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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현의 동네 걷기, 동네 계획, 추천글

조한 2015.12.19 09:32 조회수 : 2205

보행길의 발견과 새로운 삶의 시작

 

그가 미국에서 마을을 주제로 학위 논문을 썼다는 말을 듣고 실은 내심 걱정을 했다토건/건설이 삶/건축을 압도해버린 한국사회에서 그가 어떤 역할을 해낼 수 있을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유학 전부터 알고 지내던 터라 마을이 마구 사라져버렸는데 이제 오면 어떻게 그 전문성을 살릴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던 것인데 마침 그박소현 교수는 미국서 대학 교수가 되어 아이를 키우면서 지내겠다고 했다그러던 중 그가 갑자기 서울대학으로 옮기게 되었다면서 귀국을 했다나는 서울시 자문회의에서 간혹 그와 마주쳤고 삶이 살아 있는 도시를 만들어가는 일로 함께 고민을 나누곤 했다그는 당시 농촌의 노령화로 급격하게 피폐해가는 농촌을 살리겠다며 시작한 행자부 (맞나요?) 지원 마을지원시범 사업을 하고 있었고 그래서 함께 영월에 갔던 기억도 있다. 2006년 이준익 감독이 만들고 박중훈안성기씨가 주연한 훈훈한 영화 <라디오 스타>가 히트를 치던 즈음이었다그 후 서울 도심에 기적처럼 만들어진 성미산 마을의 담 허물기 프로젝트와 마을 골목길 프로젝트 등 자문회의에서 종종 마주쳤지만 여전히 토건업자들이 주도하는 세상에서 마을 이야기는 씨가 먹히지 않았다지하철을 깔고 거대한 아파트를 짓고 국민 총생산량을 높여가는데 골몰하는 한국은 그 공간확장의 속도에 비례해서 삶이 묻어있는 장소들상생의 기억을 가진 관계들을 밀어내버리고 있었다분배의 정의나 복지는 구호일 뿐 모두가 토건업자들의 놀잇감이 되어가고 있었다하드웨어만 있고 소프트웨어는 없는 불균형 사회집장사들과 건설마피아들이 판을 치는 토건국가에서는 우정과 환대의 동네가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물론 곡선의 골목길은 빠른 속도로 직선의 도로가 되어갔다그리고 2012년 골목길이 살아 있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건축학 개론>이라는 영화가 히트를 쳤고 시대적 감수성을 누구보다 잘 읽으며 곡을 짓는 가수 서태지 씨가 자신이 자랐던 <소격동>을 노래한 곡을 갖고 등장했다.


골목길이 살아 있는 동네는 사람들이 우연히 마주치고 말을 걸다가 때때로 필연적 관계를 맺는 곳이다다양한 활동들이 벌어지는 비공식적인 공공공간이며 그곳에서 아이들은 사람들과 어우러지는 공공적인 삶을 익히고 인간적인 시장에 대해서도 배워간다다섯 살 즈음 집 근처 구멍가게에 가서 두부를 사오라는 엄마의 심부름을 하면서 가족을 위한 생산적 노동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초등학교 일이학년이 되면 동네 만화가게나 비디오가게 아저씨 아줌마와 친해져서 마음을 털어놓는 관계를 맺기도 했다친구들과 함께 어울리기 위해 동네 안에 여러 곳을 물색하다가 아지트를 마련하게 되면 자신들의 구역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그렇게 아이들은 놀이하는 존재이자 무의미한 공간을 유의미한 장소로 만들어가는 존재로 자랐었다그리고 마을에서 자연스럽게 부모와 좀 다른 어른들을 관찰하고 또 친해지는 사회적 존재로 성장할 수 있었다곡선의 골목이 사라지고 각진 아파트에서 살면서 아이들은 삶의 경험으로부터 멀어졌다동네 골목길을 걸어본 적이 없으며 동네 어른들에게 인사하지 않는다그들은 학교에서 바로 학원버스를 타고 학원으로 직행하고 돈으로 사는 공간에서 돈으로 산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더 이상 그들을 위한 동네는 없다.


도시는 기본적으로 상하수 문제를 해결하고 전기 문제를 해결하면 주민들이 스스로 일상을 살아가고 불편함을 고치고 보다 나은 동네를 만들기 위해 모여 의논해야 하는 것 아닌가우리가 다시 회복해야 하는 것은 콘크리트 구조물로 뒤덮인 직선들의 대한민국이 아니라 휴먼스케일의 걷기 좋은 동네들이 아닐까공동육아로부터 마을 살이를 시작한 성미산 기슭의 주민들이 전국에서뿐 아니라 세계에서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마을 살이에 대한 소개를 하느라 몸살을 앓고 있다이 역시 좀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는 절박한 생각을 가진 이들이 늘어났다는 징표일 것이다좀 다른 삶을 살고자 하는 소박한 시민들의 욕구말이다인왕산 기슭 개미 마을이 후기 근대적 보존 동네로 부상하여 젊은 연인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장소가 된 것도 이런 연유에서이다오로지 편리와 효율과 이윤을 따지다가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하고 곡선의 골목들이 있는 삶을 상상하는 기억과 상상의 장소가 필요해진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박소현 교수의 동네 걷기동네 계획에 대한 책은 참으로 소중한 책이다이 책에 실린 사진만 보아도 가슴이 따뜻해지지 않는가나는 지난 십년동안 마을이라는 화두로 이야기를 해왔다마을이 무엇인지를 묻는 대학생들에게 예전에 내가 알던 마을을 이야기 하려는 것이 아니다나 역시 도시에서 태어나 그런 고향이 없는 사람이다그러나 인간은 외톨이로는 살 수 없는 존재이고 지금 우리 모두가 각자도생하는 외톨이로 살게 되면서 불안에 가득한 채 살아가게 되어서 다들 아픈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다앞으로는 재난과 재앙이 더욱 자주 올 수밖에 없는 세상이 오는데 그 때 도움을 청할 이웃이 있는지를 묻고 싶은 것이고 도움을 줄 여유가 있는지도 묻고 싶은 것이다일베충 맘충 등 서로를 적대시 하는 용어가 난무하는 와중에/벌레가 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길은 상부상조하는 이웃과 단골이 있는 마을에서 살아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돌이켜보면 1997 IMF 구제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패닉에 빠진 부모들이 자녀들을 다시 개발독재 시대의 존재로 키우기 위한 관리를 시작하면서 한국의 근대화는 진화가 아니라 퇴화를 하기 시작했고 사회적 진화를 위한 실험은 중단되었다교육개혁도 수포로 돌아갔다대신 사교육시장과 기존의 교육계가 초경쟁 입시제도 교육을 강화시키면서 삶을 더욱 빈곤하게 만들었다이 와중에 우리는 관계에 대한 감각협력을 통해 얻기 되는 지혜의 소멸한가로움과 너그러움의 감각을 잃었다승자독식 사회에서 무시와 모욕을 당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늘어났고 국민들은 점점 과민하고 적대적인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아파트 층간 소음 살인을 저지르는 헬 조선은 그런 근대화 과정의 산물인 것이다보다 나은 삶의 기회가 주어졌던 경제성장기의 부모들과 달리 청년들에게는 기회조차 오지 않아 이들은 금수저은수저동수저 흙수저로 분류하는 수저 신분제 사회를 말하게 되었고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이민을 떠나겠다고 한다이렇게 몰락하는 시대를 생각하면 이 책은 좀 너무 늦게 나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해가 질 즈음노을이 아름답듯이 동네와 골목길 이야기는 어쩌면 그 마지막을 아쉬워하는 이야기 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수도 있고 나는 그렇지 않아야 한다고 믿기에 이 추천의 글을 쓰고 있다나 역시 그간 내가 사는 동네에 무슨 식당이 있는지 어떤 산책일이 있는지 몰랐다뒷산에만 부지런히 올랐지 동사무소나 구청에도 간 적이 없었다그냥 거대한 국가의 국민으로 그 국가가 잘 되기를 바라면서 몸 바쳐 살았던 것이다그러나 지금은 다시 마을로 돌아오려 한다국가는 내 삶의 적은 일 부분일 뿐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1987년 민주화 항쟁이 성공한 이후 민주적 삶을 열망한 청년들 중에 마을로 들어가서 활동을 시작한 이들이 적지 않다최근 들어서 서울시에서는 후기 근대적 위험사회의 도시적 삶을 화두로 가져가면서 마을 공동체 지원센터를 만들어 관과 민이 협력하는 마을 살이’ 지원 사업을 시작했는데 이 주역들도 그 때 지역적 삶으로 눈을 돌린 이들이다.그들은 좌충우돌 시행착오도 하면서 상호부조하는 도시내 마을을 만들어 위험사회를 잘 살아낼 모델을 보여주고 있다국민만 있고 시민/주민이 없던 나라에 동네 주민들이 생겨나고 있고 함께 집밥을 먹는 동네부엌과 단골가게가 들어서고 있고 그들을 이어주는 골목길이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홍제천 변에 사는 나는 밤에도 산책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산책을 오가며 동네사람들을 만나고 있다동네 리사이클 가게가 어디에 있는지도 알게 되어서 그곳에서 옷도 사 입는다고르기에는 너무 많은 상품이 있어 머리가 아픈 백화점보다 걸어서 십분 거리에 있는 옷가게는 얼마나 편리한가게다가 옷가게 언니는 내 스타일을 알아서 계절 맞추어 내게 맞는 옷을 골라 가져다 놓기까지 한다걸어 다니다가 조미료를 넣지 않는 조기 백반집도 찾아내었고 새로 지은 주민자치회관 앞 빈터에서 벌어지는 아이들 장터도 알게 되었다아이들은 자기들이 입던 옷과 장난감을 팔면서 그곳의 주인이 되고 형 동생들과 사귀게 된다복개한 개천에서 연어 떼가 몰려오는 것을 보러가다가 우연히 발견한 카페는 남미에서 오랫동안 여행하다가 온 멋진 부부가 꾸러가는 곳인데 손자의 첫 번째 단골카페가 되었다그 카페를 다니다가 버스 정류장을 보게 되었고 내가 구태여 차를 가지지 않고 가볍게 버스를 타고 갈 수 있는 곳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산화탄소도 덜 배출하게 되었다!) 개천의 징검다리를 지름길이 있었던 것이다박소현 교수의 표현대로 나는 걸어서 많은 것을 편하게 할 수 있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많이 걷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허리병도 낳았고 또 모르던 많은 것을 알게 된 것이다그리고 더 이상 거대한 백화점 같은 곳에 가지 않아도 되는 고상한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그래서 시 단위 공동체 위원회 위원을 마다하고 구 단위 마을 공동체 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초고속 근대화 과장을 거친 한국의 국민인 우리는 글로벌 자본주의체제가 만들어낸 기후 변화와 같은 글로벌 위험의 문제를 풀어야 함과 동시에 초고속 불균형 발전으로 인해 파탄이 난 삶의 질을 회복해야 하는 상황에 도달했다시민들이 서로 신뢰하면서 돕고 재난시에 자발적으로 협력하면서 문제해결을 하는 시민적 훈련을 해야 할 때가 되었다그간 개발독재적 상황에서 수동적으로 살아온그리고 돈만 있으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게 된 사람들에게 그간의 삶을 근원적으로 성찰을 해보자는 말은 매우 낯선 말일 수 있다그러나 이제 자신의 소외된 삶그리고 그로인해 더 이상 성숙을 기대할 수 없는 사회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점에 도달했다.


이 책은 보행이라는 화두로 마을그리고 마을살이에 대해 질문하게 만든다나는 동네에 살고 있는 주민이 맞는지동네를 다니면서 마주치면 인사하는 동네 분들이 몇이나 되는지단골 가게가 몇 개나 있는지급할 때 SOS를 칠 이웃이 몇이나 되는지 생각해보게 한다아이가 있다면 아이들을 안전하게 키우고 있는지동네 어둑한 곳을 한 평짜리 공원이라도 만들어보자고 제안을 하고 싶어지는지마을버스를 좀 더 작은 소형버스로 대체하면 마을이 좀 더 아늑하고 안전해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하는지마을 방송국을 차려볼 생각을 해봤는지김장철에 혼자 사는 이들에게 김장포기를 전달해주기는 하는지이웃에 반찬 잘하는 아주머니를 알고 있는지돈 없이도 며칠은 마을에서 그런대로 먹고살만 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 가늠해보게 한다이런 관계적인 삶은 갑자기 정전이나 수해와 같은 재난사고나 폭력사태가 일어도 공포에 빠지지 않고 문제 해결을 할 수 있는 비빌언덕이 되는 관계이다또한 소소한 일 같지만 사회적 경제와 동네 경제를 키워가는 바탕이 되기도 한다화폐가 주인인 세상에서 벗어나 살림/살이 경제가 커지는 전환을 이루어낼 수 있고 아이를 함께 키우고 노인의 장례식을 함께 치루면서 오래된 친척보다 귀한 관계를 맺어가게 되는 것이다일상에서 관계가 살라살아 있는 삶을 살아냄으로 현대의 파편화되고 적대적인 삶의 위기를 모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바라건대 동네에서 느린 시간머물러 있는 단골의 장소그리고 느슨하나 지속적인 환대의 관계를 맺어 행복해지기를 바란다지역 자체가 계급으로 나뉘어져버린 시점에 무슨 계급을 고착시킬 논의냐고 비판하는 이들이 있겠지만 인간적 삶의 가장 근본은 사회를 형성하는 것이고 지금은 바로 그 사회가 실종되고 있는 위기이기에 관계의 회복은 더욱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이웃과 인사하는 것그리고 동네를 걷어 다니면서 정을 붙이는 것은 다시 우리 안에 사회를 회복하고 사회적 감각을 회복하는 시작점이다아이를 낳고 키우며 나이 들어 병들고 죽어가는 인간의 삶은 가족을 이루고 이웃과 더불어 상부상조하는 삶에서 시작하고 이런 이웃 간 느슨한 유대가 바로 시민적 공공성을 형성해내는 토대이다앞으로 올 난세를 잘 살아내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면서 슬슬 동네 산보를 나가보기를 권한다세상을 지혜롭게 살아내는 것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다그것은 작고 소소한 관계들 안에서 시작되는 것이고 많은 고민은 익숙한 길을 걸어 다니는 와중에 가운데 풀리는 것이다걷는 것이 즐거운 마을사람과 삶그리고 곡선이 되살아나는 대한민국을 상상하고 만들어가는데 이 책이 한 몫을 제대로 해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