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여행 일지를 쓰다
글을 안 써서 일까?
그것만은 아닌 줄 알면서 그리 생각해본다.
그래서 매일 조금씩 쓰기로 했다.
굽굽해지기 시작한 제주를 떠나 하와이로 온 날부터.
2023년 1월 11일
짐은 작은 트렁크에 들어갈만큼만.
동행은 곧 11살이 될 소년 두명과 오래된 친구 전박과 십년된 친구 반사.
책은 한권만.
조민아 선생의 근간 [일상과 신비]를 골랐다.
어둠이 짙어가는 도시 풍경 배경의 표지에
"잃어버린 환희를 만나다
흩어진 순간에 의미를 돌려주다."라고 써있는.
저자 소개 중에서:
"서로 다른 삶이 겹치는 경계들에 머물며
그곳에서 떠오르는 갈등, 긴장, 도발, 타협, 창조의 언어와 이미지들을
신학적 상상력으로 길어 오르는 글을 쓰고
경계를 교차로로 바꾸는 일을 한다.
혼자 혹은 더불어 걷는 이른 아침과 늦은 오후의 골목길들을 좋아하고
우연 혹은 필연으로 다가오는 크고 작은 생명들과의 만남 속에서
스스로와 세상을 기쁘고 아프게 배운다."
내가 이 여행에서, 아니 오래전부터 풀고 싶은 숙제다.
겪어내는 자들의 세계,
말 못할 상황을 말하는,
감정적, 영적 영역을 넘나드는.
고레에가 감독의 <환상의 빛>에서 다룬,
그간 예술가라는 족속이 독점했던,
그러나 이미 모두가 그 세계로 들어가버린 현재를 풀어낼 언어.
내겐 너무 어려운 숙제라
그런 순간을 만나면 적어두는 일이라도 매일 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