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이 지난 세월호 이야기
–조한혜정&정경일 대담-
2022.10.18.(화) P.M.2:00-4:00
@연세대학교 더라운지
안산시와 세월호와의 인연
정경일 : 2013년 여름,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후, 신학자로서 집중해서 하고 싶은 연구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이듬해 4.16 세월호 참사가 있었고, 그 이후로 제 신앙과 신학과 삶의 경로가 크게 바뀌었어요. 처음에는 주로 광화문 중심으로 열렸던 집회와 기도회에 참여했어요. 동료 신학자들과 함께 유가족의 부르짖음에 응답하는 책도 몇 권 냈고요. 글과 말로만 연대하는 게 부끄럽고 미안해서, 승현 아버지를 따라 삼보일배 순례에 1박 2일 참여하기도 하고, 광화문에서 유민 아버지와 함께 철야 노숙 농성도 했어요. 광화문에서 농성하던 날 새벽, 동료 신학자 한 분이 오셨는데, 그 시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따로 없었어요. 그래서 노란 리본 고리를 만들었어요. 문득 해가 뜨고 직장인들이 출근하는 시간에 신학자 두 사람이 거기 앉아 노란 리본을 만들고 있는 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어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신학자가 있어야 할 곳’에 있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고통받는 이들 가운데 하느님이 계시니까요.
그 후로도 광화문 광장 세월호 집회와 기도회에 열심히 참여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무력하고 공허했어요. 그래서 2015년부터는 한 달에 한 번 안산으로 가서 그리스도인 유가족과 함께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어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무슨 일이 있어도 한 달에 한 번 예배드리는 것은 빠지지 않고 있어요. 그리스도인 유가족과 성직자, 평신도가 함께하는 〈416생명안전공원예배팀〉에도 참여해 활동하고 있고요. 합동분향소 컨테이너 박스에서 예배드릴 때는 주로 외부 목사님들이 와서 설교도 하고 인도도 하셨는데, 지금은 유가족이 직접 예배를 준비하고 이끌어요. 저는 도울 뿐이고요. 서울에서도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며 연대하는 그리스도인〉이라는 모임이 만들어져, 매월 셋째 주 목요일에 광화문 광장, 청와대 앞, 서울시의회 앞 기억관 앞에서 꾸준히 월례 목요 기도회를 이어 왔어요. 문재인 대통령 때는 청와대 앞에서 그리스도교 교회와 단체들이 연대해 30일 연속 단식기도를 두 번 했고요. 예배를 통해 그리스도인 유가족이 덜 힘들게 덜 외롭게 진실과 치유의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응원하며 오래오래 동행하자는 생각이었어요. 농담처럼, 416생명안전공원예배팀 유가족 부모님들과 같이 늙어 가겠다는 얘기도 해요.
조한혜정 : 저는 문화인류학을 하는 사람이고요. 항일운동을 했던 집안에서 태어나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세뇌를 받아서 그런지 사회 문제가 생기면 달려가 풀려고 안간힘을 쓰는 편이에요. 전공을 문화인류학을 한 것도 모두가 좀 잘 살아지는 세상을 만들어보고 싶어서였고요. 그렇다고 현장에 한걸음에 달려가서 불을 막 끄는 스타일은 아니고 전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살피는 편이에요. 세월호 참사 때 온 국민이 애통해하는 것을 보면서 정말 대단한 국민이라는 자부심을 느꼈어요. 그 애도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꿀 거라는 기대감에 부풀었었죠.
참사 소식을 듣고는 재난인류학을 전공한 서울대 이현정 교수와 안산에 자주 갔었어요. 조문한 후 여러 군데를 방문하면서 살펴봤는데, 재난 피해자들을 돕기 위해 급히 만들어진 상담소 등 기관들은 허둥대고 있었고, 파견된 상담원들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불만의 소리가 들렸어요. 유가족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집 청소나 따뜻한 국과 밥, 또는 이야기를 들어주는 등 엄청난 충격에서 벗어나게 도와줄 사람들인데, 역부족이었던 거죠. 어쨌든 열심히 이곳저곳 상황파악을 하려고 부지런히 다녔어요. 경제 지표로는 선진국이지만 시민 안전에 관한한 시스템을 하나도 안 만든 것 같은 상황에 대해 내내 화가 났고 다른 한 쪽에서 많은 자발적인 시민이자 전문가들이 이 사태를 추스르기 위해 모여드는 것을 보고 감동했어요.
서울대 인문학연구원에서 그해 시월에 〈세월호 사건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과 재난인문학〉이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었는데, 그때 나는 “애도를 추방한 문화”에 대해 이야기했어요. 특별법 제정에 대한 논란이 일기 시작한 때였어요. 유가족은 제대로 애도의 시간도 거치지 못한 채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정치의 일선에 서야 했지요. 나는 유가족이 거대한 국가적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어버린 상황이 염려스러웠어요. 그렇지만 유가족의 특별법 요구가 제대로 해결되면 세월호 참사로 인해 사회가 입은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어요. 근대 이전의 인류사회에서 대형사고가 생기면 사람들은 신에게 울부짖으며 항의했죠. 종교적 신화와 비유를 통해 그들이 당한 비극을 납득시키고 의례를 통해 위로와 치유의 시간을 충분히 가지면서 정상상태로 돌아갔어요. 그런데 세속화된, 달리 말해 신앙의 자유가 라이프스타일이 되어버린 근대에서 그 역할은 국가와 시민사회가 해내야 할 몫이 되었죠. 유가족의 특별법 요구에 대해 보상금의 액수 등으로 막 잡음이 생기기 시작했던 때였어요. 나는 유가족의 특별법 요구는 단순한 손배배상 따위의 문제가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한 매우 공적인 활동임을 강조했어요. 세월호로 인해 입은 유족들의 트라우마는 ‘진리’가 통하면 치유될 수 있다고 말하면서, 동시에 그것은 제대로 된 애도와 공감의 세계를 회복할 때 가능하다고 말하려고 했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애도를 통한 이해와 소통의 세계를 넓혀가는 점을 더 강조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이 급변했죠. 함께 울었던 시민들이 피로감을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왜 내가 낸 세금을 그렇게 쓰냐는 등 적대와 혐오의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죠. 유가족들은 PTSD 휴유증을 안은 채 투쟁의 현장에 내몰렸고 계속 엄청난 충격 속에서 지내야 했었지요. 전문가주의, 칸막이 행정, 이런 것도 애도를 방해하는 것이었고요, 내가 관여하는 대안학교 학생들은 아직도 안산에 자주 가서 활동을 함께 하는 데, 나는 가지 않았어요. 가끔 강의해달라고 하면 마을 분들과 활동가들을 만나 그런대로 잘 지내시구나 확인을 하곤 했지만, 상황 파악을 하고 있지 못해요. 게다가 말이 안 되는 사건들이 계속 터져나오는 판국이라 감이 점점 떨어졌죠. 그래서 나는 이 자리에 내가 아니라 나보다 더 열렬히 함께했던 분들이 오셔야 할 자리가 아닌가......
정경일 :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은, 항상 곁에서 함께 활동하는 분들에게서도 힘을 얻지만, 한편으로는, 가까이서 자주 만나지 못한 분들과 만나고 이야기를 들을 때도 새로운 힘을 얻으시는 것 같아요. 얼마 전 예배팀 부모님들, 활동가들과 강화도로 워크숍을 갔다가 한 성당을 방문했어요. 예술가이신 신부님이 작품과 관련된 이야기를 한 시간 가까이 해 주셨는데, 그날은 ‘세월호’ 이야기를 거의 안 하셨는데도 부모님들이 위안을 얻었어요. 조한혜정 선생님도 참사 후 유가족과 대화를 나누신 적이 있는데, 그때 “정부에 구걸하지 마라.”고 당차게 해 주셨던 말씀을 부모님들, 시민 활동가들이 지금도 기억하세요. 그때 힘을 많이 얻으셨대요.
지난 8년의 이야기
조한혜정 : 생각해보니 교황 오시고 단식 시작했을 때 광화문에 자주 가고 학교를 기억관으로 하자고 할 때도 갔었어요. 당연히 기억관으로 해야 하는데, 부모들이 아이들 입시에 방해 된다며 반대했다는 말을 듣고 정말 놀랐어요. 자기 아이가 죽었을 수도 있는데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이 도저히 이해가 안 됐죠. 4.16생명안전공원 만드는 것을 반대하는 주민들이 많다는 이야기에 또 놀라고...... 어떤 면에서 시대 학습을 할 절호의 기회인데 그런 학습의 시공간들을 지워버리려 하니까 와 이게 뭐지? 나라가 있나? 애도를 했던 국민들은 왜 조용하나...... 피해자인 우리는 또 왜 이렇게 다투나? 이런 질문을 하면서 자괴감 속에 안산이 점점 멀어지더라고요. 세월호 참사는 고속도로 깔면서 생긴 참사나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재난과는 좀 다른 차원의 재난이거든요. 앞의 사건들은 빈곤에 허덕이던 국민이 국가와 합심해서 경제 발전을 해내려던 중에 생긴 개발도상국에서 일어난 근대적 사건이라면, 세월호는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국가가 충분히 해낼 수 있는 것을 소홀히 해서 생긴 것이죠. 이른바 ‘탈근대적 위험사회’의 사건이죠. ‘위험사회론’을 제시한 울리히 벡 교수도 그때 한국을 자주 방문하면서 한국 국민이 대단하다고, 해방적 파국의 시간을 제대로 살아내라고 응원하셨죠. 막을 수 있는 사고인데 일어난, 국가가 제대로 할 일을 하지 않아서 생긴 사건임을 많은 국민들이 알아차리게 된, 그래서 오로지 성장과 진보를 향해 달린 ‘근대’를 넘어서야 한다는 자각을 갖게 한 사건이 세월호 사건이었어요. 멈추어 서서 체제 전환을 위한 대대적이고 장기적인 학습에 들어가야 할 시간임을 세월호 참사가 일러준 것이죠. 그런데 트라우마 상황은 계속되고 무시와 모욕의 세계가 더 빨리 커지고 있으니 내 깜냥으로는 정말 감당하기 힘들구나 하면서 망연자실해 있었던 것 같아요.
정경일 : 선생님도 그러셨지만, 세월호 참사 이후 열정적으로 연대하며 참여하셨던 분들도 상처와 좌절감을 많이 갖게 된 것 같아요. 저도 유가족에 대한 한국 사회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어 큰 충격을 받았던 것 같아요. 어떻게 가족을 잃은 이들이 공격받고, 조롱당하고, 모욕당해야 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참사가 있었던 그해 여름이 되면서 유가족 앞에서 ‘폭식투쟁’을 하고, 정치, 언론, 극우집단 등에서 별의별 욕을 다 했잖아요. 방금 말씀하신 단원고 2학년 교실 이전은 정말 속상한 일이었어요. 힘들더라도 단원고 유가족, 학부모, 사회가 더 시간을 두고 토론해 교실 존치를 했어야 하는데, 너무 안타깝고 아쉬워요. 아이들이 공부하고 생활했던 교실은 장소이기도 하지만 기억이기도 해요. 그 기억 속에는 슬픔과 충격도 있지만, 아이들의 웃음소리, 몸짓, 눈빛, 기쁘고 밝고 아름다운 감정들도 같이 있는 건데, 그 모두를 없애버린 거죠. 지금 화랑유원지 근처 〈단원고 4.16 기억교실〉로 옮겼는데, 거기 가면 너무 가슴이 아파요. 재현할 수 없는 기억, 회복할 수 없는 상실 때문에요. 도로테 죌레는 오늘의 현대사회는 “합리적으로 상중(喪中) 기간이 짧은 사회”라고 했는데, 우리 사회는 고통을 너무 빨리 잊어버리는 것 같아요. 그래서 세월호 참사 이후 우울감이 떠나질 않아요. 세월호 참사를 아프더라도 용기있게 기억하고 차근차근 치유 과정을 밟아가면 우리 사회에도 희망이 있는 건데, 이제는 잘 모르겠어요.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의 인간성을 보여주는 바로미터, 리트머스 시험지인 것 같아요.
조한혜정 : 단원고 학교 교실을 기억 교실이라는 상징적 장소로 만드는 합의를 할 수 있었다면, 아니 실은 그 학교 전체를 위험사회를 살아내는 국민과 세계시민을 위한 대대적인 학습장으로 만들 수 있었다면, 한국이 뒤늦었지만 선진국이 될 수 있을 텐데요. 늦었지만 안전공원이 그 역할을 조금이라도 해낼 수 있도록 잘 지으면 좋겠어요. 자녀의 대학 입시와 집값 떨어질 염려로 반대한 학부모들이 적지 않았다는데 정말 그간 시민적 삶의 장이 전혀 만들어지지 못했음을 반영하는 것이지요. 내가 부모라면 이 참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엄청난 것을 보고 질문하게 되었을 단원고 학생들이 훌륭한 시민이자 세계인으로 성장할 발판이 될 이 프로젝트를 적극 밀고 참여하려고 했을 텐데요. 세월호 참사는 아주 많은 국민이 애도하며 국가가 무엇인가를 대대적으로 질문하게 한 사건이죠. 그래서 사실상 정권을 바꾸는 계기가 된 사건인데 민주당 정권을 거쳐 지금의 대립 정국을 보면 참으로 절망스러워요.
정경일 : 그럴수록 세월호 참사 직후의 우리를 기억하게 돼요. 그때는 정말 ‘기적’이 일어난 것 같았어요. 슬퍼하는 모두가 한 가족 같았으니까요. 하루는 안국동에서 길을 건너려 신호등을 기다리다, 따사로운 봄햇살을 받으며 하얀색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들이 제 앞에 서 있는 것을 보고 왈칵 눈물이 나는 거예요. 세월호 참사 후 1, 2주 채 안 지나서였어요. 희생당한 아이들, 생존한 아이들, 그들 또래의 아이들 모두 내 자식 같았어요. 사회적으로 공동체적 애도를 위해 예능 프로그램도 쉬고, 스포츠 경기도 멈추고, 그렇게 참사 후 두 주 정도는 정말 우리가 다 연결되어 있고 한 가족 같은 기적 같은 경험을 했죠. 그때로 어떻게 돌아갈 수 있을까, 그때의 우리 마음을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 그런 생각을 하곤 해요.
조한혜정 : 그런 애도의 시간에 대해 신학에서는 뭐라고 하나요?
정경일 : 글쎄요. 참사 직후부터 한동안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많이 말했던 성서 구절은 “우는 자와 함께 울라.”였어요. 슬퍼하는 유가족과 함께 슬퍼하자는 것, 그게 우리의 신학이고 신앙이었던 것 같아요.
조한혜정 : 그게 한국 사회에 한순간 있었죠. 정말 희망적이었는데, 어떻게 정반대로 이렇게 뒤집힐 수가 있는 건지.
정경일 : 그래서 가까운 과거에 대한 기억과 성찰이 필요한 것 같아요. 2014년 봄에서 겨울까지 광화문 유가족 농성장에 자주 갔는데, 그때는 광화문에 가면 아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어요. 약속 않고 갔는데도 천막 밑에서 책을 읽고 있거나, 리본을 만들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나눴고, 퇴근길에 들렀다 가는 사람들도 만나고, 그랬어요. 거기서 일부러 만날 약속을 잡기도 했고요. 애도의 공간이 공동체를 만든 것 같기도 하고 애도의 공동체가 공간을 만든 것 같기도 해요. 아무튼 우리를 하나 되게 했던 굉장한 기억들이 있는데, 왜 그리고 어떻게 그 기억들이 유실되어 왔는지 깊이 성찰해 봐야 할 것 같아요.
조한혜정 : 공감하고 함께 애도하는 국민이 많았고, 우리가 굉장히 성숙한 시민민주주의 사회로 간다고 믿고 있었는데, 반대의 목소리가 갑자기 터져 나오면서 세를 불려갔죠. 적대의 목소리는 예전에도 있었지만 주변적이었는데 왜 그렇게 커질 수 있었을까요? 타인의 고통을 조롱하는 사람들이 나타났고, 그 장면들이 고스란히 방영되고 그것에 환호하는 군중도 생겨났지요. 재난이 파국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것이 파국이라고 누군가가 말했는데, 어떻게 해서 이런 역전이 벌어진 것인지를 계속 묻게 되었죠. 그때 조교가 친구와 광화문 갔던 이야기를 해주었어요. 광화문 단식 현장을 지나는데 친구가 지나가다가 갑자기 유가족 텐트 쪽으로 되돌아가더니 그만 징징대라고 마구 소리치며 화를 내고 오더라는 거예요. 조교는 너무 놀라서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물어봤는데, 친구가 답하길 자기는 어릴 때부터 소녀 가장으로 식구를 먹여 살리고 학비도 모두 자기가 벌었고 지금도 부모가 진 빚을 갚고 있다면서 그럴 때 아무도 자기를 도와주지 않았다고 하더래요. 죽을 것 같은 힘든 상황에서 살아왔고 지금도 죽을 것 같지만 꿋꿋하게 도움을 받지 않고 살아가는데 징징거리는 모습을 보면 화가 치밀어오른다고 하더라는 거예요. 아무도 남을 돌보지 않아야 하는 것이 정상인데 갑자기 온 국민이 이들을 돌보라고 하는 그 ‘불공평한’ 현상이 참을 수 없었던 것이지요.
그때 제가 발견한 것은 우리 사회가 오로지 가족밖에 없는 가족주의로 숨가쁜 개발독재 경제성장기를 거쳐왔다는 사실이었죠. 그 이후 시장만 자유로운 신자유주의 시대는 “아무도 남을 돌보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죠. 오히려 타자의 삶에 관여하고 공감하다보면 루저가 된다는 것을 가르쳤어요. 일류대학에 입학한 내 학생들에 의하면 입시 경쟁이 치열한 특목고 같은 학교에서는 매년 한 명 정도의 자살 사건이 일어나는데, 그때 선생님들은 “동요하지 말라”고 말했고 학교에서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나갔다고 해요. 타자의 고통에 공감하지 말라고 가르친 사회였던 거죠. 사회란 서로 돕고 희노애락을 공유하면서 발전하는 것인데 사실상 우리 사회는 점점 메말라 가고 있었죠. 트라우마와 같은 생존의 상태를 살아낸 이들에게 세월호 참사 때 보여준 시민들의 공감과 애도는 낯설고 화나는 것이었던 거죠. 이런 사회심리현상을 정치권에서 이용하면서 매우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치적 국면을 만들어갔다고 봐요. 결국, 적대와 혐오사회가 된 근원은 우리사회가 초고속 압축 성장을 하면서 상호돌봄과 존중의 사회를 만들어내지 못한 것에 있다고 봅니다. 근대는 가족 외 시민들이 서로를 돌보는 시민사회를 형성하면서 발전하는 것이 정석이죠. 그런데 한국은 가족주의를 이용한 압축적 경제성장의 과정을 거치면서 상호부조하는 사회를 미처 만들어내지 못한 것이죠. 가족끼리 똘똘 뭉쳐서 집안에 의사는, 법관은 꼭 있어야 한다는 게, 가족을 통한 연줄이 없으면 못 산다는 얘기인 거고, 편법과 연줄이 판을 치는 세상을 뜻하지요. 병원에서 가족이 아니면 간병을 못하는 것도 가족만 있고 시민은 없는 사회의 단면을 반영하죠. 입시교육도 이런 현실을 만드는데 큰 몫을 했고요.
가족끼리 똘똘 뭉쳐 살아가는 가족주의 사회의 일면은 세월호 문제를 푸는데도 그대로 작동하고 있어요. 한편에서는 정부나 언론에서 충분한 설명 없이 특별법과 보상금 문제를 부각시키면서 상대적 박탈감을 부추겼어요. 유가족은 감정을 추스를 시간도 없이 전투적 협상 테이블로 떠밀렸죠. 충분한 애도의 시간을 갖지 못한 트라우마 상태에서 자식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으려는 집념으로 유족들은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했던 것이지요. 이런 협상은 원래 제3의 집단, 곧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시민사회가 중간에서 제대로 역할을 해야 하는데 국가는 가족이냐 아니냐를 따져 물으면서 시민사회의 설 땅을 지워버렸죠.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PTSD에 시달리던 유가족들도 가족주의적일수록 시민사회의 개입을 반대했을 테고요, 시민사회측도 제대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서 세월호 애도의 물결이 급격하게 식어갔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어요.
가족의 몫과 시민사회의 역할
정경일 : 운동을 하다 보면 당사자 운동이 중요하잖아요. 소수자 운동도 당사자가 주체가 되어 자신의 존재 이유와 존엄성을 찾고 실천해 나가는 게 바람직한 방향이죠. 하지만 재난이나 참사 피해 당사자의 경우는 달라야 한다고 생각해요. 참사 앞에서는 피해자가 주체라기보다는 사회가 주체여야 할 것 같아요. 유가족이 사랑하는 이들을 애도하고, 치유되고, 일상을 회복하도록 사회가 책임지고 나서야죠. 전에 프랑스에서 항공기가 추락했는데, 문화화된 사회적 매뉴얼을 따르는 것처럼 정부와 시민사회가 나서서 참사 수습과 진상규명 등을 책임지고, 유가족은 애도에 전념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는 것을 보았어요. 사회적 참사의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 노력은 정부와 시민사회가 해야 하는 거죠.
근데 세월호 참사는 정반대였어요. 2015년 4월, 참사 1주기 무렵, 여의도 국회에서부터 서대문을 거쳐 광화문까지 행진했는데, 우리가 기대했던 것보다는 사람들이 적게 모였어요. 유가족은 일 년도 안 지났는데 자신들이 잊히고 있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때 유가족 대표가 “우리가 주체가 돼서 진상규명 해나가겠습니다.” 얘기를 하시는데, 저는 피해 당사자가 주체가 되겠다는 것이 굉장한 용기라는 생각에 박수를 치면서도, 한편으로는 미안한 생각도 들었어요. 정부와 시민사회가 나서서 해야 할 일인데, 가족들이 해결 주체가 되어가는 것 같아서요. 전혀 재난 전문가가 아닌 유가족이 시력에 손상이 올 정도로 온갖 자료들을 읽고 분석하시잖아요. 이런 방식으로 지난 8년 동안 유가족이 자신들을 돌보지 못하고 투쟁 주체로, 조사자로, 정책 제안자로, 활동가로 나설 수밖에 없게 한 현실이 너무 안타깝고 죄송해요.
조한혜정 : 정말 안타깝죠. 당사자와 국가 권력, 이렇게 두 축으로 대립각을 세우게 되면 중재와 협상이 불가능한 대립 상황을 낳거든요. 이 사태를 중재할 시민사회 위원회가 구성되고 유가족과 긴밀하게 소통하면서 갔어야 했는데, 그게 잘 안 되었어요. 엄기호가 쓴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를 보면 ‘편을 먹는 것’과 ‘곁을 만드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편을 먹어버리면 그때부터는 힘 싸움이 되기 때문에 제도권력을 이길 수가 없어요. 곁을 넓혀가면서 감동과 감화를 시키는 방식으로 가면서 탄탄한 지지집단을 만들어냈어야 하죠. 많은 시민들의 지지와 도움을 받으며 학교를 성지로 만들고 추모공원도 만들어가야 하는데, 편으로 갈려 버리니까 대의를 논하는 장은 사라지고 “당신 아이 때문에 우리 아이가 대학 입학에 희생해도 된단 말이야?” 이런 식의 말이 나오게 되는 것이지요. 세월호 참사는 초반에는 그런 논리가 나올 수가 없는 ‘지성과 영성적 사회’를 만들어냈는데 안타깝게도 그것을 유지발전 시키지 못했어요.
정경일 : 생각해보면, 고통의 기억 공간을 없애려는 우리 사회가 너무 무서워요.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자리에 고층 고급 아파트가 들어섰죠. 성수대교 붕괴 참사 희생자 위령비가 있는 곳은 대중교통으로 접근하기가 거의 어려워요. 광화문에 있던 세월호 기억 공간도 광화문 광장을 새로 만든 후에는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어요. 기억관을 예전처럼 그대로 옮겨놓지는 못해도, 어떤 형태로든 기억 공간 또는 상징물이라도 만들어, 거기서 애도도 하고 집회도 하고 예배도 하며 기억할 수 있게 해야 하는데, 다 안 된다잖아요. 사회적 고통을 기억하는 공간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그게 우리 사회의 중요한 과제인 것 같아요.
가족의 변화, 곁의 변화
정경일 :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가 꾸준히 활동해 오고 있지만,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가족 수는 그렇게 많지 않아요. 몸이 아프신 분도 많고요. 많은 분이 고된 활동과 트라우마로 번아웃 상태인데, 그렇게 지쳐 있으면서도 활동을 계속하시는 게 걱정되고 불안해요. 유가족이야말로 쉴 때 쉬고 일할 때 일하셔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세요.
제가 연대하는 그리스도인 유가족은 동료 신앙인들로부터 상처를 받아 교회를 떠난 경험들을 갖고 계세요. 교회 가면, 하느님의 뜻이 있을 거야, 아이들은 천국에 갔으니 이제 그만 슬퍼해...... 이런 얘기를 듣고 실망해 교회를 떠났던 거죠. 그래도 지금은 다시 교회로 돌아가신 분들도 계시고, 전에는 속이 뒤집혔던 얘기를 들으셔도 요즘은 그냥 참으세요. 조롱과 모욕을 너무 많이 당해오셔서 그런지, 악의 없는 경솔한 말들에 대해서는 어이없어 하시고 마는 것 같아요.
4.16생명안전공원예배팀의 그리스도인 유가족은 4.16합창단에서도 적극적으로 활동하시는데, 당신들이 차별받고 혐오당하고 배제당해왔기 때문인지, 우리 사회의 고통받는 사람들과의 연대에도 열심이에요. 그렇게 고통받는 다른 사람들과 당신들을 동일시하면서 자기확장과 치유의 경험을 하고 계신 것 같아요.
조한혜정 : 이제 트라우마의 경험을 승화시키고 계시는 거죠.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PTSD의 경우, 회복 과정을 세 단계로 보는데 첫 번째가 혼돈의 상태라고 하죠. 착각, 환각 등 섬망을 보는 의식 장애 상태로 극도의 무력함 속에 스스로 일어서기가 힘들다고 해요. 함께 슬퍼하고 애도하는 이들의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이지요. 두 번째는 조절이 힘든 공포와 당혹감의 시간을 지나 나름 생각과 감정을 정리하는 단계라고 해요. “죽고 싶다”(감당하기 어려운 아픔과 공포, 자책감). “죽이고 싶다”(복수). “살아야 한다”(본능)는 감정에 시달리지만,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조용히 풀어내고 스스로 알아차리는 시간을 통해 감정을 정리하고 일상으로 돌아가게 되는 거지요. 한 전문가가 세월호 가족은 이 과정에서 크게 방해를 받은 경우라고 했어요. 엄청난 적대와 혐오에 맞닥뜨렸고 보호하는 척 하면서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발언, 언론의 섣부른 진상규명과 보상금 등의 논란, 온갖 비난과 엄청난 방해와 소음을 견뎌야 했었죠. 투쟁이 극단적으로 치달을 때도 내부적으로 애도의 모임을 만들어 삼삼 오오 모여 수를 놓고 기억 물품 가게를 여는 등 조용한 활동의 장을 만들어간 유족들이 계셔서 그나마 다행이었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세 번째 단계는 분노와 복수를 넘어 연대하는 시간이죠. 안정을 되찾으면서 다시 사회를 신뢰하고 사랑할 수 있게 되는 단계지요. 자식 잃은 아픔과 슬픔은 평생 가도 치유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일정한 화해를 통해 일상으로 돌아가겠다는 결단을 하는 시간입니다. 슬픔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지만 희생의 의미를 살리면서 잘 살아내자는 결단을 내리는 단계, 희생의 사건을 자신의 삶의 의미로 녹여내는 승화의 단계죠. 아마도 지금 우리에게 이런 대담을 요청한 분들은 이 세 번째 단계에서 신뢰와 사랑, 우정과 환대의 사회를 만들어내려는 노력하는 분들일 것 같습니다.
하버마스는 소통합리성과 도구적 합리성 이야기를 해요. 상호 이해 자체가 목적인 소통합리성의 세계와 목적 달성이 목표인 도구적 합리성의 세계는 원리 자체가 다르지요. 도구적 합리성의 세계에서는 목적을 이루고자 싸울 수밖에 없고, 누가 더 세냐, 누가 더 똑똑하냐, 누가 더 많이 가졌냐로 판가름을 하게 되지요. 그런데 파국적 상황은 소통합리성을 담보하지 못하면 해결될 수 없어요. 정경일 선생님이 해오신 한 달에 한 번 그냥 함께 모여 기도하고 예배하는 모임, 그냥 존재로 곁에 있어 주는 모임이 소통합리성의 시간인 것이지요. 얼마 전부터 정경일 선생님과 몇 사람이 수요일마다 줌으로 일주일 간의 생활 나눔을 하고 묵상하는 모임을 갖고 있어요. 뚜렷한 목적 없이 그냥 모여서 힘든 일 있으면 나누고 기도하고 지혜를 나누는 모임이에요. 같이 있는 것 자체로 따뜻한 느낌을 주는 그런 시공간은 의외로 기적 같은 일들을 만들어내요. 사회학자 김홍중은 지금 시대에 우리가 키워야 하는 것은 ‘상상력’이 아니라 ‘파상력’이라고 말하죠. 깨져나가는 세상을 바라보는 힘을 키워야 하는 시대라는 말이죠. 함께 있음으로 키워지는 우정과 환대의 세계, 이기고 지는 게임에 빠지지 않고 서로를 지지하고 추앙하는 시공간에서 곁을 만들어가고 생기를 충전하게 되죠. 그런 작은 모임들이 프렉탈 무늬처럼 백 개, 천 개, 만 개, 십만, 백만, 천만의 세포처럼 늘어나면서 개벽이 오는 거죠. 그래서 지금은 나로 그냥 있으면서 좋은 에너지를 낼 수 있는 소모임이 무엇보다 중요해요.
정경일 : 가족협의회 외에 유가족이 활동하는 소모임이 여럿 있어요. 4.16생명안전공원예배팀, 4.16합창단, 4.16공방, 4.16극단 등인데, 이런 모임과 활동을 통해 진상규명을 위해 싸우면서도 숨을 돌릴 수 있는 당신들의 안전한 공간을 만들어 오신 것 같아요. 거기서 일상을 조금씩 찾아가시는 것 같고요. 일상을 잃어버려서 가장 괴로운 사람이 피해자인데, 피해자가 일상을 갖는 모습을 비난하는 게 2차 가해잖아요. 신앙이든, 음악이든, 미술이든, 연극이든, 진상규명 활동 외에 ‘딴 것’도 할 수 있어야 더 길게, 덜 지치게 걸어갈 수 있겠다 싶어요.
조한혜정 : 미래학자 다너 해러웨이는 망가진 행성에서 살아가는 방법으로 ‘기쁨의 실천’을 이야기해요. 더 이상 답이 없는 멸종의 시대에 여전히 도구적 생각, 전략적 생각만 한다면 답이 없죠. 점점 우울해지고 살아가기 힘들어지죠. 최근에 그가 내건 선동적 슬로건은 “인간 친족이 아니라 비인간 친족을 만들자(Not babies, but Kins)”예요. 그 문장을 읽으면서 나는 “혈연친족이 아니라 비혈연 친족을 만들자”고 일단 바꾸고 싶어지더라고요. 한국도 일천만 반려동물 시대가 왔다고 하고 그들을 친족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이들도 많아지고 있죠. 조만간 살가운 기계인간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고요. 2021년도에 나온 〈애프트 양〉 이나 〈아임 유어 맨〉과 같은 안드로이드가 나오는 영화가 곧 도래할 그런 현실을 보여주고 있죠. 어쨌든 인간중심주의를 벗어나고 핏줄 중심 가족주의를 넘어서 비혈연 친족과 비인간 존재와 공생 관계를 맺고 기쁨의 실천을 하며 살아갈 훈련을 해야 할 때예요. 같이 있는 것 자체로 위로가 되고 자연스럽게 상호호혜의 관계로 발전하는 우정과 환대의 세상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거죠.
충분한 소통과 공감의 세계를 만들지 못한 상태에서 투쟁에 임한다면 이기길 기대하긴 어렵죠.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것은 내부에 유토피아가 있기 때문일 거예요. 골리앗에게 다윗이 이긴 것도 그 때문이고요. 하버마스가 말한 생활세계는 소통과 상생의 세계이자 돌봄의 세계죠. 이런 세계에서는 돌봄을 받는 자 역시 주체이죠. 돌봄은 상호적이니까요. 돈의 순환체계가 아닌 돌봄의 순환체계, 적대와 혐오의 트라우마를 우정과 환대로 치유하는 돌봄사회를 만드는 일을 소홀히 했기 때문에 우리가 지고 있는 겁니다. 애도와 우정의 세계를 무시하면 우리 모두가 상처받고 나가떨어질 수 밖에 없어요. 자신을 사랑하고 서로가 풍성해지는 관계에서 나오는 기운이 재난 상황을 풀어갈 에너지원이에요. 찬 바람이 불면 외투를 더 꼭 껴입지만, 햇볕이 내리쬐면 벗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을 감복시킬 때 변화가 오죠. 따뜻한 햇볕을 어떻게 만들 건가 고민 하자는 거죠. 세상을 적과 아군으로만 구분하는 세계관에서 벗어나야 하죠. 기쁨의 실천이라는 단어를 요즘 부쩍 자주 쓰는 이유입니다.
재난 속의 기쁨, 그 힘
정경일 : 기쁨은 고통받는 이들에게 더욱 중요한 것 같아요. 재난과 참사 속에서도 위로를 주는 문득, 몇 초, 순간의 기쁨들이 없었다면 유가족도 여기까지 걸어올 수 없었을 거예요. 자식은 살아서 돌아오지 않기에 유가족의 행복은 회복되지 않겠지만, 자식을 기억하면서 아픔과 슬픔 만큼 기쁨도 느끼시는 것 같아요. 또 시민들의 기억과 연대에서도요. 곁에 있는 저도 그래요. 얼마 전 어느 식당에 갔는데, 주인이 지금까지도 노란 리본 고리를 손님들에게 나눠주려 비치해 놓은 것을 보고 너무 기뻤어요. 또 길 가다 노란 리본을 가방에 달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도요. 몇 달 전에 강화도에서 미술 전시회에 갔다가, 화가가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며 4년 동안 그린 그림을 보았어요. 그 작품을 사진으로 찍어 유가족 분들에게 보내 드렸더니 너무 기뻐하며 고마워 하셨어요. 그런 순간순간의 기쁨을 징검다리처럼 밟으며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그런 작은 기쁨들이 끊기면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없는 거겠죠.
전에 “고통 속의 감사”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일이 있어서, 유가족 부모님들과 함께하는 단톡방에서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검색했는데, 그 말을 세다가 울컥하며 그만뒀어요. 셀 수 없이 너무 많은 거예요. 이래도, 고맙습니다. 저래도, 고맙습니다, 별일 아닌데도, 서로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 유가족이 원하는 것은 엄청난 환희나 행복이 아니라 정말 작은 기쁨들인 것 같아요.
조한혜정 : 그리고 성당, 교회, 수도원, 전국 방방곡곡, 그리고 해외에서도 세월호가 좀 다른 세상을 만드는 버팀목이 되는 시공간을 제공하고 있죠. 제가 아는 유가족들은 그런 것에서 위로를 받고 기쁨의 순간을 즐기면서 지내는 것 같아요.
정경일 : 지금도 세월호 해외 연대 활동가들은 열심히 온라인 피케팅을 해요. 해외에서 연대하시는 분들이 그렇게 꾸준히 활동할 수 있는 것은, 한국사회에서처럼 혐오와 반감과 공격을 직접적으로 경험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한국에서는 안산에서든 서울에서든 세월호 운동 열심히 하신 분들 중에 거리에서 욕 안 들어보신 분들이 거의 없. 그 경험의 차이가 애도와 기억의 지속에 영향을 미친 게 아닐까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조한혜정 : 한국이 너무 빠른 속도로 자본주의화 했던 것과 관련이 있죠. 2014년 서울대에서 했던 심포지움에서 김석수 경북대 철학과 교수가 한 말이 기억에 남아요. “한 사회에서 어떤 나쁜 일이 반복적으로 일어난다면 사회의 구성원들이 망각증에 빠져있기 때문”이라고 말했어요. 뒤를 돌아보지 않고 달리는 사람은 기억하지 않으려는, 뭔가에 쫓기는 사람이라고도 했던 것 같아요.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거죠. 교포들은 한발 떨어져 볼 수 있고 그래서 ‘기억’할 여유를 갖고 있는 것 아닐까요? 교포들은 세월호 참사를 기억함으로 애도의 시공간을 만들어내죠. 주요한 역사적 사건을 기억하고 소환하면서 우정과 환대의 공동체를 만들어낸 것이죠. 일시적이건 상시적이건.
정경일 : 서양은 홀로코스트에 대한 반성도 있었고, 베트남전쟁 후 PTSD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생겼잖아요. 울리히 벡이 말했던 ‘위험사회’처럼, 현대 과학기술문명이 초래한 재해의 파괴적 결과들을 먼저 경험하고 성찰하기도 했고요. 그 과정에서 참사를 어떻게 다룰지 어느 정도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한 합의가 이루어져 있는 것 같아요.
조한혜정 : 요즘 참사가 났을 때 사회적 반응을 보며 선진국이 어떤 나라를 말하는지 생각하게 되는데, 미국서 고등학교를 다닌 친구가 해준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한 학생이 자살을 했는데 전 학교가 애도의 의례를 치르고 죽은 아이와 친한 친구들은 모두 학교를 쉬게 하고 상담자와 연결해서 트라우마 상황에서 벗어나게 돕고 필요한 휴식을 취하게 했다고 해요. 한국서는 노년층만 아니라 청년층에서도 개인의 불행에 왜 몇억을 주냐며 흥분하는 이들을 볼 수 있죠. 국가와 사회가 개개인 시민을 보호해야 한다는 감 자체를 갖고 있지 못한 듯해요. 시위문화를 보면서도 그 차이를 보게 되는데, 4년 전에 미국 미네소타 주 미네아폴리스에 갔을 때, 도심에서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는 사람들과 마주쳤어요. 각자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안에 대해 피켓을 들고 여러 팀이 모여서 재미난 구호를 외치고 서로의 사안에 대해 묻기도 했는데, 매주 그곳에 온다고 했어요. 남의 피켓을 들어주기도 하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정기적으로 지속되는 축제적 시위였죠. 취미 활동 같아 보이기도 했지만, 그런 축제적 시위의 시공간을 통해 상호부조하는 시민들을 모아내고 일반 시민들에게도 자극을 주는 것이지요. 다원적 민주주의가 정착한 모습인데, 한국의 경우는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그런 시위문화가 만들어질 것이라 생각했어요. 참사는 계속 일어나게 되어 있는 위험사회이고 문제는 한꺼번에 깔끔하게 풀리는 성질도 아니라 즐거운 시위를 수시로 벌이면서 파상력을 키워가야 하는 것이지요. 시를 읽고 악기를 연주하고 그림을 그리는 등 다양한 창조와 기쁨의 활동을 수반하는 시위 문화를 만들어가면 좋겠어요. 그런 장소에서 자연스럽게 결성되는 많은 지성적이고 감성적이고 영성적인 코어 그룹들이 세상을 바꾸는 지렛대가 되지 않을까요? 학습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다양한 대안적 배움의 장들도 만들어질테고요.
안산은 4.16생명안정공원을 세우는 것을 중심으로 치유와 화해와 공존의 도시로 거듭나야 할 것입니다. 앞으로 2년 열심히 하면 10주기에는 뭔가 신나는 것이 나오지 않을까요? 광주는 여전히 트라우마가 남아 있고 당사자들은 연로해지시고..... 반면 세월호 관련 활동가들을 보면 안산에서는 가능할 것 같은데요. 나이도 그렇고, 여러 가지 사회문화적 조건을 봐도 그렇고요. 마침 근처에 신도시가 들어서서 부동산에 관심 많은 이들은 이사를 가신다니까, 이곳에는 추모의 염을 가진 우정과 환대의 감각을 중시하는 분들이 남아 상호부조의 마을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요? 일정하게 시민적 감수성을 키운 사람들이 모여서 ‘사회’가 살아 있는 동네를 만들어내는 거죠. 저는 최근 여럿이 같이 사는 협동조합주택에서 지내고 있는데 식사를 일주일에 한 번 같이 하자고 해놓고 매일 국수해 놨다, 김밥 가져가라, 날씨가 꾸무리하니 파전 붙여 먹자고 카톡이 와요. 그래서 자주 밥을 같이 먹으며 재미난 일을 꾸리게 되더라고요.지금은 부동산이니 뭐니 돈에 미친 상태로 가버린 이들이 많은 것 같지만, 안 그런 삶이 가능하고, 우정의 세계를 만들고 그 안에서 살아야 한다는 데 동의하는 이들도 크게 늘어나고 있어요. 세월호 10주기 때는 좀 다른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4.16생명안전공원이 한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의 축복 속에 개관하면 좋겠어요.
정경일 : 4.16생명안전공원은 내년 2월에 착공한다고 들었어요. 저도 선생님 말씀처럼 치유와 화해와 공존이 일어나면 좋겠는데,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10주기가 된다고 해서 낙관하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오래 멀리 가기 위해
조한혜정 : 다양성을 인정하기 시작하면 가능할 텐데 그게 쉽지 않죠? 나와 다른 생각을 하지만 언젠가 같아질 수 있고, 안 같아져도 되고, 그런 태도로 다름을 인정하고 가면 많은 문제가 풀릴 텐데 자기만이 옳다고 생각하게 되니 이분법적 세계에 갇혀버리는 거죠. 내편 니편 누구 편을 드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지지하고 환대하는 감각을 가지고 살아갈 때 기적이 일어나는 거예요. 세월호 세대와 부모들 세대가 협력하여 가능하게 만들어야 하는 일 아닐까요? 최근에 제가 만났던 어머니들 보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은데.......
정경일 : 네, 세월호 가족들에게 함께 살아가는 힘, 공동체를 일궈 가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 유가족 부모님들은 선생님이 말씀하신 “비혈연 친족”을 이미 실현하고 계신 것 같아요. 서로 진짜 가족이 된 것 같아요. 서로에 대한 호칭도 재밌어요. 예배팀의 예은이 어머니는 박은희 님이고, 창현이 어머니는 최순화 님이고, 지성이 어머니는 안명미 님이고, 시찬어머니는 오순이 님이고, 순영 어머니는 정순덕 님인데, 서로 부를 때 은희 씨, 순화 언니, 명미 언니...... 이러지 않고, 예은아, 창현 언니, 지성 언니...... 이렇게 불러요. 자기와 아이를 동일시하면서 아이의 삶을 계속 살아가고 있는 분들이, 서로를 자매처럼, 친구처럼, 가족처럼 대하는 거죠. 저는 이분들의 미래가 어떻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얘기는 거의 안 하는데, 정말 마음이 통하는 분들끼리 모여 사셔도 좋겠다 싶어요.
조한혜정 : 그런 분들만 모이면 안 되지. 정경일 선생님 같은 제3자들이 많이 들어가야지.
정경일 : 하긴, 부모님들이 저 보고 안산으로 이사 오라고들 하세요. (웃음)
조한혜정 : 유가족들만 살기보다 크게 본 애도 공동체가 우정과 환대의 마을살이를 시작하는 거죠. 분노와 복수를 넘어 연대하는 시간, 치유의 마지막 단계는 아마도 그런 느슨한 공동체로 모여 사는 단계가 아닐까 싶네요. 세월호 부모님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이 시대의 사람들은 기후위기와 펜데믹부터 온라인 금융사기까지 온갖 황당한 사건을 당하면서 트라우마 속에 살고 있죠. 우울하기는 뭐 나도 코로나19 트라우마로 밥도 잘 못 먹고 5kg이나 빠졌었어요. 도대체 왜 살아야 되는 거지, 이런 생각을 모두가 하게 되었다고 생각해요. 이제는 누구의 고통이 특수한 고통이라고 말하기 어렵게 되어버렸죠. 그리고 모두가 자유의지의 신이 되어버려서 아이들은 다 외롭기 짝이 없죠. 그래서 더욱 내 아이, 남의 아이 차별하지 않고 모든 아이가 우리들의 아이인 동네를 만들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새로운 학습과 깨달음의 시대가 열리는 거죠.
정경일 : 유가족 부모님들이 많이 하시는 얘기 중 하나가, 세월호 참사 후에 광주에 처음 내려갔을 때 너무 미안하고 부끄러우셨대요. 광주 5.18때 당신들은 관심도 없었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것이요.
조한혜정 : 스스로를 상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면 연대가 가능해지고 보다 보편적인 학습의 장으로 들어가게 되지요. 전혀 다른 시선으로 판을 보게 되면서 내공도 쌓게 되고요.
정경일 : 저도 유가족이 그런 방향으로 가실 거라고 생각해요. 근데 지금이 그 시점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유가족이 너무 힘들어하시니까요. 요즘은 고립감도 커요. 열심히 연대했던 사람들도, 문재인 정권 때 다 해결된 거 아니냐고 얘기하니까요.
조한혜정 : 문재인 정권이 이 문제를 제대로 풀었어야 했죠. 시민사회가 약해서 결국 이런 상황에 되었다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세월호 참사로 대통령이 된 경우인데 문제를 잘 풀어내지 못했다고 봅니다. 성급한 연대라는 것도 일을 힘들게 만들었고요. 전에도 말했지만 충격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한 유가족들이 우정과 환대의 지지집단을 만들지 못한 상태에서 협상에 나섰죠. 결국 교착 상태가 되었고 그런 교착상태를 보면서 초반에 애도했던 시민들도 많이 떨어져나갔고요. 진상규명을 두고 볼 때 그것을 누가 하며 누구한테 무엇을 기대할지 잘 따져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많은 이들이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나누는 자리가 많아야 하는 것이고요.
동시에 거시적인 문명사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유발 하라리도 얘기하지만, 농업혁명 이후에 부의 축적이 가능해지면서 고대 제국주의 국가가 등장하고 우리는 지금 그 제국주의적 역사의 끄트머리에 살고 있어요. 영원한 제국을 꿈꾸는 왕들의 침략과 그들이 조직한 원리가 주도하는 근대 문명 말입니다. 그 역사는 힘이 중심이 되는 남성중심적 역사였어요. 여성들이 주도한 아이들을 키우는 재생산의 영역, 곧 돌봄과 소통과 공감의 영역은 점점 축소되고 승자독식의 제국주의가 확장되는 역사를 거쳐왔지요. 그나마 평화로웠던 왕국인 고대 그리스 시대의 철학자들은 도시의 발전과 평화는 국가와 가족이 아니라 코이노니아, 곧 자발적 시민들의 사귐의 세계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했죠. 그런 면에서 한국의 자발적인 시민들의 사귐은 미약하거나 국가나 시장과 결탁한 이권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어요. 너무 많은 권력을 국가에 위임하게 된 배경이죠. 지금은 작은 정치를 시작할 때라고 생각해요. 각자의 삶의 장에서 일상의 문제로 당사자들이 모여서 문제를 풀어가야 하고 그것이 정치의 기본이 되어야 하죠. 그런 정치는 유치원 때부터 익혀야 하는 것이고요. 문제를 발견하고 충분히 토론해하고 지혜로운 해결책을 찾아내는 경험이 축적될 때 민주주의가 꽃피게 되죠. 갈등을 회피하지 않고 드러내는 것, 부지런히 탐구하는 것, 그리고 토론과 협동의 실천을 통해 국가와 가족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어야 하죠.
정경일 : 그래도 국가 차원의 진상규명과 사과가 있어야 유가족이 치유의 과정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아요. 문재인 정권 때 거기까지 갔어야 했는데, 갈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는데 해내지 못했잖아요. 답답한 게, 진상규명을 둘러싼 조사 내용이 너무 복잡하고 또 전문적이어서 무엇이 정말 진실인지 모르겠어요. 선체조사위원회에서도 공통 결론을 못 냈고요. 저는 유가족이 집단 지성으로 납득하고 수용하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정부 차원의 조사와 수사를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때까지 저나 선생님처럼 공감하고 지지하고 곁에 계속 있으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유가족에게 힘이 될 것 같아요. 저는 유가족을 믿어요. 저는 2014년 4월 16일 이후에 단 하루도 세월호를 잊은 적이 없지만, 그래도 다른 일에 집중할 때가 더 많았어요. 하지만 유가족은 지난 8년 동안 매일매일 생각하고 연구하고 고심해 오셨으니까, 그분들의 판단과 결정을 신뢰하려고요. 그게 유가족 곁에 있는 사람들, 사회 공동체의 자세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조한혜정 : 저는 노란 리본도 안 달고 다니고, 세월호를 거의 잊고 사는 사람이에요. 주변에서 너무 끔찍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어서예요. 계속 참사가 일어나는 세상에 살면서세월호 팀이 잘해주면 정말 좋겠다는 바람은 더 강해지죠. 그렇지만 가슴에 돌덩어리가 얹어지는 것 같은 사건이 너무 잦아요.
정경일 : 누구나 언제나 세월호만 생각하며 살아야 하는 건 아니죠. 선생님께서 “모든 비극에 참여하려 했다간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하게 될 테니 한 가지에만 관여하라.”고 한 사사키 아타루의 말을 들려주신 적이 있는데, 깊이 공감했어요. 사람마다 연대의 ‘용량’이 있는 것 같아요. 인연도 있는 것 같고요. 한 사람이 고통받는 모든 사람과 연대할 수는 없잖아요. 제가 세월호 그리스도인 유가족과 인연이 닿아 곁에 있게 된 것처럼, 각자 성소수자든 비정규직 노동자든 난민이든 그렇게 인연이 닿거나 인연을 지어 친구가 되어 곁에 있게 되면, 사회 전체적으로는 고통받는 사람들이 외롭지 않게 될 테니까요.
담당자 : 공동체 회복프로그램을 담당하는 지원자로서 세월호 가족과 이웃과의 만남에 있어 저희와 더불어 지원하는 단체들이 어느 정도 선까지 개입하고 도와드리는 것이 가족들과 우리 안산에 건강한 역할을 하는 걸까 굉장히 많이 고민해요.
조한혜정 : 이제는 유족과 유족 아닌 이를 구분하지 않으면 해요. 공무원과 비공무원도 구분하지 않으면 해요. 그냥 측은지심을 가진 사람으로 다들 참여하는 거죠. 모두가 시대 공부를 하고 상생의 프로젝트를 만들어내는 ‘시민-공무원’이 되면 좋겠어요. 세월호와 같은 참사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인간으로, 시민으로 서로 만나고 우정의 세계를 열어가야죠. 아까도 말했지만 우정과 환대의 세상을 열어가는 사람들은 아주 적은 수라도 기적 같은 일을 해내죠. 삼삼오오 모여 무언가를 하려는 이들을 믿어주고 공간을 내주고, 성과 내라고 재촉하지 말고 기다려줄 수 있는 공무원이 나타나야 하죠. 그것은 화초와 같아서 정성껏 씨를 심고 물을 주고 지켜보면 잘 자라지요. 내가 담당 공무원이라면 우리 동네 아이들을 아주 훌륭하게 키우는 일과 노인들을 창의적으로 돌보는 일을 할 것 같아요. 어린이 작가 모임, 매주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부르며 삶의 기쁨을 느끼는 80대 할머니들 모임, 국 잘 끓이는 동네 요리사와 바쁜 동네 직장인들의 저녁 식탁 모임, 이런 조합으로 서로의 필요한 부분을 채워주고 문제를 해결해가는 모임들이 제대로 굴러가게 지원하는 일을 할 겁니다. 실제로 나는 제주도 오래된 마을에서 글을 모르는 할머니 글을 가르치고 그림 선생님은 그림을 가르치며 공생공락의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어요. 자발적인 시민들의 사귐의 세계죠. 그 세계에서는 나날이 놀라운 일들이 벌어집니다. 소통과 돌봄과 상생의 원리가 살아 있기 때문이지요. 나는 아마도 그런 일이 벌어지는 방향에서 공적 자원을 잘 활용하는 연구모임도 꾸릴 겁니다.
지금은 아파트 층간 소음 살인이 일어나는 적대와 혐오의 세상을 우정과 환대의 세상으로 전환하는데 힘을 쏟아야 할 때이지요. 더불어 사는 기쁨이 있는 삶의 모델을 만들 때라고 생각해요. 남을 짓밟고 죽고 죽이는 〈오징어 게임〉의 세상에서 살아남는 애를 키우기보다 더불어 사는 애를 키우고 싶다는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문제적 사회를 아래로부터 변화시켜 나가는 것을 돕는 것이지요. 이때 재난을 당한 이들이 가진 힘과 지혜를 존중해야 하고요. 그 지혜와 상호 배려의 공간을 조용하게 확산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거죠. 그런 것이 싫다는 지역주민이 있으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계시면 되는 거고요. 홀로 있고 싶은 사람은 이사를 가든 장벽을 치고 살면 되는 거지요. 상생의 기운을 살려야지 민원에 끌려다녀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자발적인 시민들 중심으로 시민적 공공성을 높이는 활동을 지원하는 일을 즐겁게 하면 좋겠습니다. 그 동네에 이사를 가면 더욱 좋고요,
정경일 : 저도 시민의 자발성과 자율성이 중요한 것 같아요. 희망이 있는 마을을 시에서 일방적으로, 시혜적으로 만들어줄 수는 없잖아요. 저도 공동체에 관심이 많은데, 완전한 공동체는 없는 것 같아요. 좋은 뜻으로 생겨난 공동체도 시간이 지나면 변질되고 쇠퇴하거든요. 하지만 완전한 공동체는 아니어도 공동의 관계, 공동의 삶의 영역을 만드는 건 가능할 것 같아요. 공동체를 시에서 만들어준다기보다는, 시민이 새로운 관계 방식, 삶의 방식을 스스로 찾아가도록 지원해 줄 수 있겠죠.
조한혜정 : 이런 식의 일을 하고 싶은 청년들이 많거든요. 북카페든 도서관의 한 공간이든 어떤 공간을 청년들에게 맡기고 원하는 것을 하게 하는 것도 방법이죠. 정경일 선생님 같은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 슬픔에 대한 수업을 할 수도 있고, 주택 하나에서 자발적이고 자생적인 다양한 수업이 벌어지는 작은 미네르바 대학 같은 것도 만들 수가 있죠. 아니면 할머니와 손주들이 공원에서 모여 다 같이 그림을 그리고 전시회 하는 거죠. 90년대 영화 〈서편제〉에서 “가장 한국적인 것은 가장 세계적인 것이여!”라는 대사가 나와 인기를 끌었는데, 이제는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인 시대이고, 한국은 아래로부터의 움직임, 지역적인 것을 무시해온 터라 앞으로는 아래로부터의 움직임을 활성화하기 위한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발성과 자율성을 해치지 않는 지원이어야 하고요.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세계적 교류를 생각하면서 온라인·오프라인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것도 권하고 싶네요. 대대적인 학습의 시간을 통해 ‘해방적 파국’의 상황을 만들어낼 수 있으면 해요.
정경일 : 세월호와 직접적 관련은 없어도 우리 사회에서 공동체가 살아나고, 서로 돌보고 배려하는 문화가 만들어지면, 자연스럽게 세월호 유가족에 대해서도 더 환대하게 될 것 같아요. 어쩌면 그게 장기적인 대안일 것 같아요.
담당자 : 세월호 유가족들의 질문인데요. 지역사회 안에서 화합하고 연대하고 또 살아나가기 위해서 가족 본인들에게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계시고 그분들의 태도는 어떻게 달라져야 할지 여쭤보고 싶어요. 어떤 분들은 아픔을 많이 소화하시고 미래를 바라보고 계시고 아직 과거에 머물러 계시는 분도 계세요. 가족분들이 약간 태도가 바뀌셨어요. 처음에 저희와 사업을 할 때는 본인들의 상처를 돌아보는 시간을 많이 가지셨다면 지금은 안산 시민들과 만나시면서 “우리가 재난과 안전에 누구보다 목소리를 낼 수 있기 때문에 우리가 안전에 대한 강의를 하고 교사가 되겠다” 해서 안전교육을 받으시고 학교에 안전교사로서 들어가서 활동도 하시거든요. 또 저희한테 요청하시는 게 생명안전공원 들어오게 되면 우리 아이들이 여기서 잠자게 될텐데 여기 있는 사람들과 녹아들고 싶다. 세월호라는 이야기로만 접근했을 때는 들어가기 힘들기 때문에 여기 사람들과 융화될 수 있게 만날 수 있는 사업을 강화시켜 달라는 요구를 많이 하고 계세요.
조한혜정 : 아주 바람직한 변화이군요. 일단 저는 이제 유가족을 해방시켜드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실 가족이라는 게 다양하고 그 관계도 다양하고요. 특히 근대 이후 개개인의 자유의지가 중요해지면서 부부 중심 핵가족에서 아이들은 20세 정도면 집을 떠나는 것으로 되어 있지요. 그런데 이런 사건을 당하시면서 아이가 세상을 떠난 시간에 머물려는 경향이 생겼을 수 있어요. 다들 트라우마의 두 번째와 세 번째 단계를 거치고 계실 텐데, 잘 이동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으면 좋겠지요. 유가족도 8년 동안 진화하고 있고, 다양한 나이대 사람들이 각각의 모습으로 살아내고 계실 텐데 “유가족을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질문보다 그분들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경청하고 그런 일이 가능하도록 지원하면 좋겠어요. PTSD로부터 벗어나고 있는 유가족이 시민으로서 활동하는 것을 돕는다면 재난 시대에 시민들이 해야 할 일도 잘 보일 테지요.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원하는 이들의 독서모임부터 합창모임, 환경문제를 푸는 과학 동아리까지, 세상을 구하는 다양한 일들을 벌이면서 보람있는 삶을 살려는 팀을 지원하는 것도 방법이고요. 요즘 공무원들이 기획을 잘 하시는 데 기획 전에 충분히 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인류학자처럼 참여관찰을 하는 것이지요. 개인적으로 모험 놀이터 같은 것을 해보면 좋겠어요. 유럽에서 7, 80년대 만들어졌고 일본에도 90년대 이후 모험 놀이터가 많이 생겼는데, 거기서는 불장난도 하고 나무집에도 올라가고 떨어져도 보면서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단련을 할 수 있어요. ‘위험사회’를 살아가는 훈련을 놀면서 하는 거죠. 유족들도 이런 기발한 프로젝트에 연구자와 시민으로서 참여하는 거죠.
정경일 : 유가족은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안전사회 건설’, 이 세 가지를 과제로 갖고 있는데, 그게 순차적이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진상을 규명한 다음에 책임자를 처벌하고, 그다음에 안전사회를 건설하는 식으로 생각하면, 그게 20년이 걸릴지 40년이 걸릴지 모르잖아요. 광주학살이 40년이 넘도록 완전한 진상규명을 하고 있지 못한 것처럼요. 저는 세 가지 과제가 동시적으로 가야 하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시민사회의 역할인 것 같아요. 그 과정에서 4.16생명안전공원도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할 것 같아요. 4.16생명안전공원의 목적은 진상규명의 역사를 간직하는 것 뿐만 아니라, 말 그대로 생명과 안전을 꿈꾸는 시민공간으로서의 ‘공원’이기도 하니까요. 방금 말씀하신, 유가족이 모험 놀이터를 운영하거나 안전교사 활동을 하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이미 그런 역할을 하고 계신 분들도 계시고요. 헨리 나웬은 ‘상처입은 치유자’(wounded healer)에 대해 이야기했어요. 고통을 겪은 사람들이 고통 받는 다른 사람을 치유하는 이로 변화하고 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세월호 유가족이 그런 상처입은 치유자가 되실 거라고 믿어요.
조한혜정 : 경험자가 가장 훌륭한 교사지요. 모두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위험사회’의 성격을 파악하고 삼삼오오 모여 연구하고 기도하고 일상을 축제로 만들어가면 좋겠어요. 재난은 숨겨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재난 유토피아로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죠. 저주를 축복으로 만들어내야 한다는 말. 실제로 외국 교포나 여행객들이 많이 오고 싶어할 겁니다. 그들이 이곳을 매력적인 순례지로 기억하고 다시 오고 싶어지면 되는 겁니다. 공원 예산 협상도 잘 해야 하지만 콘텐츠가 좋아야 하죠. 눈치 보고 서로 싸우지 말고 서로로부터 배우고 조율하는 관계로 가야죠. 논의의 수준과 논의의 장을 대폭 확장하거나 완전히 바꿔야 할 거예요. 예산 쓰는 방법을 바꾸거나 운영의 묘를 시민들에게 잘 가르쳐야 하고요. 내가 아는 세상이 전체가 아니며 우리는 모두 부분적 진실을 알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지요. 세월호가 가진 상징성이 있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공간화가 이루어지면 한국에서 가장 매력적인 곳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어린아이들이 입시 교육체제에 벗어나 지구를 살리는 존재로 자라는 곳, 젊은 친구들이 활동가와 기획자로 마음껏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며 산적한 주변의 문제를 풀어가는 곳, 그곳에서 공무원들이 가족도 국가도 아닌 제3의 시민적 권력에 대한 감을 익히면서 지역주민으로 살게 되면 좀 다른 세상이 조만간 열리리라 생각해요.
정경일 : 오늘 대화를 시작하면서 제가 당사자 얘기를 했잖아요? 선생님 말씀을 듣고 대화 나누다 보니, 고통받는 당사자 곁에 있는 활동가들, 또 그 곁에 있는 사람들의 곁에 있는 시민사회가 북적북적 힘을 내고 서로를 돌보며 살아가는 것이 저항의 길이고 치유의 길이고 살림의 길이라는 믿음이 생겨요. 오늘 이 자리에 오면서 마음이 무거웠는데, 선생님의 상상력과 파상력 덕분에 조금 신이 나는 것 같아요. 고맙습니다.
조한혜정 : 삶의 취약성과 유한성을 받아들이고 승화시키는 공통의 인식과 감각을 키우는 자리가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난감한 시대에 난감함을 나눌 수 있어 즐거웠습니다. 오늘은 이 정도로 하고 다음 기회에 슬픔과 기쁨이 함께 있는 삶의 자리에서 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