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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 삶의 상징, 그 문화적 각본은 바뀌고 있는가?

johancafe 2010.05.14 19:54 조회수 : 4022

일상적 삶의 상징, 그 문화적 각본은 바뀌고 있는가?


문화변동에 관심이 있는 사회과학자와 문인들이 정기적으로 모이는 어느 토론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사회학자가 "우리들의 사회관계는 갈수록 피상적이고 상투적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사회가 문화를 가지고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말하자 그 모임에 있던 몇 명이 거세게 반론을 제기했다. 어떤 기준에서 그런 말을 하느냐? 그동안 당신이 유학했던 불란서적 생활의 '맛'에 너무 익숙해져서 그런 생각을 갖게 된 것이 아니냐? 돌아와서 10년이 지났는데도 그렇게 말한다는 것은 그동안 자기 자신이 의미깊은 관계를 맺으려는 노력을 덜 해 왔기 때문이 아니냐? 문화가 없는 사회란 있을 수 없다는 등으로 집중공세가 가해졌던 것으로 기억된다. 인류학자로서 자민족중심주의의 위험을 수시로 강조해온 나도 공세에 가담했음은 물론이고 그 사회학자는 수에 몰려서(?) 자기 반성을 그 자리에서 해야만 했다. 그러나 "사랑에 대한 문화적 각본"이라는 논설을 쓰면서 나는 내 글의 결론이 내가 공박한 그 사회학자의 변과 매우 흡사하게 나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혼자 컴퓨터 앞에서 머슥해하며 웃었던 기억이 난다. 사실상 그 문제는 그리 간단히 끝날 주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문화란 무엇인가? 인류학 교과서적 정의를 받아들인다 치자. 문화는 인간이 환경에 적응해 가는 적응전략이며 구성원 상호간에 관계를 맺어가는 게임의 규칙이며 행위의 문법이므로 한 사회가 깡그리 무너지기 전까지는 어느 사회에나 문화는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논의의 핵심은 문화가 "있고 없고"의 차원이 아니라 제대로 된 문화인지 아닌지의 차원에 있어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소위 문화에 대해 나름대로 이해가 있다고 생각하는 학자들은 이 방향의 논의를 은연중에 회피해 왔음을 알게 된다. 자유주의적 경향을 가진 지식인 일수록 문화가 제대로 된 것인지 아닌지를 논하며 흥분하는 사람들을 무시하는 눈으로 쳐다보는 경향이 없지 않다. 문화가 제대로 된 것인지 아닌 것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그 사회 성원들이 자신의 현재적 삶에 얼마나 만족해 하고 있는지, 그리고 장기적으로 이 사회가 변화무쌍한 환경에서 잘 살아남을 것인지에 대한 평가가 내려져야 하는데 사실상 그 평가를 내리기는 무척 힘들다. 제대로된 평가를 내리기 어렵기 때문에 어느면에서 우리는 아예 평가 내리기를 포기하는 지도 모른다. 편협한 민족주의자나 고리타분한 유교주의자나 서구지향적 근대주의자들의 대열에 끼여 자칫 몸을 더럽힐까 두려워 하면서 말이다.

이런 태도는 '문화적 상대주의'라는 학문적 용어와도 관련되어 있다. 상대주의의 근거로 인류학자들은 모든 사회는 나름대로 환경에 적응하는 적절한 방식을 발전시켜 왔다든가 사회란 워낙 적응력이 높아서 좀체 자기동일성과 통합성을 잃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해 왔다. 사실 제 3세계를 연구하는 서구의 사회과학자들은 대부분 상대 사회를 자민족중심적으로 이해하는 잘못을 저질러 왔고 또 여전히 그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있다. (우리 역시 그들보다 더 나을 것은 없으나 그동안 약소국가로서 다른 사회를 총체적으로 알아갈 시도조차 하지 못 한 터이므로 결과적으로 그들처럼 일을 저지르지는 않았다.) 따라서 상대주의적 시각은 분명 강조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 상대주의적 입장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다 보면 우리는 판단중지를 할 수 밖에 없게 된다. 1920년대에 에드워드 사피어가 '진정한 genuine 문화'와 '피상적이고 상투적인 가짜 spurious 문화'를 구분하여 이 문제를 풀어보려 하긴 했는데, 그의 논지는 개인의 다양성을 충분히 살리면서 그 다양성을 묶어 낼 수 있는 문화가 '좋은' 문화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방면의 논의는 인류학이 장기적인 현장조사중심으로 흘러가면서 거의 맥이 끊기고 말았다. 더구나 제 3세계의 발언권이 세어지면서 서구인류학자들은 자신들이 연구한 제 3세계 사회에 대해 직접적 언급을 하기를 꺼리게 되었고 그런 와중에 그들이 한 것은 문화적 상대주의의 원리아래 자신이 연구한 사회를 소설화해 내는 작업이었다. 물론 그 소설중에는 {외로운 아프리카인}과 같은 훌륭한 작품들도 더러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인류학은 초기에 비해 덜 "관여적인" 학문이 되어버렸다.

한편 제3세계 인류학자들은 자기 나라의 열등성을 손쉽게 감출 수 있는 이 원리에 대해 구태여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다. 많은 인문과학자들도 이런 입장에 편승했다. 우물안의 개구리들처럼 외쳐대는 보수적 국수주의자의 외침에 진력에 난 지식인들에게 '문화적 상대주의'는 상당히 편리한 도피처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온통 판단투성이인 학문에 매몰되거나 아니면 서양학문을 통채 수입하는 일을 할 뿐 우리 자신들의 현실을 가지고 토론해 가지는 않는 일은 보류 내지 회피해 왔던 것이다. 그런데 엄밀히 한 사회의 문화적 저력이란 그 사회구성원들의 자기성찰능력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이 두 입장, 즉 교조주의와 상대주의적 태도가 존속하는 가운데 우리는 많은 정신적 출혈을 해 왔던 것이다. 방법론적 상대주의의 입장에 서되 '좋은' 문화는 어떤 문화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문제제기를 해 가야 하는 데 우리는 그것은 해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사회는 바람직한 분화변동을 이루어 내고 있는가? 사회의 구성원들이 자신의 문화가 자기에게 맞지 않다고 느낄 때 스스로 대안을 모색하고 확산해 나감으로 보다 적절한 문화를 만들어가고자 노력하는가? 이런 질문을 던져보면서, 다수의 공박을 받았던 "피상성"과 "상투성"에 관한 사회학자의 말을 다시 생각해 본다.

최근에 한 사건이 있었다. 단과대 단위 교수회의가 열린 날이었다. 안건은 학장선출이었고 교수들은 지성인답게 다들 정각에 모였다. 우리는 88년부터인가 학장을 교수들의 선거를 통해 선출해 왔는데 선거를 하여 두 후보를 뽑고 총장에게 추천하면 총장이 선택하는 식으로 해왔다. 회의초반에 불쑥 이번에도 교수들이 직선을 할 것인지의 문제를 토론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다른 교수가 그 제안을 받아 이제 선거를 그만 두고 총장에게 맡기자면서 "학장은 행정직인데 총장님께서 일 하시기 편하게 일임하는 것이 좋겠다. 지난번에도 나는 선거를 반대했지만 선거만능이 민주주의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지난번 선거 후에 서로 얼굴을 붉히는 일도 없지 않았는데 이런 작은 사회에서 선거를 한다는 자체가 전혀 합리적이지 않은 일이다." 라고 했다. 여론이 급속히 선거를 안하는 쪽으로 나가고 있었고 투표를 하겠다는 사람은 뭔지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분위기가 돌면서 모두가 눈치만 살피는 듯 했다. 그 답단한 공기라니! 드디어 "반대하는 사람 없습니까?"라는 질문이 나올 지경에 이르자 한 젊은 교수가 절박하게 선거를 안 한다는 것이 그냥 옛날처럼 총장에게 모든 것을 일임한다는 것인지 다른 대안을 토론하겠다는 것인지를 물었다. 머뭇 머뭇 반론들이 이어졌다. 아무리 전통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하더라도 이제까지 하던 방식을 바꾸려 한다면 그것에 대해서 좀 더 토론이 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고, 그래도 민주화의 한 과정으로 생긴 제도인데 그렇게 쉽게 바꿀 수 있는지 잘 생각해 보자는 의견도 나왔다. 선출과정에 오른 교수끼리 얼굴 붉히고 했다면 그것은 우리가 극복해가야 할 문제이고, 원래 두명을 뽑아 총장이 선택하게 되어있는데 총장재량권 운운할 필요가 왜 있는지 등의 반론도 있었다. 그러자 연달아 이 의견에 맞서서 몇명의 교수들이 발언을 했다. "시류에 따라 직선을 하게 된 것인데 그게 어디 꼴이 좋으냐?"라든가 "다른 단대에서도 선거를 안하기로 했다." "아버지를 투표로 뽑느냐?" "미국대학 어디에서도 학장을 직선하는 데는 없다." 는 등의 내용 이었다. 이래저래 말이 오가다가 한시간 만에 선거를 안하기로 결정이 났다.

이 결과 자체는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어차피 학장을 선거로 뽑기로 한 것이 다수 교수들의 열열한 제안에 다라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던 만큼 그 관행은 쉽게 번복될 수 있는 것이며, 이 결과에 대해서는 나처럼 평소 그런 일에 무심했던 교수들의 책임도 크다. 하여간 회의를 끝마치고 나오면서 나는 황당하고 허망했다. 해방 후 교수회의에서는 폭력이 오가기도 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고 그런 기준에서 볼때 이 회의는 얼마나 점잖은 회의였는지 모른다. 그러나 글쎄다. 그때의 교수들과 지금의 교수들의 머리속 깊숙히 박혀 있는 문화적 전제들은 얼마나 바뀌었는지? 교수회의가 내가 종종 참여관찰을 가는 시골의 종중회의와 별 다름이 없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어쩌면 교수사회가 유독히 무풍지대이기에 변화가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회의에서 충격을 받은 바가 크다고 우리 사회에 문화변동이 없었다고 단정짓는 것은 근시안적인 판단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규칙이 없는 우리 회의문화의 진수(?)를 우리는 국회공청회를 통해 보아왔고 - 우리는 이 모든 회의진행을 비디로로 떠 놓아야 할꺼다.- 당하면 어이없어 하면서 넘어가 버리는 다수 참석자들의 모습은 또 최근에나 나타난 진풍경은 아니다. 무엇인 축적된단 말인가? 지난 100년의 근대화를 통해 우리들이 공유하는 상징은, 행위의 각본은 얼마나 바뀌어졌단 말인가?


이 회의를 통해 변동의 가능성을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의견이 나왔으므로 무엇인가가 바뀌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반대의견을 내다가 어이없어 물러선 교수들이 상대적으로 젊은 층의 교수들이었던 만큼 그들이 장년층이 될 때는 교수회의가 이와는 다른 식으로 진행될 것을 기대해 볼 수 있다. 세대간에 커다란 인식의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언어사용에 있어서만도 그렇다. '총장'을 언급할 때 꼬박 꼬박 '님'자를 붙이고 각별한 존대어를 쓰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렇지 않는 사람이 있다. 한쪽은 총장을 부를 때 위계서열적 질서체계속에서 가장 윗자리를 차지한 구체적 인격을 지칭하며 다른 한쪽의 경우 '총장'은 상당한 인격과 지도력과 수완을 필요로 하는 하나의 직급일 뿐이다. 양자가 똑같이 '총장'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더라도 그 단어가 상징하는 바는 그만큼 다른 것이다. 사실상 이 둘의 경우 '아버지'에 대한 상징 역시 다를 것이다. 전자의 경우 아버지는 무조건적 권위를 갖는다. 후자의 경우 '아버지'도 자녀를 시도 떄도 없이 때리는 등 경우에 따라서는 다시 뽑을 수도 있다. 이러한 사고방식의 근원적 차이는 회의에서 뿐만 아니라 일상적 학교생활에서도 드러난다. 예를 들어 한 쪽에서는 "교수는 아무리 더워도 강의할 때는 넥타이를 매는 것이 예의이다. 세타쪼가리나 걸치고 다니는 교수가 어디 되어먹은 교수인가? "라며 눈살을 찌푸리는 반면 다른 쪽에서는 "교수는 일차적으로 좋은 선생이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강의를 성실히 하는 것이며 복장은 부차적이다. 편하게 입어야 강의가 잘 되는 교수가 편한 복장을 하는 것은 문제될 것이 없다"라고 말한다. 아마도 이런 글을 쓰는 것에 대해서도 의견은 갈릴 것이다. 한쪽에서는 교수회의를 문자화하여 외부에 내 놓는 것 자체를 놓고 집안일을 바깥에 가지고 나갔다고 못마땅해 할 것이고 다른 쪽에서는 이런 일은 대내,내외적으로 드러내 놓고 마땅히 자주 토론되어야 한다고 할 것이다.

결국 세대가 바뀌면 문화가 바뀐다는 소리인가? 그렇다면 근대화 100년동안 적어도 다섯세대가 바뀌었을 터인데 우리의 회의문화는 왜 이리 바뀌지 않았는가? 세대 교체자체는 아무런 변화를 가져오지 않지 않는가? 나는 입시경쟁속을 살아남은 지금 청년세대가 겉모습은 포스트모던할 지경이나 나의 아버지 세대보다 보수적이고 위계서열적이며 획일적임을 본다. 그러면 무엇인가? 나름대로 새로운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어디서 나오며 그들은 또 왜 지배문화의 흐름을 바꾸지 못하고 중도탈락을 하고 말았는가? 우리는 여기에 대해 하나의 변명을 갖고 있다. 창조적이고 변혁지향적인 사람들은 다 숙청되었다는 설명. 나는 일제말 청년기를 지낸 아버지로부터 자신이 기독교적 배경을 가지고 있지 않았더라면 자기의 많은 유학생 친구들이 그랬던 것처럼 사회주의자였을 것이고 난리통에 변을 당해 이 세상에 남아있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여러번 들었다. 근대사를 통해 변혁적 씨앗들이 거세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며 이것이 우리 시대의 불행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후 벌써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가? 그것이 충분한 답이 될 수는 없다.

우선 새로운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 보자. 새로운 사고를 하게 되려면 어떤 계기가 필요하다. 농경주의적 삶에서 산업사회적 삶으로의 이동은 워낙 엄청나게 다른 삶의 양식으로의 전환을 요구하기에 '단절'적일 수 밖에 없다. 우리 주변에서 그나마 새로운 것을 소화한 이들의 배경을 살펴보면 개화주의자, 기독교, 그리고 독립운동가 집안등의 흔적을 찾아낼 수 있는데 그것은 이들이 바로 '현재'로부터의 아주 확실한 단절의 계기를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는 근대적 대중교육이 이 단절의 계기를 마련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가족의 영향력이 엄청나게 큰 때문인지 근대적 교육이 그 힘을 발휘했던 시기는 얼마 길지 않은 듯하다. 하여간에 근대를 통해, 그리고 해방 이후에도 우리 사회는 새로운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길러왔던 것은 사실이나 그 힘은 무척 미약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거의가 '괴짜'의 범주에 든 채로 처리된 면이 없지 않다. 그들은 고립되어 있었다. 그들의 생각이 세대를 이어 확대되어 가면서 새로운 문화적 뿌리를 단단히 내린 예를 우리는 별로 알지 못하고 있다. 문화변동은 주변 어딘가에서 나온 새로움에서 싹트는 것인데 그 새로움이 "괴짜" 내지 "돌연변이"라는 상징으로 가볍게 처리되는 상황에서는 진정한 변혁을 기대할 수 없다.

현재 변혁지향적 지식인중에는 상황이 이렇게 된 요인을 외세나 국가 권력의 집중현상과 관련지어 찾아내고 처방을 내리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 처방 역시 상당히 피상적이고 상투적인 것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데, 나는 그 이유를 그 처방이 여전히 공식적인 수준의 것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사회구성원 개인들이 자신의 삶과 관련지어 토론하고 실천하며 또 검정할 수 있는 수준의 처방이 아니다. 우리들의 삶이 공식영역과 비공식(사적)영역을 포괄하는 것이 엄연할 사실일진데 한 영역에 치우친 처방은 효력을 갖기 힘든 것이다. 공식 영역에서 극히 '현대적'인 사람이 집안에서는 극도로 '봉건'적 속성을 보이는 경우를 보면서, 젊은 시절 '근대성'의 표본으로 살던 사람이 60세가 되면서 '보수봉건'으로 회귀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상황에 따라 자신의 신념을, 문화적 각본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것은 대단한 (연극적) 재주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상황주의적 태도가 팽배한 만큼 각본 자체를 바꾸려는 노력은 기피될 것이고 그 사회에는 점차 사상이나 신념이 없는 상황주의적 상징만 남게 될 것이다. 표방가치와 실천가치가 따로 있으며 편법과 위세적 과시가 판을 치고 다수의 성원이 피해의식에 시달리는 사회를 우리는 익히 알고 있는데 앞서 우리가 '피상성'과 '상투성'이란 단어를 쓰면서 떠올린 것은 바로 이런 현상들이 아니었을까? 일상성과 비일상성, 상식적 지식과 제도적 지식, 사적영역과 공적영역에서의 균열과 괴리속에 우리 문화는 그동안 몹시 황폐하게 변질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구성원 개인은 불편을 느낄수록 개인적 차원의 자원을 동원하여 상황을 호전시키려 했을 뿐이지 집단적 노력을 통해 문화적 각본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 학교를 아무리 다녀도, 회사를 다녀도, 선거를 통한 근대적 정치참여를 해도 그 공적 경험은 마음깊이 자리한 상징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경험이 아니었다. 공식적 지식습득이 반성적 과정을 거치지 않고 이루어진 만큼 그 습득은 피상적인 것이 될 수 밖에 없었으며 쉽게 얻어졌던 만큼 쉽게 버려졌던 것이다. 오히려 생존에 급급한 개인적 전략만이 판을 쳤다. 상징의 변화는 집단수준의 노력이 일어야 비로소 가능하다. 사실상 그것은 집단적 합의를 전제로 하므로 시간이 걸리고 정서구조를 건드리므로 열받는 일이며 거의 체질화되어온 부분을 건드리기 때문에 힘들다. 우리는 그것을 이루어낼 참을성을 잃고 만 것이다.

그러면 이제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나는 대안적 문화운동을 벌이는 모임에 참여하면서 운동을 확장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 바로 이 이중성에 있다는 생각을 해 왔다. 주체적이기를 아예 포기한 식민지적 사회의 특성인 이 이중성. 강요된 근대화과정에서 서구적인 것을 받아들이기에 급급하여 우리선조는 아마도 자신의 통합성을 포기해야 했을 것이다. 소화하면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엄청난 양의 정보를 받아들여야 했기에 그들은(우리는) 그들(우리) 자신을 정신분열증 환자로 만들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자신의 실천이 새로운 상징의 창출로 이어진다는 가능성을 더 이상 믿지 않게된 사람들. 새로운 지식과 말을 끊임없이 외부에서 가져옴으로써 지식인이 되는 식민지적 사회 가장 앞장 서서 그 가능성을 포기한 지식인들. 이런 면에서 후기산업사회에 들어서서 앓고 있는 서양의 정신분열증과 우리의 것은 성격이 다르다. 따라서 지식인 문화와의 단절없이는, 그들이 집착하는 언어와 전문성의 포기 없이는, 일상성속에서 우리를 찾으려는, 그래서 자신의 동일성을 회복하려는 새로운 노력 없이는 우리 사회에 문화변동은 일어날 수 없지 않느냐는 것이 나의 요즘의 생각이다.

내가 여성운동에 기대를 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일상을 꾸려가야 하는 여성들은 그래도 상식정인 부분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피상성과 상투성을 불편해 하고 임금님의 벌가벗음 모습을 보고 벌거벗었다고 말한다. 그들이 꾸려가는 일상과 '수다'는 아무리 공허하고 황당하다 하더라도 남성 지식인들의 회의석상에서보다는, 또는 그들의 술주정보다는 더 당황하거나 공허해 질 수는 없다. 내가 자주 가는 여자들의 회의에서 나는 형식적 진행발언이나 지식자랑으로 시간을 허비하거나 결정된 사항을 밀어부치거나 보이지 않는 권위와 압력 때문에 할말을 다 못하는 경우를 별로 보지 못했다. 기존의 지식인 자리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여성들이 모이는 몇몇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물론 이권개입이 없으니까 그럴 수도 있다. 어쨋든 제도적이고 공식적 영역의 비합리성을, 뚜꺼운 가면 아래에서 떨고있는 허약함을 이제는 해체할 떄가 되지 않았는지....

우리는 그러면 어떻게 문화적 '단절'을 이루어낼 해체작업에 들어설 수 있을까? 아이들은 자라가야 하고 생활은 꾸려가야 하며 인간은 숨쉬면서 지구상에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바로 보게 하는 인식의 단절을 우리는 어떻게 이루어낼 수 있을까? 포스트모던적 상황에 들어서면서 이 작업은 더욱 더 어려워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중의 정신분열증 환자는 오히려 쉽게 제 정신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든가? 어찌 포기하랴! 어딘가에서 오염된 몸을 씻어보려는 지식인들의 소리가 들린다. 자신들의 생존의 기반이 흔들림을 이제야 깨닫고 일상적 삶에 귀기울이기 시작했는가? 글읽기와 세상읽기의 이분화를 없애기 위해 책을 안 보고 세상을 들여다 보기 시작했는가?


1991년 8월 27일 아카데미 [대화]원고

1991-0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