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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만철 고향가는 길

조한 2013.10.09 12:49 조회수 : 1867

고향 찾는 길

 

조만철

 

모두들 순례 길에 오른다. 산티에고 순례길, 이스라엘 순례길, 제주 올래 길……. “경북의 혼이라는 말이 담긴 초대장을 읽으니 비어가는 가슴에 따뜻한 김이 피어오르는 듯하다. 아스라이 피어오르는 향수. 내가 경북 도지사의 해외 도민 회원 초청에 응한 이유이다. 그래서 경북 고향 길에 올랐다.

 

고향이란 무엇인가? 나를 있게 한 사랑이다. “아이고 우리 철이가 세상에서 제일 이쁘제하면서 아침마다 계란을 갖다 주시던 청상과부 아지메, 감을 너무 따먹어서 똥이 막혔을 때 침 맞으러 가던 외갓집 할아버지, 철마다 개구리, 메뚜기, 참새를 잡으러 다니던 친구들, 모기향 피우고 먹던 짠조기에 칼국수, 그리고 시원한 수정과……. 이런 기억들은 아직 마을을 지키고 계시는 아제와 아지메에 대한 감사로 이어진다. 지금이라도 역이민 하여 여생을 고향을 돌보면서 살아가볼까? 그래도 이민 왔으니 개척자답게 미국에서 생을 마감해야 하는 걸까? 갈 즈음이 되면 미국 양로원에 갇혀 있기보다 고향 땅 양지 바른 정자에 앉아 끊었던 소주를 옆에 두고 담배 한 대 피우며 영화 대부에 나오는 마론 브란도처럼 회상에 잠기다가 구름 한 조각 되어 사라지는 것, 어떨까? 여러 가지 상념에 잠긴다.

 

몇 년 전 상주 선산에 묻히신 아버지 장지에 갔을 때 열 다섯 살 난 막내아들에게 물었었다. “내가 여기 묻히면 네가 산소 관리를 할 테냐?” 아이는 답을 했다. “이 땅 팔면 얼만데?” “몇 만 불?” “그럼 딴 사람 주고 관리하라고 해.” 자식과도 대화가 쉽지 않다. 우리가 그렇게 키운 책임이 있지만 자기만 아는 냉정한 것들이다. 그래서 LA에 찾아와 고향 특산물을 전해주고 고향으로 초청까지 해준 도지사와 향우회 분들이 무척 고맙다. 글로벌과 로컬 시대라고 하더니 정말 고향과 세계를 연결하는 시대가 온 것 같다. 이번 고향 방문 때는 양로원을 방문해볼 생각이다. 내 할머니같이 생긴 할머니들은 찾아뵙고 손을 잡아드리고 싶다. 2년 전 LA 한인 축제 때 성백영 상주시장은 곶감을 LA 양로원 어른들에게 선물하면서 마을 어른들에 대한 양반의 도리일 뿐이라고 하셨는데 나도 그 도리를 따라 해볼 생각이다.

 

인생이란 결국 몇 가지 선택된 기억으로 이루어지는 것 아닐까? 이번 여행에서 나는 50주년 고등학교 졸업을 기념하는 고등학교방문 모임에도 참가한다. 나는 떠들썩한 모임 전날 호젓하게 학교 교정에 가보려 한다. 그리고 오래된 교실에 들어가서 앉아있어 보려고 한다. 그 오래된 교실은 남아 있겠지? 제발 없어지지 않았기를 기도한다. 친구는 말한다. 왜 그러냐고? 센치멘탈한 짓을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사람은 원래 감상적인 존재가 아닌가? 문득 감상적인 사람들이 그리워지는 날이다. 상주출신 이문제 시인을 도보 순례라는 시에서 이렇게 읊었다. “나 돌아갈 것이다. 도처의 전원을 끊고 덜컹거리는 마음의 안달을 마음껏 등질 것이다……. 무심했던 몸의 외곽으로 가 두 손 두발에게 머리 조아릴 것이다……. 어둠을 어둡게 할 것이다. 소리에 민감하고 냄새에 즉각 반응할 것이다. 하나하나 맛을 구별하고 피부를 활짝 열어놓을 것이다. 이제 일하기 위해 살지 않고 살기 위해 일할 것이다…….어두워지면 어두워질 것이다.”

 

고향은 나를 움직이는 나의 존재감의 근원이다. 내게 아직 영양분을 올려주고 있는 살아 있는 뿌리이고 나를 이 험악한 세상에서도 중심을 잡고 고양된 존재로 살아가라고 말해주는 정신적지주이고 영적인 친구이며 자손대대 조부모를 통해 온기가 전해지는 사랑의 샘물이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가 태어나신 무너지려는 집을 부수지 않고 오래된 감나무 앞에서 절을 한다. 상주 갑장산과 산자락 논자락, 경남 고등학교의 원형 교사, 그리고 연세대 예과시절에 오르내렸던 백양로, 나는 그런 장소를 다시 찾아 나선다. 그 오래된 것들과 나는 어떤 관계에 있으며, 앞으로 어떤 관계를 맺어갈 것인지 생각해볼 것이다. 내 삶이 하루살이의 삶, 끊어진 토막의 시간들의 짜집기만은 아니었음을 확인하고 긴 흐름 속에서의 나의 존재를 확인해보려 한다. 이번 여행은 그래서 무척 감상적인 여행이 될 테지만 흘러간 역사와 내가 맺어갈 가족 관계, 그리고 한국인들의 이민사와의 연결고리를 찾는 중요한 발걸음일 것이다. 그래선지 홀로 딛는 발걸음이 가벼운 듯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