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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모르는 민주주의> 추천의 글
모든 현상을 새 안경을 쓰고 다시 본다. 그리고 질문한다. 미국은 내가 어릴 때 배운 대로 이상적 민주주의를 실현한 꿈의 나라인가? 혹 영화 〈미션The Mission〉에 나오는 노예상들이 이끌고 가는 나라는 아닌가? 사유재산제를 신봉하며 부와 권력을 갈구하는 탐욕적 인간들이 만든 나라는 아닐까? 미국은, 그리고 한국은 아직도 민주주의 국가일까?
이 책은 ‘21세기의 소크라테스’ 역할을 하는 마이클 샌델 교수의 초기 저서이자 가장 최근 저서다. 1990년대 민주주의가 흔들리고 있다는 위기감에 샌델 교수는 미국의 헌법적 전통과 공공철학의 변화를 따라가 본다. 그리고 1996년에 《민주주의의 불만》이라는 책을 출간한다. 그는 책에서 미국이 공공의 이익보다 개인의 자유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자유지상주의를 사상적 근간으로 삼게 되면서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실현해낼 수 없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또 미국의 공화주의가 ‘중립적 국가’와 ‘무속박적 자아’라는 개념에 바탕을 둔 ‘절차적 공화주의’의 한계를 보이고 있다고 말한다. 그를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로 만든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 《공정하다는 착각》,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는 이 문제의식이 곳곳에 녹아들어 있다.
초판 후 사반세기가 지난 지금, 그는 ‘불만’을 너머 ‘파탄’이 난 민주주의에 관해 이야기 한다. 2008년 월가 파동을 겪으며 시행한 금융 개혁을 예로 들어보자. 샌델 교수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1929년 경제 붕괴를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관계를 재규정하는 협상의 기회로 삼은 것과 대조적으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자본주의의 손을 들어주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빌 클린턴 대통령 당시의 금융 관련 전문기술 참모들에게 위기 해법을 내게 했는데 ‘전문가’들은 시민을 구제하기보다 은행을 구제하는 결정을 내렸다. 아이슬란드에서 관련자를 철저하게 처벌하고 감옥에 보내면서 민주주의를 선택한 사례와 대조를 이루는 결정이었다. 후반부에서 그는 ‘1990년대 이후부터 현재까지의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부채로 허우적대는 시민들과 금융 자본주의적 폭력에 대해 논의를 이어간다. 73쪽에 달하는 에필로그에서 그는 부를 독점한 신귀족의 지배가 어떻게 시민을 시장의 지배를 받는 신자유주의적 군중으로 만들어내는 지를 보여준다.
책을 읽다보면 질문이 이어진다. 콜롬버스가 ‘신 대륙’을 발견하지 않았다면 사피엔스의 운명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이상적 민주공화정을 만들어보겠다고 영국의 일부 이상주의자들이 신 대륙에 국가를 세우지 않았더라면 지구상의 삶은 어떻게 진화해갔을까? 1940년대 유럽(세계) 대전에 미국이 개입하지 않았더라면 유럽과 세계 정치는 어떤 판을 그리고 있을까?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동행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이 아니었을까? 독일의 정치경제학자 볼프강 슈트렉은 《조종이 울린다How Will Capitalism End?》라는 책에서 유럽의 ‘민주적 자본주의 실험’은 끝났다고 단언한다. 일이차 대전 이후 유럽에서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간의 관계에 관한 깊이 있는 성찰이 이루어졌었다. 1951년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한나 아렌트는 “개인주의적 자유주의가 인간을 본질적으로 사적 욕망을 추구하는 권리의 소유자로 규정함으로써 공적 영역의 황폐화를 초래했고 공적 영역의 황폐화는 한편으로는 자아를 잃은 전체주의적 군중을 낳았다”는 명언을 남겼다. 그는 나치 추종자들의 특성은 “야만과 퇴행이 아니라 고립과 사회관계의 결여”라면서 공적 삶의 회복을 고민하자고 했다.
1·2차 세계대전을 실제로 겪은 유럽학자들의 그간의 논의에 비하면 매우 가볍고 낙관적이지만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샌델 교수의 책을 읽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미국이라는 나라와 한국이라는 나라가 매우 가깝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글이 무겁지 않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붕괴가 자명한 상황에서도 ‘공공철학’과 ‘공동선’이라는 주문을 외우며 샌델 교수는 공리주의도, 자유주의도, 자유지상주의도 아닌 공동체주의로 우리 모두가 더불어 사는 정치를 구현하자고 희망을 가지고 말한다. 한때 미국을 선망했던 대한민국의 시민들, 아직 대의정치에 기대를 버리지 않고 뉴스를 챙겨보는 시민들, 그리고 영끌 노동의 끝을 보고 있는 청년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 책을 읽으며 민주주의에 대한 새로운 감각을 만들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 나는 마을 서당에서 중학생이 된 동네 십대 친구들과 《10대를 위한 JUSTICE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었다. 샌델 교수가 제시하는 흥미로운 사례와 질문을 소년들은 좋아했다. 마을에서 세대가 공생공락하는 우정의 세계를 통해 새로운 민주주의의 날을 열어가는 꿈을 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