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eld Trips Anywhere
CHO(HAN)Haejoang
Field Trips Anywhere
CHO(HAN)Haejoang

가족 사회학 (유계숙)

johancafe 2010.05.13 18:55 조회수 : 4214

오늘의 한국가족과 가족영화


유 계 숙
경희대학교 생활과학대학 가족학 전공 교수



들어가며...

전통적 가족주의 이념에서 강조하는 부계혈통 및 가문의 영속성은 혈연과 혼인을 통해서 형성된 관계만을 가족의 범주로 규정하는 하나의 이념을 만들어낸다. 즉 특정한 형태의 가족에 대한 문화적 이상형을 ‘표준가족(benchmark family)’이라 하며, 그에 대한 신념을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라 한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표준가족으로 여겨지는 ‘부부와 그들이 낳은 미혼 자녀로 구성된 핵가족’ 이외에 한부모가족, 재혼가족, 조손가족, 분거가족(예, 기러기아빠, 주말부부 등), 입양가족, 동거커플, 미혼부·모, 동성애커플 등 가족 형태가 급속하게 다양화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대하여 가족학자들은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반영한 표준가족의 개념을 대체하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들’을 포괄하는 정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최근 한국영화는 어느 때보다도 빈번하게 가족을 소재로 다루면서 전형적인 가족의 의미나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탈피한 가족영화들이 잇따르고 있다. 이처럼 영화 속에 그려진 가족의 모습이 달라지고 있는 현상은 우리 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가족의 변화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임을 시사하는 것이다. 본 발제에서는 오늘의 한국가족에 나타난 주요 변화와 함께 최근의 가족영화에 그려진 우리 가족들의 모습을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시대적 가족상의 반영에 그치지 않고 향후 가족에 대한 전망과 대안을 모색할 수 있는 가족영화의 필요성에 대해서 논의하고자 한다.


한국가족의 변화와 가족영화에 그려진 가족상

1. 결혼에 대한 회의, 선택으로서의 이혼

우리 사회에서 가족에 대한 전통적 개념이 붕괴되면서 가장 주목할 만한 변화는 결혼율이 감소하고 독신율과 이혼율이 증가하는 현상이다. 최근 젊은이들의 결혼관은 기성세대의 그것과 큰 차이를 보인다. 즉 ‘결혼할 나이가 되었으니 결혼한다’는 게 기성세대의 결혼관이었다면, 오늘의 결혼관은 결혼연령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진보적이며 자유로울 뿐만 아니라 영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 <어깨 너머의 연인>에서 그려지듯이 결혼제도의 이점보다 문제점에 초점을 둔 회의적 태도가 두드러진다. 이로 인해 자발적으로 독신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결혼연령이 점점 늦춰지는 만혼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



한편 과거에 비하여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의 질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고,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하여 이혼이 급증하고 있다. 또한 ‘이혼은 금기가 아니며 경우에 따라 할 수도 있다’라든가 ‘결혼은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력만 있으면 독신도 괜찮다’는 생각과 같이 결혼의 의미와 가족에 대한 가치관이 바뀐 ‘전후세대’들이 결혼의 대안으로 이혼을 선택하고 있다. 이혼율은 특히 외환위기 이후 급증세를 보이다 2005년 들어 16년 만에 처음으로 이혼율이 줄어들면서 그 추세가 다소 완화되고 있기는 하나, 사회변동에 따라 나타난 가족가치관의 변화로 미루어볼 때 이혼을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인식을 되돌리기는 불가능할 듯하다.
모든 사회가 그렇듯이 장기적 불황으로 인한 가족의 경제적 기반 약화는 가족의 안정성이나 가족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그 중에서도 부부관계가 가장 먼저 영향을 받는다. 통계청의 자료를 통해 이혼사유별 비율을 살펴보면, IMF 이후 ‘경제적인 이유’로 이혼하는 부부의 비율은 1998년 6.6%에서 2005년 14.9%로 전폭적인 증가추세를 보였으며, 가족의 경제적 불안정성으로 인하여 가족갈등이나 해체도 증가하였다.
영화 <베사메무초>에서 그려진 것처럼 한국사회와 같이 가부장적 전통과 성별분업이 두드러진 문화에서 실직한 남편은 가장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는 자괴감에 빠지기 쉽고, 이것이 심해지면 배우자 사이의 긴장과 갈등이 증폭되면서 부부관계가 심각하게 위협받을 수 있다. 실직한 가장이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수입이 감소하면서 부부간의 대화가 줄어들게 되면, 부부간의 긴장이 증가하고 결혼만족도가 낮아지고, 특히 생계를 위하여 아내가 처음으로 취업을 하게 되는 경우 부부갈등은 더욱 심화되며, 이러한 악순환을 반복함으로써 부부긴장이 극에 달하게 될 때 결국 이혼에까지 이를 수 있다.



어떠한 경우든 가족성원 개인의 이익보다 가족 전체의 이익을 우선했던 전통가족의 대의명분과 달리 현대인들은 개인의 권리와 이익이 침해받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절충적으로 가족이란 울타리를 유지하려 한다. 백년해로에 대한 100% 확신이 없기 때문에 일단 살아본 뒤 혼인신고 하는 커플들이 늘고 있는 최근의 추세는 이러한 절충적 태도를 여실히 보여준다. 특히 IMF 이후 이혼율이 급증하고 결혼의 가치에 대한 회의가 증가하면서 결혼식을 올리고도 혼인신고를 하지 않는 ‘사실혼’ 커플이 늘고 있다. 가정법원이나 가정법률상담소 관계자들에 따르면, ‘사실혼’을 해소하기 위해 조정이나 상담을 받는 젊은 커플들이 매년 증가하고 있으며, 2003년 결혼정보업체 ‘듀오’가 30대 재혼 희망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신혼여행 직후 혼인신고를 하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36%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젊은 세대 커플이나 재혼 커플들을 중심으로 점차 확산되고 있는 ‘사실혼’은 1-2년 정도 동거기간을 통하여 배우자를 검증하는 동시에 법적 부부관계가 해체되는데 따르는 비용을 최소화하고자 하는 실용주의적 가치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며, 조만간 개인주의에 입각한 계약결혼의 등장을 예고하는 현상이기도 하다.
영국의 ‘헨리센터’에서 발표한 미래진단 연구보고서 ‘새로운 차세대: 2020년의 삶의 방식’은 결혼제도나 전통적 가족형태가 향후 25년 안에 역사의 유물로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즉 남녀가 백년해로하겠다는 서약을 사회적으로 공표하는 결혼식 절차는 사라지고, 쌍방의 편의에 의해 한시적 동거에 들어가는 계약부부가 주류를 이룰 것이며, 남녀가 만나 삶의 동반자로서 한시적 부부관계를 맺지만, 편의에 따라 헤어지고 또 다른 파트너를 만나는 이른바 ‘연속적 일부일처제(serial monogamy)'가 정착된다고 전망한 것이다. 이처럼 다소 성급한 감이 들 정도로 결혼제도의 종식을 예측한 것은 ‘융통성과 유연성’, ‘개인의 선택권’, ‘남녀의 실질적 평등’ 등으로 특징 지워지는 새로운 가치관이 향후 결혼제도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2. 다양한 모습의 가족 등장

영화 <가족의 탄생>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화두는 개별화·특성화 된 다양한 모습의 가족 등장이다. 혈연관계가 유지되지만 그보다는 정서적 관계에 치우치고, 가족구성원 모두가 평등한 관계를 유지하며, 가족에 있어서 개인의 선택적 욕구가 반영됨에 따라 엄마+아빠+미혼의 자녀를 기본으로 하는 주류 가족의 형태가 변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로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부모와 미혼 자녀가 함께 사는 핵가족은 전국 가구 중 45.7%에 불과하다. 특히 최근에는 가족 구성원의 세계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2000년 이후 6년 동안 외국인과 결혼해 국제결혼가정을 꾸민 이들만 40만 명에 육박한다. 영화 <나의 결혼원정기>에서 보여주듯이 국제결혼의 상당수는 농촌총각의 탈 총각을 위한 것이라고는 하나, 가정 내에 새로운 문화와 언어의 유입은 우리 사회가 다문화사회로 가는 촉매제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밖에 혼인형태의 다양성도 극적인 가족변화를 부추기고 있다. 3쌍이 결혼하는 동안 1쌍이 이혼하는 추세가 지속되면서 이혼 남녀가 낳은 150-160만 명의 미성년 자녀가 가족형태의 극적인 변화를 경험하였다. 이혼한 부부가 가졌던 20세 이상 성인 미혼자녀까지 포함한다면, 이혼으로 가족형태의 변화를 경험한 이들은 400만 명 선으로 전체 인구의 10분의 1에 육박한다. 또한 2004-2006년까지 이루어진 혼인 중 남성의 재혼비율은 16.7-18.9%, 여성의 재혼비율은 18.0-21.1%로 해마다 최소 10만 이상의 남녀가 재혼으로 새로운 가족관계를 형성했다.
이처럼 다문화가족, 한부모가족, 재혼가족뿐만 아니라 조손가족, 입양가족, 공동체가족 등 함께 살고 싶은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면서 따뜻하고 훈훈한 감정을 공유할 수 있다면, 이제 가족의 형태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듯 보인다. 영화 <가족의 탄생>에서 보여주듯 가족의 형태는 생애주기나 경제적 필요, 삶의 환경에 의해서 그에 적절한 형태로 충분히 변화할 수 있다는 생각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사회의 인식과 정부의 정책, 그리고 법과 제도가 이 같은 가족형태의 급속한 다양화를 따라잡지 못한다는 것이다.


3. 무너지는 가부장제, 가족의 중심점이 여성으로 이동

한국사회에서 여성들의 교육 수준이 향상되고 사회 진출이 증가함과 더불어 1970,80년대부터 활발하게 전개되었던 여성 운동은 남성은 생계부양자로서, 그리고 여성은 어머니와 가정주부로서의 전통적인 역할 구분에 거센 도전을 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현재까지 비록 이념적이나마 남녀평등은 상당한 진전을 이루어서 오늘의 한국여성들은 가정이나 일터에서 과거와 다른 역할을 기대받고 있다. 더구나 이혼 시 재산분할청구권이나 호주제 폐지, 여성가족부 신설 등 일련의 법과 제도의 개정은 여성의 사회적, 법적 지위를 격상시키며 결혼과 가족, 여성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이들과 한 가정에서 함께 사는 남성들은 그 같은 변화의 속도와 내용을 따라잡지 못하는 것 같다. 한국가족의 오랜 가부장 의식이 몸에 뱄기 때문에 남에게는 물론이고 가족들에게도 깊은 속내를 털어놓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최근 증가하는 중년이혼과 황혼이혼은 바로 이러한 변화에 무디고 더딘 남성들의 인식 탓이기도 하다.
현재의 노동시장은 여성 노동인력을 어느 때보다도 더욱 필요로 하고 있으며, 특히 최근의 인플레이션이나 경기 불황과 같은 상황들은 여성들, 특히 기혼 여성들이 생계를 위하여 적극적으로 노동 시장에 참여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맞벌이 부부와 취업모는 이제 보편적인 현상이 되었으며, 남성에 대한 여성의 경제적 의존도가 감소함에 따라 여성들은 결혼과 가족생활에서 과거보다 더 많은 권력을 지니게 되었다. 여성들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은 과거보다 커지게 되었고, 생활양식에 대한 선택의 폭도 이전보다 더욱 넓어졌다. 이처럼 경제적 상황의 변화는 개인이 결혼과 가족생활 양식을 선택하는데 영향을 미쳐서 배우자 선택 시 맞벌이가 선호되고, 경제적으로 독립한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독신 생활을 선택하며, 이혼을 원하는 기혼 여성들이 이혼 후의 경제적 자립 능력 때문에 더 이상 이혼을 꺼리지 않아도 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완전한 남녀평등이 구가되는 사회에서는 오랫동안 남성이 독점해온 직업 가운데 많은 부분을 여성들과 공유하고, 가정에서는 남성도 ‘전업주부(househusband)'로서 전통적으로 여성이 담당했던 가사와 육아를 분담하게 되면서 결과적으로 가족의 경제적 부양을 전담하던 가장이자 보호자라는 남성의 지배적 위치도 차츰 허물어진다. 현재 한국사회 곳곳에서 연령을 막론하고 ’알파걸‘들의 활약이 두드러지며, IMF 이후 남성 가장의 경제적 역할이 위협받으면서 가정 내 아버지의 권위가 실추되고, 가족들에게 소외된 아버지들이 나타나고 있다. 2005년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전국 가족실태조사에 따르면, 자녀들이 주로 고민 상담을 하는 상대가 어머니라고 응답한 자녀의 비율이 31.9%, 형제자매라고 응답한 비율이 7.9%인 반면, 아버지라고 응답한 자녀는 3.9%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나 한국가족에서 아버지 소외현상이 심각함을 알 수 있다.
기성세대의 남성들은 이러한 변화에 혼란스러워하기도 하지만, 젊은 세대의 남성들은 가사분담이나 아내의 경제적 부양을 거부하지 않으며, 아내가 사회에서 일익을 담당하고 있음에 자긍심을 느끼기도 한다. 2005년 전국 가족실태조사 결과, 평균소득이 99만원 이하인 남편들의 가사노동 참여도는 주당 1.0-2.7회인 반면, 300만원 이상인 고소득 남편의 경우 0.1-0.6회에 불과하고, 2,30대 남편들의 참여횟수가 주당 1.2-3.0회에 이르는 반면, 40대에서는 0.2-1.4회로 낮아지다가 50,60대가 되면 다시 0.8-2.1로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편이 경제적 능력이 있으면 집안일에 소홀해도 용서가 되지만, 그렇지 못할 때에는 열심히 가사를 도와야 한다는 반응이다. 또한 자녀양육에서도 아버지 역할의 중요성이 점차 강조됨에 따라 과거의 권위주의적 아버지상에서 탈피하여 보다 적극적이고 양성적인 태도로 자녀 양육에 참여하는 아버지들도 늘고 있다. 최근 <날아라 허동구>, <아들>, <마이파더>와 같이 부자지간의 애틋함이나 부성애를 강조한 ‘아버지 영화’가 봇물을 이루는 것은 한국가족의 전통인 부권과 부자중심의 가족구도가 무너진 현실에 대한 ‘영상적 위안’인 동시에 아버지들은 이제 그만 가족의 품으로 돌아와 ‘돌봄의 남성화’를 통하여 무한한 부성애를 베풀라는 생존전략의 메시지가 담겨있다. 앞으로 한국가족에 남은 과제는 전통적 성고정관념을 완전히 털어버리고, 상호존중과 신뢰 속에서 남성들의 양적인 참여 증대뿐만 아니라 보상도 비용도 철저하게 나누는 평등한 가족관계를 위하여 남녀성원들이 모두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가부장제 사회 속에서 가장 중심의 수직적이고 권위적인 가족문화에 불어닥친 변화의 바람은 남성중심에서 여성중심으로, 친가 중심에서 외가 중심으로 가정이 바뀌는데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딸들은 이제 더 이상 출가외인이 아니며, 취업모의 증가로 인해 육아의 상당 부분은 어머니를 대신한 외할머니의 몫이 되고, 결혼 후 처가 의존율이 높아지면서 남성들이 처가에 느끼는 부담이 예전에 비해 커지고 있다. 이처럼 사회 각 영역에서 여성들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가족의 중심이 남성중심에서 점차 여성으로 옮겨 감에 따라 가족영화 속에서도 여성성의 강조가 눈에 띈다. 영화 <괴물>에서 결국 괴물을 쓰러뜨린 결정타의 영예는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삼촌도 아닌 고모에게 주어졌다. 또한 괴물의 은신처로 끌려간 현서는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과감한 탈출을 시도하며 자신보다 어린 남자아이를 돌보고 기어이 아이를 살려내는 ‘불굴의 모성’을 몸소 보여준다. 흥미로운 것은 이처럼 강력한 여성파워가 세계적인 추세라는 것이다. 최신 할리우드 개봉작 <심슨가족 더 무비>에서도 ‘개념 없는 남편 호머’대신 이혼까지 불사하며 냉철함을 발휘하는 것은 부인 ‘마지’이며, 환경문제 해결에 동참하도록 지역사회를 설득하는 행동파도 아들이 아닌 딸 ‘리사’이다.




4. 가족주의의 도구화와 세대간 갈등문제

우리 사회의 가족주의는 일제 강점과 6.25전쟁, 60년대 이후의 산업화 과정을 거치며 심화되었다. 전쟁과 폐허의 궁핍한 상황에서 도덕적 판단이나 합리적 행위보다는 생존의 논리가 중시되었고, 이에 따른 대책으로 가족이나 혈연중심의 배타적 가족주의가 형성되었다. 개인의 복지에 대한 국가복지의 ‘공백’ 상태에서 가족의 생존은 사적 복지제도, 즉 가족을 통해 스스로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이 과정에서 가족은 정서적 기능의 충족과 함께 경제적 이익 추구의 중요한 수단이 되었고, 결과적으로 도구적 가족주의의 성격이 강화되었다.
특히 IMF 이후 장기적 경기불황은 이러한 도구적 가족주의를 다시 찾게 된 계기가 되었다. 사회안전망이 부실한 우리 사회에서 장기적 경기불황을 견디기 위한 지지처는 가족뿐이다. 최근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청년실업 대란은 20,30대는 물론이고 심지어 결혼하고 자녀를 낳은 후까지도 스스로에 대한 부양 능력을 갖추기조차 힘들어 부모에게 물질적?심리적으로 의존하는 ‘캥거루족’ 혹은 ‘부머랭족’ 성인자녀의 등장을 불러왔다. 또한 중?노년 부모들이 자녀의 성년기까지 ‘부모노릇’을 연장함으로써 자녀세대의 독립적 가족형성을 지체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 이와 함께 소 자녀화 및 양성평등의식에 영향을 받아 사위가 처가살이를 하는 가족도 증가하였다. 2006년 통계청 조사결과에 의하면, 10가구 중 4가구가 부모를 모시고 살며, 이 중 장남과 동거하는 가구는 2002년 24.6%에서 21.8%로 하락한 반면, 딸과 사위가 장인?장모를 모시고 사는 가구의 비율은 3.6%에서 5.7%로 증가함으로써 경기불황을 통해 전통적인 장자 중심의 직계가족 의식이 약화되고, 본가든 처가든 실리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젊은 부부의 거주형태가 변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인구사회학자들은 이 같은 가족 형태를 과거 시대의 대가족 또는 확대가족과 구별하기 위해서 ‘다세대가족(multi-generational family)'이라고 명명했다. 다세대가족은 전통적 대가족 제도와 달리 가족성원 대부분이 각자의 경제활동을 계속 함으로써 경제적 부담을 함께 나눈다. 경제자립의 능력을 잃은 노부모를 어쩔 수 없이 모시는 지난날의 노인부양 개념이 아니라 서로가 동등하게 자발적으로 주거공간을 공유하면서 가족간 유대관계를 다지는 적극적이고 선택적인 공동생활을 하는 것이다. 이 새로운 가족 형태는 21세기에 들어서 계속 늘어날 추세이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한국의 전통적인 효 사상도 자연스럽게 퇴조하고 있다. 노후대책이란 개념조차 없이 자식농사에 모든 것을 쏟아 부었던 노인세대의 처지는 서럽고 안타깝다. 2006년 조사에서는 노인가구 중 30%가 소득과 재산이 전무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빈곤, 고독, 질병의 3중고를 이기지 못해 자살이라는 극한적인 선택을 택하는 노인들의 보도기사도 늘고 있다. 지난 5년간 자살자 10명중 3명은 노인이었다. 2008년부터 기초노령연금제를 시행하지만 이것이 근본적인 대책일 리 없다. 각 가정마다 자녀수의 감소로 인하여 노부모 부양부담은 더욱 무겁게 느껴지며, 노인들 역시 이제는 과거처럼 자식의 부양을 기대하지도 당연시하지도 않는다. 그 대신 노부부가 단독가구를 형성하여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비율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손자녀돌보기에 묶여 살기 싫다는 조부모들도 늘고 있다.
이처럼 노부모-성인자녀 세대 간에 독립적인 삶을 추구하는 분위기와 함께 부모-자녀 간 수평관계가 확산되면서 노인에 대한 학대, 방임, 유기가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2005년 노인학대예방센터에 접수된 노인학대 사례를 분석한 결과에 의하면, 가해자의 70%는 아들과 며느리인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개봉작 <권순분 여사 납치사건>은 한국가족에서 전통적 효 사상의 퇴조를 반영할 뿐만 아니라 부모에게서 경제력만을 취사선택하는 오늘의 젊은 세대와 과거의 권위를 점차 잃어가고 있는 노인세대간에 향후 세대간 갈등구도가 형성될 것임을 경고하고 있다.



마치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회?경제적 변혁기에는 으레 가족의 구조나 기능, 가치관의 변화가 수반된다. 많은 가족학자들이 지적한 바와 같이 한국 가족은 1960년대 이후 40년간의 산업화 과정에서 그 기능이 상당히 약화되어왔으며, 가부장적 가치관의 잔존, 전통적 요소와 서구적 요소의 충돌, 사회변화에 대한 부적응 등으로 다양한 가족문제에 부딪혀왔다. 특히 IMF 이후 장기적 경기불황과 글로벌 경제화는 우리 사회의 가족관계와 가정생활을 매우 복잡한 양상으로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다. 사회의 ‘양극화’문제는 가족 차원의 고통과 불안으로 극명하게 표출되고 있으며, 전통적으로 이어져온 한국 사회의 가족 의존적 특징과 실용주의에 기초한 가족관계는 향후 세대 간 갈등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이처럼 과거의 ‘가족’은 사회환경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모습과 역할로 빠르게 탈바꿈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나를 지탱하는 가장 큰 힘’으로 거침없이 ‘가족’을 꼽으며 가족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고 있다. 물론 오늘의 한국사회와 같이 팍팍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족이란 사랑과 안정감을 주는 가장 든든한 안식처이다. 그러나 가족은 동시에 고통과 속박을 가하는 영원한 족쇄가 될 수도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 건강하고 효율적인 가족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성원 개인의 권리와 가족 전체의 권리가 균형을 이루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와 같이 가족주의가 강한 사회에서는 가족성원 개인의 권리에 대한 인식과 배려가 매우 부족하다. 이처럼 밀가루 반죽같이 질척질척 엉기는 ‘응집적 가족주의’나 그와 반대로 <바람난 가족>, <좋지 아니한가>, <아메리칸 뷰티>, <심슨가족 더 무비>의 가족성원들처럼 모래알같이 각자가 따로 노는 ‘분리적 개인주의’ 어느 한쪽에도 치우침이 없어야 한다. 가족이 위기에 처했을 때(예, 가장의 실직, 가족원의 중대한 질병이나 사망.....) 온 가족이 결속할 수 있고, 성원 각자의 권리와 발전이 요구될 때(예, 아내구타나 아동학대로부터 피해자를 보호해야 할 때, 자녀의 진로나 결혼문제를 놓고 부모 자녀간 의견이 상충될 때.....) 개인의 독립성을 존중하는 균형감이야말로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가족의 덕목이다.



가족영화의 진정한 미덕은 영화 <가족>이나 <말아톤>에서 강조하는 헌신적인 ‘가족애’를 강요하거나 <가족의 탄생>에서 제안하는 ‘대안가족’을 즉답으로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관객들 각자가 영화를 보면서 자신의 가족에 가장 적합하고 만족스러운 가족의 의미와 가치를 두고두고 고민하며, ‘응집력과 적응력을 동시에 발휘하는 가족의 힘’이 무엇인지 발견할 수 있다면 진정 볼만한 가족영화가 아닐까?

 

2007-1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