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마을·느린 시간 - 제국을 우회·무력화하는 정치
3-1. ‘반제국’이 아니라 탈제국적(post-imperial)
돌봄·마을·느린 시간은 제국에 맞서 싸우지 않습니다.
대체 제국을 상상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이것들은 **반제국(counter-imperial)**이 아니라, 더 정확히 말해 **탈제국적(post-imperial)**입니다.
반제국: 제국을 상정하고, 맞서고, 전복하려는 정치
탈제국: 제국의 질문 자체를 무력화하는 정치
이 차이가 결정적입니다.
3-2. 왜 제국은 돌봄·마을·느린 시간을 다루기 어려운가
안토니오 네그리–마이클 하트의 『제국』에서조차, 정치의 핵심은 여전히 생산·동원·다중의 힘입니다.
반면 돌봄·마을·느린 시간은 다음과 같은 속성을 가집니다.
(1) 측정 불가능성
생산성으로 환산되지 않음
성과 지표가 없음
성장 서사를 만들 수 없음
(2) 대표 불가능성
지도자가 없음
대변자가 필요 없음
“누구의 이름으로” 말하지 않음
(3) 시간 저항성
가속에 응답하지 않음
위기 동원에 반응하지 않음
“지금 당장”을 요구하지 않음
이 때문에 제국은 이것들을 흡수는 할 수 있어도, 지배는 하기 어렵습니다.
3-3. 돌봄: 생산의 정치가 아니라 유지의 정치
돌봄은 대안 경제가 아닙니다.
윤리 담론도 아닙니다.
정치적으로 보면, 돌봄은 **체제가 무너지지 않도록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만드는 기술’**입니다.
아이가 오늘도 살아 있음
노인이 오늘도 관계 안에 있음
공동체가 오늘도 해체되지 않음
이 “아무 일 없음”이야말로
제국의 시간—위기, 결단, 전환—과 정면으로 어긋납니다.
주디스 버틀러의 취약성 개념이 여기서 정치화됩니다.
취약성은 보호받기 위한 호소가 아니라,
서로를 파괴하지 않기 위한 조건 설정입니다.
3-4. 마을: 대안 국가가 아니라 대표 없는 공존
마을은 흔히 오해됩니다.
작은 국가
전근대적 공동체
낭만적 회귀
그러나 실제로 작동하는 마을의 정치성은 다릅니다.
합의보다 공존
방향보다 지속
규칙보다 관계 조정
마을은 정치적 주체를 만들지 않습니다.
대신 정치적 주체가 되지 않아도 되는 공간을 만듭니다.
이 점에서 마을은
제국의 핵심 장치—동원, 결속, 동일화—를 비활성화합니다.
3-5. 느린 시간: 효율에 대한 집단적 불복종
느린 시간은 게으름이 아닙니다.
힐링도 아닙니다.
정치적으로 보면, 느린 시간은 가속 명령에 대한 집단적 불응입니다.
빨리 결정하지 않음
즉각 반응하지 않음
결론을 유예함
이 유예가 중요한 이유는 하나입니다.
폭력은 언제나 ‘지금 당장’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느린 시간은
영웅적 결단을 무력화하고
위기 동원을 지연시키며
남성적 정치 시간(결단–책임–희생)을 해체합니다.
3-6. 여기서 남성성은 어떻게 되는가 (1·2번과의 접속)
이제 앞의 논의가 하나로 연결됩니다.
제국 이후 남성성은 중심을 잃었고
4B 이후 남성성은 자동 호출되지 않으며
돌봄·마을·느린 시간의 장에서는
남성성이든 여성성이든, 중심을 차지할 자리가 애초에 없습니다.
이 장에서 요구되는 것은:
설명 능력도
지도력도
구원 서사도 아니라
관계에 머무를 수 있는 인내
이 인내는 젠더화된 미덕이 아니라,
탈제국적 생존 기술입니다.
3-7. 그래서 이 모든 것은 무엇인가
정리하면,
돌봄은 정치 이전의 윤리가 아니라
→ 정치 이후의 기술이고
마을은 대안 제도가 아니라
→ 제도를 필요 없게 만드는 조건이며
느린 시간은 퇴행이 아니라
→ 폭력을 지연시키는 장치입니다.
그리고 이것들은 모두 공통의 특징을 가집니다.
승리하지 않는다.
대표하지 않는다.
전환을 선언하지 않는다.
다만, 끝까지 남아 있는다.
다음으로 밀 수 있는 지점 (선택)
이제 세 갈래가 자연스럽게 열립니다.
‘난감모임’의 이론화: 결론 없는 정치의 형식
할머니–청년–AI: 탈제국적 세대 정치의 실험
이 모든 것을 관통하는 한 개념:
*“승리 없는 정치 / 지속의 정치”*를 이름 붙이기
어느 지점부터 더 밀어볼지 말씀 주시면, 그 결로 계속 가겠습니다.
-----난감모임의 이론화로
그럼 난감모임의 이론화로 들어가겠습니다.
이 단계에서는 난감모임을 “흥미로운 실천”이 아니라, 제국·대표·결단 중심 정치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시대의 고유한 정치 형식으로 개념화해보겠습니다.
4. 난감모임의 이론화
― 결론 없는 정치, 대표 없는 공적 친밀성
4-1. 난감모임이란 무엇이 아닌가
먼저 제거해야 할 오해부터 분명히 하겠습니다.
난감모임은 다음이 아닙니다.
합의를 도출하는 토론
문제 해결을 위한 워크숍
공감 훈련이나 치유 프로그램
참여 민주주의의 한 형식
즉, 난감모임은
성과를 전제한 공론장도,
의견을 수렴하는 장치도 아닙니다.
4-2. 난감모임의 핵심 정의 (작동적 정의)
난감모임은 이렇게 정의할 수 있습니다.
난감모임이란,
서로 다른 취약성과 이해관계가
조정되거나 해결되지 않은 채로
일정 시간 ‘함께 머무는 것을 허용하는 정치적 장’이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세 가지입니다.
해결되지 않은 채
머무는 것
허용
이 세 요소가 기존 정치와 정면으로 어긋납니다.
4-3. 왜 ‘난감함’이 정치적인가
정치 이론에서 난감함은 보통 결함으로 간주됩니다.
합의 실패
소통 실패
리더십 부재
방향 상실
그러나 제국 이후, 4B 이후, 탈제국적 조건에서는
이 난감함이 오히려 정치의 정상 상태가 됩니다.
난감함의 정치적 의미
더 이상 하나의 “우리”를 가정할 수 없음
누구도 타인의 미래를 대표할 수 없음
책임을 한 주체에게 몰아줄 수 없음
이 조건에서 명쾌함은 폭력이 됩니다.
난감함은 실패가 아니라, 폭력을 지연시키는 상태입니다.
이 지점에서 한나 아렌트의 공적 영역 개념과도 접속할 수 있지만,
난감모임은 아렌트적 공론장보다 훨씬 덜 명료하고 덜 영웅적입니다.
4-4. 난감모임과 ‘결단의 정치’의 단절
제국적 정치, 남성적 정치, 혁명적 정치의 공통점은 하나입니다.
결단(decision)
결단은 항상 다음을 요구합니다.
지금
여기서
누군가가
책임을 지는 방식으로
난감모임은 이 요구를 의도적으로 유예합니다.
지금 말하지 않음
여기서 결정하지 않음
누군가를 대표자로 만들지 않음
책임을 영웅화하지 않음
이 유예가 바로 정치적 행위입니다.
4-5. 난감모임과 ‘공적 친밀성’
선생님이 오래 다뤄온 공적 친밀성은
난감모임에서 가장 정확히 구현됩니다.
난감모임의 친밀성은:
사적 고백이 아니고
감정 공유를 목표로 하지 않으며
이해를 약속하지 않습니다.
대신:
서로의 한계를 노출한 채
관계를 끊지 않기로 잠정 합의합니다.
이 점에서 난감모임은
주디스 버틀러의 취약성 정치와 깊이 공명합니다.
취약성은 연대의 감정이 아니라,
서로를 함부로 제거하지 않기 위한 조건이기 때문입니다.
4-6. 난감모임은 왜 제국이 가장 다루기 어려운가
제국(혹은 국가·플랫폼·제도)이 다루기 쉬운 것은 다음입니다.
대표가 있는 집단
요구가 명확한 운동
목표와 일정이 있는 프로젝트
난감모임은 이 모든 것을 거부합니다.
대표 없음
요구 없음
목표 없음
종료 시점 불명
그래서 난감모임은:
탄압하기도 어렵고
흡수하기도 어렵고
지원하기도 애매합니다.
이 애매함 자체가 정치적 보호막이 됩니다.
4-7. 난감모임과 남성성의 재배치 (1·2번과의 연결)
여기서 다시 남성성 문제가 돌아옵니다.
난감모임 안에서:
설명 잘하는 남성
결론 내리는 남성
방향 제시하는 남성
은 더 이상 유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필요한 것은:
말을 줄이는 능력
중심을 비워두는 태도
불편함을 견디는 체력
즉, 난감모임은
남성성이 중심에서 물러나는 것을 구조적으로 강제하는 장입니다.
비난 없이, 선언 없이, 그러나 분명하게.
4-8. 한 문장 이론화
이제 난감모임은 이렇게 정식화할 수 있습니다.
난감모임은
제국 이후, 젠더 질서 이후의 세계에서
‘아직 이름 붙일 수 없는 공동성’을
폭력 없이 유지하기 위한 정치 기술이다.
이것은:
운동이 아니고
제도가 아니며
이상도 아닙니다.
다만 사라지지 않기 위한 최소 조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