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안희경 | 재미 저널리스트
유기농 식품을 파는 마트에서였다. 손님상 차릴 시간에 쫓겨 해물 판매대로 돌진해 생선 손질하는 이에게 외쳤다. 마스크를 썼기에 생글거리는 눈망울을 키워 영어로 ‘저는 대게를 살 거예요’라고 알렸다. 내 차례가 왔을 때 빨리해주길 바라는 알림이었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준엄하고 또박또박 끊기는 영어 한 문장이 마치 칠판에 분필로 휘갈기듯이 날아왔다. 마지막 단어엔 어찌나 힘이 실렸던지 음계 ‘미’에서 ‘솔’로 당김음이 되어 올라갔다. “He is serving me!”(히 이즈 서빙 미~이! 그는 나를 응대하고 있어!) 60대 초반의 날렵한 백인 여성이었다. 자신의 주문을 처리하는 중요한 일을 하니 방해하지 말라는 호통이었을까? 아니면, 너의 재촉이 그의 노동을 압박한다는 질책이었을까? 나의 왼편으로 들어선 30대 라틴계 여성도 질문할 자세를 취하다 몸을 굳혔다. 허겁지겁 내 입에서 미안하다는 소리가 나왔다.
초로의 그녀는 내 사과의 여운을 침묵으로 지워냈다. 부풀린 연한 금빛 단발머리에 회색 레깅스 위로 잿빛 캐시미어 피코트를 걸친 그녀는 직원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몸의 긴장이 팽팽했다. 나는 찬물 한 바가지를 뒤집어쓴 것 같았다. 나의 심호흡은 갈비뼈를 들어올렸고 만화에서나 봄직한 “흐음”이라는 흉성으로 콧김과 함께 삐져나왔다. 그때 여성이 나를 돌아보았다. 오페라 프리마돈나처럼 말했다. “Calm down!”(카암 다아운!) 공기 반 소리 반이었다. ‘진정해!’라고 온건히 번역해야 할까? 마스크 없이 노출된 그녀의 입매마저도 싸늘했다.
나는 인종차별이라고 정의했다. 왼쪽에 있던 여성이 보였던 황당해하는 표정도 나의 결론에 힘을 실었다. 나의 숨도 그녀의 관리 대상일까?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의 피부색, 무엇보다 내 영어에 배어 있는 이민자 악센트가 그녀의 혐오 반응을 무사통과시켰을 것 같다. 서두른 나에 비해 도덕적 우월감도 느꼈을 테지만, 나는 그 태도를 캘리포니아 통념에 맞게 인종차별이라고 규정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되받아칠까? 새치기하려는 것이 아니었다고 구구절절 늘어놓을까? 영어 단어를 고르다 보니 피곤해졌다. ‘인종차별’이라는 단어에 모멸감이 회복되기도 했다. 상대의 무지와 미국의 구조적 문제로 분류하니 오히려 나의 인내가 나아 보였다. 나는 사과할 줄 아는 너그러운 사람으로, 당신은 혐오를 시전하는 무뢰한으로 남자고 홀로 합의를 보았다. 그리고, 그날 밤 맞받아치는 영어 문장을 고르느라 잠 못 이루는 나를 견뎌야 했다.
한달 뒤, 인천에서 오사카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나를 포함해 한국인들로 만석이었다. 간사이공항에 내려 안전벨트 표시등이 꺼지자 복도는 승객으로 들어찼다. 앞사람이 나가고, 일어나 짐칸에 손을 뻗는데 누군가 밀고 지나갔다. 휘청거리다 다시 가방을 내리려는데 뒤에 있던 이가 나를 넘어가려 했다. 눈 맞추고 말했다. “기다리세요.” 또박또박한 어조였다. 뒤에 있던 5도 정도 앞으로 숙이고 있던 몸들이 순간 곧추서는 듯 보였다. 공항을 나오며 질문 하나가 스멀거렸다. ‘달포 전 백인 여성과 지금의 나는 무엇이 다를까?’
그녀도 반복된 경험이었을 수 있다. 나도 뒷사람이 20대 여성이라 거침없이 말했을까? 거부하고 싶었다. 몇년 전부터 중년 남성의 무례에는 청년 여성에게 빚 갚는다는 마음으로라도 나이 든 내가 나서야 한다고 작심했으니까. 그럼에도 한 기억이 떠올랐다. 마스크 착용 의무화가 시작됐을 때, 대형 마트에서 마스크를 안 쓴 젊은 여성이 있었다. 그녀에게 말하려고 다가가는데, 키 190㎝가 넘는 백인 중년 남성이 마스크 없이 나를 지나쳤다. 그때 보았다. 내가 안전할 상대를 가려가며 나서려 한다는 것을.
20대에 학습한 것이 있다. 상대의 잘못이 분명해도 그걸 지적하면 더 거친 반응이 돌아온다는 점이다. 나는 말을 삼키고 돌아서는 것을 익혔다. 부드럽게 전하는 방법을 배우려 하지 않았다. 그런 내가 50대가 되니 거침없어지려 한다. 생각과 문화가 다른 것을 알면서도 반사적으로 거부감을 표현하는 순간 혐오의 경계에 들어설 수 있다. 알아차리지 않고 흘려보낸 감정으로 차별주의자로 갇힐 수 있다. 상냥함에 물들고 싶다. 그럴 나이이다.
오사카에서 교토역으로 이동한 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며 허공에 대고 고개 숙였다. ‘미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