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클레어 키건, 『이처럼 사소한 것들- 묵상
광장에서 아이는 불이 켜진 구유 앞에 멈춰 쉬면서 넋나간 듯 쳐다보았다. 펄롱도 보았다. 요셉의 밝은 빛깔 옷, 무릎 꿇은 동정녀, 양 두 마리. 지난번에는 보이지 않았는데 그새 누군가가 동방박사와 아기 예수를 갖다 놓았다. 그런데 아이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당나귀였다. 아이는 손을 뻗어 당나귀를 쓰다듬고 귀에 쌓인 눈을 떨었다.
“귀여워요.” 아이가 말했다.
“이제 거의 다 왔어.” 펄롱이 기운을 돋웠다. “조금만 가면 집이야.”
두 사람은 계속 걸었고 펄롱이 알거나 모르는 사람들을 더 마주쳤다.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날을, 수십 년을, 평생을 단 한 번도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지 않고도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고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마주할 수 있나?
아이를 데리고 걸으면서 펄롱은 얼마나 몸이 가볍고 당당한 느낌이던지. 가슴속에 새롭고 새삼스럽고 원지 모를 기쁨이 솟았다. 가장 좋은 부분이 빛을 내며 밖으로 나오고 있는 것일 수도 있을까? 펄롱은 자신의 어떤 부분이, 그걸 뭐라고 부르든―거기 무슨 이름이 있나?―밖으로 마구 나오고 있다는 걸 알았다. 대가를 치르게 될테지만, 그래도 변변찮은 삶에서 펄롱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와 견줄 만한 행복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갓난 딸들을 처음 품에 안고 우렁차고 고집스러운 울음을 들었을 때조차도.
펄롱은 미시즈 윌슨을, 그분이 날마다 보여준 친절을, 어떻게 펄롱을 가르치고 격려했는지를, 말이나 행동으로 하거나 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을, 무얼 알았을지를 생각했다. 그것들이 한데 합해져서 하나의 삶을 이루었다. 미시즈 윌슨이 아니었다면 어머니는 결국 그곳에 가고 말았을 것이다. 더 옛날이었다면, 펄롱이 구하고 있는 이가 자기 어머니였을 수도 있었다. 이걸 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면. 펄롱이 어떻게 되었을지, 어떻게 살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최악의 상황은 이제 시작이라는 걸 펄롱은 알았다. 벌써 저문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는 고생길이 느껴졌다. 하지만 수 있는 최악의 일은 이미 지나갔다. 하지 않은 일,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은 일―평생 지고 살아야 했을 일은 지나갔다. 지금부터 마주하게 될 고통은 어떤 것이든 지금 옆에 있는 이 아이가 이미 겪은 것, 어쩌면 앞으로도 겪어야 할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자기 집으로 가는 길을 맨발인 아이를 데리고 구두 상자를 들고 걸어 올라가는 펄롱의 가슴속에서는 두려움이 다른 모든 감정을 압도했으나, 그럼에도 펄롱은 순진한 마음으로 자기들은 어떻게든 해나가리라 기대했고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다.
_클레어 키건, 『이처럼 사소한 것들』(Small Things Like These)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