의 활용이 용이해지고 일정한 수입을 내는 것도 쉬어지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지역사회권 시스템은 단순히 집의 구조가 아니라 생활패턴과 생각의 구조에서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촉매재로서, 새로운 사회보장제도, 지역 내 경제권, 에너지의 효율적 소비와 생산, 그리고 중간적 교통 인프라를 상상하고 만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이런 개념으로 작업을 해온 저자는 이상적인 지역사회권의 인구를 500명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한국 주택 정책의 기본 개념은 일본의 것과 다르지 않으며 어떤 면에서는 일본보다 앞서 부동산의 증권화가 진행된 경우일 것이다. 특히 1990년대 이후 아파트 투기 광풍에 휩싸였고 2000년대의 뉴타운, 재개발 붐은 여전했으며,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며 그 와중에 많은 이들이 하우스 푸어가 되었다. 지금까지 부동산의 증권화는 진행중이고, 안전과 사생활 침해에 대한 강박으로 아파트들은 경계가 삼엄해졌으며, 층간 소음으로 살인까지 일어난다.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악명까지 얻은 한국에서 ‘1가구 1주택시스템의 부작용은 아주 심각한 사태에 이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좀 다른 집살이에 대한 실험들이 일어나는 것 역시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실제로 한국의 도심부와 농촌 곳곳에서 좀 다른 건축에 대한 시도들이 현재 이루어지고 있다. 이 책에서 말하는 지역사회권에 대한 탐색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어려운 말을 사용하고 있지만 지역사회권이란 쉽게 말해 상부상조하는 마을 같은 것이다. 조선시대의 대가족과 친척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나 근대화 초기 도시로 이주해온 가족들이 이웃과 상부상조하면서, 아이를 같이 키우고 병든 환자와 노인을 함께 돌보는 주거와 비슷하다. 그것은 우호적인 사람들이 스스로 도우면서 서로를 지켜주는 체제이며, 고도의 자동잠금장치가 아니라 집의 빗장을 풀고 협동하는 장치에 의해 움직이는 체제이다. 다행히 이제 많은 이들이 탐욕의 시대를 간파하고 인간다운 삶으로의 전환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신자유주의 이후의 주거 정책과 다양한 주거 실험에 대한 논의의 장이 일본만이 아니라 한국서도 자생적으로 열리고 있는 것이다. 또한 한일 양국의 주민들이 잦은 상호 교류를 하는 에코 빌리지들도 생겨나고 있다. 리켄 선생이 새로운 개념으로 설계를 했다는 주택이 판교와 강남에 지어졌다는 것도 반가운 소식이다. 여러모로 답답하던 시점에 더불어 하는 삶의 장을 만들어낼 묘안을 접하니 흐뭇하기 그지없다. 국경을 넘어 모여 함께 짓는 집들이 많아질 것을 기대하며 나는 어떤 마을에서 살아갈지 보다 구체적 계획을 세워보려 한다. 그 자리에 리켄 선생도 함께 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