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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학습의 시대를 기대하며

johancafe 2010.05.14 17:31 조회수 : 3298

송재희씨의 책 출간에 부쳐

1. 동네 뒷산에 산보를 갔었지요. 일요일이라서 그런지 아이와 함께 나온 어른들이 많았습니다. "이 애는 기집애처럼 샘이 많아요." "이애는 뭐가 될려는지 몰라요. 자기가 마음에 드는 옷만 입고, 절대 다른 것에는 눈도 주지 않아요." "얘는 너무 착해요. 동생도 잘 보살피고요." 이웃끼리, 또는 친척끼리 아이에 대해 품평하는 말을 엿들을 수 있었습니다. 학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어머니들은 아이의 특별한 성격이나 습관에 주목하면서 아이가 드러내 보이는 개성에 찬탄을 보이곤 하죠. 하나의 개성 있는 존재로 만들어져 가는 아이를 관찰하고 존중하면서 사람에 대해 보다 폭넓게 이해하려고 노력하게 되지요. 그런데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면, 그리고 고 학년이 되면서 어머니들은 변해갑니다. 어머니들은 '공부 잘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랜 나머지 아이의 개성을 무시하고 한 길로만 가라고 윽박 질러 많은 아이들이 열등감에 시달리게 되지요. 일류대학에 들어간 아이들도 이런 열등감에서는 자유롭지 못합니다. 결국 모두를 한 줄로 세울 때는 일등은 한 명 뿐이니까요.

부모의 철학이나 도덕의식이 너무 강해서 아이들이 억압받는 일도 많습니다. 우리 집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민주적인 아이를 기르고 싶어한 나머지 가족 회의를 자주 하고, 모든 행동에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면서 이유를 따져 묻는 식으로 두 아이를 길렀습니다. 그랬더니 한 아이는 회의를 아주 싫어하게 되었습니다. 말로 전할 수 없는 것들도 많은데, 그리고 어떤 때는 그냥 눈빛으로 알아보면 되는 데 일일이 따지는 분위기가 싫다는 겁니다. 또 그 아이는 살다보면 딱히 이유를 댈 수 없이 슬픈 때가 있는데, 그런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가족 분위기 때문에 혼자 방에서 울곤 했다고 하더군요. 논리적이기보다는 직관적이고 감성적인 아이에게 합리주의만을 강조하는 집안 환경은 억압적으로 작용했던 것입니다.

어떤 한 사람을 보고, 어떤 형이라고 규정해버리는 것은 별로 좋은 일은 아닐 겁니다. 사람은 언제나 변화할 가능성이 있고 그래서 현명한 할머니들이 아이는 자라면서 열 두번 더 변한다는 말을 해 오셨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태어날 때 생김새가 다르듯이 기질도 분명 다르게 태어날 것입니다. 그 기질이라는 것이 아이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략 그의 행동 반경을 결정하는 것은 사실일 것입니다. 오른 쪽 뇌가 발달한 아이가 논리적인 집안에서 자랐다고 해서 논리적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죠. 그는 계속 감성적인 예술 쪽을 기웃거릴 것이고, 그쪽으로 나가지 못하게 될 경우에는 아주 좌절한 사람이 될 가능성이 높지요. 아이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면 크게 변하지 않는 주제랄까 에너지가 작용하는 특정 방식이 보이는데, 그런 기본적 성향을 살려주어야 아이가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속된 말로 출세도 할 수 있지요.

특히나 '소품종 대량생산체제'의 시대를 지나 '다품종 소량생산체제'로 들어서는 시점에서 '중간만 가라' 든가 '튀지 말라'는 말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오히려 '네 마음이 끌리는 것을 하라.' '네가 신이 난다면 열심히 해보라' 또는 '눈치보지 말고 네 스타일을 찾아내기 위해 실험을 해 보라'고 말하는 것이 아이의 장래를 위해 좋겠지요. 아이가 자신의 에너지를 자기 스타일로 살려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자식 사랑법'의 제 일조가 아닐까요?

2.
여기 이 시대의 '자식 사랑법'에 대한 유익한 책이 하나 나왔습니다. 교사들이 읽을 때는 '학생 사랑법'에 관한 책이 될 것이구요.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사랑의 첫 걸음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가 가진 잠재력을 발견하고 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밀어주는 것이 그 다음 일이겠죠. 그리고 그것이 바로 교육이구요. 그런데 지금처럼 빨리 변하는 사회에서 이런 식의 아이 사랑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사회 적응이 힘들어지기 때문에 부모님들 중에는, 또 교사 중에는 거의 공포에 가까운 심정으로 아이들을 한 쪽으로 길들이려는 분들이 계시죠.

송재희씨는 그런 일이 벌어지는 세상을 바꾸고 싶어합니다. 단적으로 체질이 다르면 당연히 가르치는 스타일도 달라야 하는데, 현재는 모든 아이들을 똑 같은 식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는 여기서 이러한 학습법에 대한 대안을 제시합니다. 자유로운 상상력과 실험 정신을 가진 송재희씨는 20대에는 아주 활발한 창작 활동을 한 작가입니다. "신세대 네 멋대로 해라" "회사 가면 죽는다." 라는 책을 썼고, 또 "개 같은 날의 오후" 라는 아주 훌륭한 영화의 초기 시나리오를 쓰기도 했지요. 내가 그를 쭉 지켜본 것은 바로 그가 삶의 현장에서 이론을 만들어낼 수 있는 드문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과 같은 벤쳐시대의 표현으로 하면 그는 탁월한 개발자에 속하는 이지요.

내가 청소년 연구에 몰두하고 있을 즈음에, 그는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더군요. 아이들을 가르친다기보다 새로운 학습법을 아이들과 함께 개발하고 있었습니다. 삶을 있는 그대로 볼 대단한 능력을 가진 송재희씨는 학원에서 다양한 사고 유형과 기질을 가진 아이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는 대량생산체제에 길들여진 선생님이나 부모님이 "중간만 가라"고 윽박지르는 바람에 많은 아이들의 기가 소진한 상태에 있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들의 기를 살려보려고 여러 가지 궁리를 했습니다. 아이들이 자신감을 가지고 자유롭고 생산적으로 살 수 있는 길이 없을까? 또 자신이 원한다면 공부를 잘 할 수 있게 할 수는 없을까? 라는 숙제를 스스로에게 안기고 아이들과 함께 씨름을 한 것입니다. 아이들 속에 있는 가능성을 살려내는 실험을 한 것인데, 그 실험은 아주 성공적이었고, 그 실험의 결과가 바로 이 책입니다.

3.
우리는 사실상 사람들이 아주 다른 기본 성향을 가진 몇 부류로 나누어질 수 있다는 것을 오래 전부터 익히 알아 왔습니다. 그 분류 기준으로 혈액형을 들먹이기도 하고, 별자리 점을 보기도 하지요. 생년월일로 사주팔자를 보기도 하고, 사상 의학과 체질을 거론하기도 합니다. 심리학자들이 만들어낸 여러 가지 적성 검사 테스트도 다 이런 류의 성향 분류에 속하는 것입니다. 이런 분류를 절대적으로 받아들이면 아주 위험합니다. 마치 점을 보고 그 점에 매이는 것과 같거든요. 그러나 이를 다양한 사람의 성향을 알아가는 하나의 화두로 삼을 줄 안다면 아주 큰 도움이 됩니다. 나는 페미니스트 정신분석학자가 쓴 [우리 속에 있는 여신들]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그 동안 여성들 사이에 일었던 많은 반목과 몰이해의 근원을 이해하게 되었고, 나와 상당히 다른 성향을 가진 딸에 대해서도 아주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내 딸도 그 책을 읽으면서 이해하기 어려웠던 엄마의 행동이 이제 이해가 간다고 했습니다.

송재희씨는 체질이론을 현장에 적용시키면서 새로운 분류법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공부를 잘하는 비법을 마련했지요. 입시공부를 하러 온 학생들과 부딪기면서 쓴 이 책이 그래서 입시생과 더불어 사는 부모님이나 선생님들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선물이 될 것입니다. 공부를 잘 하게 하는 비법을 담고 있기 때문에 좋은 선물이고, 더 나아가 개개인의 특성을 알아서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갈 수 있게 도와주기 때문에 그러하지요. 더 이상 획일주의로는 살아가지 못하는 다원주의 사회로 돌입했습니다. 다원주의 사회의 입문서이자 공부 잘하는 비법을 담은 이 책을 부모와 교사들이 함께 읽고 활발한 토론을 장을 열어가면 합니다.


2000년 3월 12일 새로운 학습의 시대가 열리기를 기대하는 조한 혜정 씀


덧붙임: 참고로 송재희씨는 이 책에서 나온 체질 분류로 말하면 전형적인 소양인일 것입니다. 자유롭고 총명하며 솔직하고 정의로우며 열정적이지요. 송재희씨의 부모님은 그런 면에서 아이를 아주 잘 기른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송재희씨는 자기의 성향대로 아주 신나게 살고 있거든요.

2000-0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