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를 추방하려는 사회- 4.16 재난 인문학 심포지움 (8년전)
"세월호 참사, 다들 잊고 싶어하겠지만…망각은 더 큰 슬픔 안겨줘“
'세월호 사건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과 재난인문학' 심포지엄 개최
조한혜정 교수 "애도를 추방한 문화에 대한 관찰과 성찰 시작돼"
(서울=뉴스1) 김수완 기자 | 2014-10-31 15:49 송고
"갑자기 거대한 국가적 드라마의 주인공이 돼 버린 유가족들은 제대로 애도의 시간도 거치지 못한 채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정치의 일선에 서야 했다. 애도를 추방한 문화, 공론의 장이 급격히 소멸되고 있는 삶에 대한 관찰과 성찰이 시작됐다" (조한혜정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
31일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문명연구사업단 주최로 서울대 박물관에서 열린 '4. 16(세월호 사건)에 대한 인문적 성찰과 재난인문학' 심포지엄에서 학계 전문가들은 세월호 사건을 기억하고 상처를 극복해 우리 사회가 나아갈 길을 모색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조한혜정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는 이날 발제를 통해 유가족들의 특별법 요구는 세월호 참사로 인해 사회 전체가 입은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애도와 회복의 과정이라고 주장했다.
조한 교수는 "근대 이전의 인류사회는 대형 사고가 생기면 신에게 항의했으며 종교는 신화와 비유를 통해 당사자들에게 비극을 납득시키고 의례를 통해 위로했다"며 "세속화된 근대 문명에서 그 역할은 국가와 시민사회에 할당됐다"고 전제했다.
이어 "세월호 유가족들은 아주 큰 상처를 입었다"며 "이 트라우마는 '진리'를 위해 잘 싸운다면 치유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유가족들의 특별법 요구는 한국에서 살아갈 자녀들의 친구들을 위해 벌이는 매우 공적인 활동"이라며 "제대로 이뤄진다면 해방적 애도와 치유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국가 권력은 유가족들의 요구를 극히 사적인 것으로 치부하고 있고 보수 미디어는 사고와 보상의 프레임으로 유가족을 '하찮은 존재'로 만들고 있다고 지적하며 "새로운 공공성을 회복해야 하는데 이것은 그간 정치적 현장에서 배제되거나 억압됐던 애도의 회복, 공감와 이해를 통해 이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한 교수는 "트라우마를 제대로 극복하는 것은 중요하다"며 "애도의 과정을 생략하지 않을 때 다중적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삶을 만들어나가는 능력이 키워진다"고 강조했다.
김석수 경북대 철학과 교수 역시 "한 사회에서 어떤 나쁜 일이 반복적으로 일어난다면 사회의 구성원들이 망각증에 빠져있기 때문일 것"이라며 '기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 교수는 "커다란 고통을 안겨준 사고가 있다면 대부분은 그 사고를 잊고 싶어 할 것"이라며 "하지만 망각은 더 큰 슬픔을 안겨준다"고 지적했다.
또 세월호 참사의 성격을 '사유하지 않음'에서 발생한 '악의 평범성'으로 규정하면서 "국가주의, 사유할 여유조차 주지 않는 시장주의 때문에 한국인들은 각자 자신의 사유가 현실에서 어떤 악을 낳는지에 대한 질문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자신의 사유에만 빠져 우울증에 시달리거나 타인의 입장을 무시하는 광인(狂人)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세월호 사건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성욱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유가족들의 수사권·기소권 요구 과정에서 발생 '법치주의' 논쟁을 언급하면서 "정치적으로 다퉈지고 있는 쟁점들에 관한 법치주의 원리 관점에서의 결론은 결국 우리 공동체가 지켜나가야 하는 공익의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의 과정을 거쳐 현명하고 합리적으로 내려져야 한다"고 말했다.
또 "세월호 사건은 우리나라에서 파국의 정치의 가장 핵심에 위치하게 됐다"며 "종래 다른 정치적 현안에 대해 그랬듯이 진영 논리에 따라 정치적으로 달리 해석하고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러는 사이 위험사회에서 실현된 위험으로서 세월호 사건에 대한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이해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재난사고의 반복을 막기 위한 실용적 개선 조치들은 이뤄지지 않았다"며 "민주주의와 재난안전관리시스템을 체계적으로 발전시키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밖에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압축성장에 따라붙는 '위험감수문화', 편을 갈라 치열한 싸움을 벌이는 동조성 편향, 이성적 사고나 판단보다 감성적 반응이나 표출에 보다 익숙해 꼭 필요한 상황에서조차 "왜"를 회피하는 것 등을 이번 사고를 통해 드러난 한국 사회의 자화상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학습 효과를 얻지 못하는 '특별한 위험사회'의 악순환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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