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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의소설읽기 카프카 이후

johancafe 2010.05.14 13:18 조회수 : 3358

문화와 경제 2.
무라카미 하루키, 1Q84(2009)
히라노 게이치로, 최후의 변신, 방울져 떨어지는 시계들의 파문(2004)

2008312187 문화학협동과정
신정수

‘현시창’과 ‘손님 이건’이라는 유행어

10아시아(http://10.asiae.co.kr)라는 웹진은 TV 프로그램을 비평하는 것에서 시작해, TV 콘텐트가 수용자들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입고, 패러디되고, 새로운 콘텐트로 가공되어 인터넷을 통해 유통되는 이 상호작용의 과정을 추적하고 기록하는 매체이다. 내가 10아시아에서 가장 좋아하는 코너는 ‘유행어가 되리’인데, 이것은 매우 빨리 만들어지고 또 그만큼 빨리 사장되는 인터넷 시대의 유행어들을 사전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 사전 자신은 인터넷의 여러 콘텐트들을 용례로 차용한 하이퍼텍스트로 만들어져 있다. 이 콘텐트를 보고 있으면, 요즘 인구에 회자되는 ‘새로운 단어’들이 어떠한 경향성을 가지고 시대적 상황들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기염(을 토한다), 위엄(쩐다), 현시창… 워낙 웃음과 해학이라는 것이 대체로 조롱이나 자학 개그로부터 기인하기는 하나, 인터넷 시대의 용어들은 특히 그 조소와 조롱의 농도가 짙은 것 같다. ‘엄친아’라는 조금 오래된 말은 부러움과 동시에 시기와 질투의 양가적 감정뿐 아니라, 일상적이고 끊임없는 비교우위의 경쟁 속에서 성장하고 있는 현 시대의 청년들의 상황을 보여준다. 지금 시대의 한국 청년들은 자신과 남을 비교함을 통해서, 그리고 남의 좌절을 통해 자신의 우월함을 입증한다. 누군가의 업적이 훌륭할 때, 그가 칭찬을 받을 만 할 때에 쓰는 ‘기염을 토한다’나 ‘위엄 쩐다’는 말은 상대를 치켜세워주지만 또 한편으로 우습게 만들어 버린다. 그러나 TV 속의 언니 오빠들은 아름답고 멋지지만 내 ‘현실은 시궁창’일 뿐이다. 스펙터클의 시대에 TV뿐 아니라 세상의 수동적 관객이 되어버린 사람들은 저 편과 이 편의 거리를 줄이지 못한다. 지금 시대의 사람들은 단순히 계급적 속성으로 분석할 수 없는 더 미세하고 견고한 시공간적 분리 속에서 살아가고 있고, 각각의 집단 속에서 강수돌과 홀데 하이거가 말했던 ‘팔꿈치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나와 남의 집단 사이에 소통을 만들지 못한다. 자기 또는 ‘자기 집단’ 속으로 원자화된 개인들은 다른 사람과 요구하고, 이야기를 듣고, 협상하고 소통하는 과정을 두려워한다. 요즘 유행하는 말 중에 ‘손님 이건’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소통이 단절되어 개별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의 상황을 드러낸다. ‘손님 이건’은 연예인의 파마 머리가 예뻐서 미용실에 가서 “OOO처럼 해주세요.”라고 했더니, 미용사가 “손님 이건 고데기에요.”라고 말했다는 상황에서 나온 유행어이다. 현대의 서비스 산업에서 손님들은 자신의 요구에 따라 서비스를 돈을 주고 산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 서비스 교환 과정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요구를 소통하는데 실패함으로써 소외를 경험하고 있다. ‘손님 이건’이라는 말은 동시에 그 소외로부터, 공포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반작용을 하는 그런 상황적인 풍경을 담은 언어인 것이다. 이런 시대 속에서 자기 삶의 능동적 행위자가 되지 못하는 것은 시대적인 상황 탓일 수도 있고, 자기의 ‘공기 번데기’에 갇혀 ‘나’를 죽이지 못하고 계속 자기에 대해서 질문만 하고 있는 자신 탓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문제의 원인을 양자에서 찾기 보다는 보다 통합적인 질문을 던져야 할 필요가 있다.

게이치로와 하루끼의 시대 읽기

한국의 청년들이 인터넷에서 자신들의 삶을 풍자하며 언어들을 생산해 내는 동안 일본의 두 작가는 5년 간격을 두고 ‘히키코모리’라는 자아, 자신의 ‘분리된 현실’ 속에 갇혀있는 현상을 다룬 소설을 써낸다. 히라노 게이치로는 카프카의 <변신>을 빌려와 2000년대에 자신의 방안에서 벌레가 된 자신을 발견한 히키코모리를 다루고 있고, 하루키는 저마다 다른 현실 속에서 살고 있는 원자화된 개인들의 풍경을 다룬다. 게이치로는 자아 속에 갇힌 한 남자의 내면의 소리를 유언장의 형태로 적어 내려가며, 결국 그 자기에 갇힌 자기가 자멸할 것이라는 것을 예고한다. 반대로 하루끼의 경우 우리는 모두 분절적인 각기 다른 현실 속에 살고 있으며, 일상 속에서 스쳐 지나가더라도 현실과 현실을 넘어서 ‘같은 현실’ 속에서 만나기는 어려울 수도 있음을 이야기한다. 이 소설 속에서는 각자 자기 현실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상징하기 위해 하늘에 달이 몇 개 떠있는가를 이야기하기도 하고, 신흥 종교 집단 속에서 새롭게 구축된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조지 오웰의 <1984>에서 따온 <1Q84>의 시대에 사람들은 저마다 각기 다른 세계 속으로 원자화되어 퍼져있기 때문에 더 이상 빅브라더라는 분명한 감시의 주체, 그리고 그 밖의 사람들이라는 감시의 대상의 구도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 시대에는 판옵티콘 대신에 ‘리틀 피를’이라는 새로운 통치 전략이 수행된다. 대신에 이 시대의 통치 전략은 ‘리틀 피플’이라는 정말로 실재하는지 알 수 없지만 ‘우리의 발 밑을 서서히 무너뜨리는’ 보이지 않는 전략이다. 원자화된 개인들이 각자 ‘자기의 현실’ 속에서 각기 다른, 교차하지 않는 삶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전략이다. <1Q84>에서 아오마메는 수도 고속도로의 쪽문을 열고 탈출하는 평범하지 않은 일을 하는 순간, 두 개의 달이 떠있는 실재 속에 살게 되는데, 인간들이 서로 다른 차원에 존재하지만 함께 살고 있듯이 서로 다른 현실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도 아오마메는 별로 놀라지 않는다. ‘푸른 콩’이라는 평범하지 않은 이름을 가진 그녀는 그간의 삶에서 누구와도 공통점을 가져본 적이 없다. 항상 ‘넓은 바다에 홀로 내던져진 고독한 표류자 같은 마음이 들었다.’(p.11) 요즘의 물리학에서는 24차원까지 개념화할 수 있다고 하는데, 각기 다른 차원에 사는 사람들의 ‘현실’이 동일한 시공간을 공유하는 것이 오히려 어려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하루끼는 택시기사의 입을 빌어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한다. “그래서 그런 평범하지 않은 일을 하고 나면 일상 풍경이, 뭐랄까, 평소와는 조금 다르게 보일지도 모릅니다. 나도 그런 경험이 있어요. 하지만 겉모습에 속지 않도록 하세요. 현실은 언제나 단 하나뿐입니다.” ‘자아’의 ‘공기 뻔데기’를 폭파시킨 게이치로와는 다르게, 하루끼는 패럴렐 월드에 살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 세계를 넘어 덴고와 아오마메가 만나기를 주문한다. 덴고처럼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아모마메를 찾아 이 세계를 탈출하지 않으면,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 같지만 사실 저마다의 공기 뻔데기 안에 있는 내면의 풍경은 ‘히키코모리’와 다름없을 것이다. 하루끼는 그 히키코모리에게 죽을 것을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확장을 요구한다.

카프카의 패럴랠 월드

이 두 작가가 카프카를 읽는 방식이 다른 점도 흥미롭다. 카프카는 유럽의 산업 자본주의가 정점을 향해 달릴 때 부유한 사업가의 아들로 태어난다. 사업가로서의 확신에 가득 찬 아버지는 아들을 사업가로 만들기 위해 사위의 공장에 출자하여 카프카에게 공장 관리를 맡기려고 한다. 일과 벌이, 직업, 정체성이 한데 뭉쳐 근대적 인간형을 만들어 가던 근대 유럽의 정점에서 예술가적 자아와 일하는/일해야 하는 자아를 통합하지 못하고 ‘패럴렐 월드’ 속에서 살아가던 카프카는 아버지에게 저항하기 위해 두 차례 자살을 시도한다. 그리고 나서 아버지로부터 자기 삶의 주도권을 되찾은 카프카는 관료가 되어 낮에는 기계 사용법 등을 쓰는 단순 사무일을 하고 밤에는 꿈을 꾸고 글을 쓰는 두 개의 삶을 산다. 심지어 카프카는 글을 쓰기 위한 자신의 에너지를 최대한으로 유지하기 위해 몇 번인가의 연애에서도 실패하고 만다. 연애 편지를 쓰느라 자신의 기력이 소진하여 소설을 쓸 에너지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폐결핵에 걸려 직장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요양을 시작했던 때 카프카는 오히려 글을 쓰는 일만 하며 살 수 있게 되어 행복해했다고도 전한다. 글쓰기를 통해 점차적으로 모습을 구현해가는 자신의 세계를 지키기 위해 낮에는 도구적으로 돈 벌이를 하고, 퇴근하면 밤을 새워가며 글을 쓰던 카프카는, 히라노 게이치로의 눈에는 당대의 오타쿠이자 히키코모리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루키에게 카프카는 근대 이후 패럴렐 월드에 사는 것이 당연해지는 역사를 보지 못하고 ‘죽어버린’ 사람이다. “역사가 인간에게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명제는 ‘그 당시 앞일이 어떻게 될지는 어느 누구도 알지 못했습니다.’라는 것인지도 모른다.”(p.10)

‘무엇이 기반한 확신인가?’

이 시대의 성공과 평판, 생계 이 모든 것이 직업, 돈이라는 가치를 창출해 내는 세계로부터 비롯되는 것에서 이 소설 속의 비극은 시작된다. 개인의 다층화된 정체성들이 일반 세계 속에서 ‘직업 정체성’, 커리어를 통해서 구축되기 때문에 그 외의 자신의 경험과 돈이라는 가치로 환산되지 않는 일들로 구축된 또 다른 자기가 강한 ‘자아’로 자리 잡는다. 그렇기 때문에 택시기사의 현실은 하나이다라는 메시지는 중요하다. 우리는 히키코모리이든 그렇지 않든, 자기의 확신이 어떤 상황적인 토대를 가지고 있는지를 인식해야 한다. 자기 내부에 있는 여러 차원의 ‘현실’들 속에서 발생한 각각의 ‘확신’들이 서로 대화할 수 있도록, 자기 바깥에 있는 세계와 존재들과 감응하는 속에서 또 다른 현실을 구축해가도록 해야 한다. 자아의 분명함과 그 ‘진짜 자기’에 대한 고집을 조소하는 게이치로와 반대로 확신을 요구하는 하루키는 서로 입장의 차이가 있어 보일지는 모르지만 실은 같은 진단 속에서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오마메를 찾자, 덴고는 새삼 마음먹었다. 무슨 일이 있건, 그것이 어떤 세계이건, 그리고 그녀가 누구이건.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디스턴스>(2001)은 오움진리교 사건을 소재로 신흥종교집단에 가입하여 테러를 일으키고 집단에 의해 처형당한 신도들의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영화 속에 다음과 같은 대사가 나온다.

“고독한 새의 다섯가지 조건을 아세요?”
“첫째, 우선 고독한 새는 가장 높이 난다. 가장 높이… 얼마나? 다른 새가 난 적이 없는 만큼요. 더 높이. 둘째, 고독한 새는 동료를 걱정하지 않는다. 자기 자식 조차도. 셋째는, 고독한 새는 부리를 하늘에 겨눈다.”
“부리를 하늘에 겨눈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현대에 자신의 ‘자아’와 일상 세계 속에서 평가 받는 ‘자기’가 일치하지 않을 때 사람들은 자신의 ‘공기 번데기’를 구축하고 그 속으로 들어간다. 그것이 길건, 짧건 일시적이건 영속적이건 자본주의 시대를 살기 위해 사람들이 자신을 재충전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히키코모리가 되어가는 현대인들의 삶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할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지금, 선뜻 답을 내놓기 어려울 것이다. 그것은 정신의학자들의 몫이 아니라 오히려 현실 세계의 평범한 에이전트들 속에서 나올 답일 것이다. <디스턴스>의 몇 씬을 적으며 쪽글을 마무리한다. 요즘 인터넷의 ‘현시창’이라는 말과 “당신의 삶은 진짜냐?”는 질문이 머리 속에 반복하여 교차하지만, 우리가 이들을/우리를 어떻게 감히 ‘분석’할 수 있을까.

#1.
“저는 이제 완전히 다른 가치관으로 살고 있어요. 저는 진정한…”
“진정한은 무슨…”
“예전의 제가 아니라고 말씀 드리고 있는 거예요.”
“무슨… 너희들은 여전히 바보들이야. 네가 뭘 하고 있는지 알아? 법을 어기고 있는 거야. 그거나 알아? 니가 무슨 짓을 하는지? 너는 유혹을 하고 사기를 치고 있는거야. 허풍 집어쳐. 너 같은 녀석은 뭐 하나 제대로 못한다구. 그러니까 현실에서 도망치는 거야. 거짓말 하고 있네 직업도 없는 주제에 어떻게 벌어 먹일거야? 뭐가 단단히 잘못됐군.”
“그러면 미노루씨의 현실은 가짜 아닙니까?”
“뭐라구? 나가, 자식아”
“진짜 입니까?”
“‘진짜’는 또 뭐냐! 진짜가 뭔데? 여기서 나가라, 응? 허풍은 충분해, 이 자식.”

#2.
“학생 때부터 알아왔는데 정말 진지하고, 교육에 헌신적이었죠.”
“남편이 언제부터 변한 것 같아요?”
(잘 모른다. 고개만 갸웃)

#3.
“모르셨어요?”
“뭐요?”
“부인은 두 번 낙태를 했어요. 병원 기록에 다 있어요. 교단에 들어가기 전이죠.”

#4.
“형… 같이 살았지만 “우린 서로에게 별로 관심이 없었죠.””

#5.
“사일런트 블루라는 시간이 있는데,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에요. 밤에서 아침이 되는 순간이죠.”
“그러면 하루의 끝이야, 시작이야?”
“그러니까 하루가 끝나고 다음 날이 시작될 때죠.”
“그럼 나는 지금 사일런트 블루 안에 있나 봐. 다 끝내고 새로 시작하는. 역사에 참여하려고 하니까.”

2010-0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