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의 숨: 생태학자가 만난 땅과 사람들>
아주 흥미롭게 읽었다. 이 책에서 토양학자 유경수는 장마와 가뭄의 위험, 습지 식물의 생존 메커니즘, 자연의 판을 새로 짜며 진화한 농업, 잡초와 전투를 벌이는 농부의 주무기인 쟁기와 가축의 역사, 중세 북유럽의 농업혁명에 이르기까지 땅과 뭇 생명과 인간의 공생과 투쟁의 면면을 생생하게 그려내주고 있다. 그는 오늘날 지구를 절멸의 장소로 만든 것은 ‘인간의 몸’ 자체가 아니라 ‘인간의 활동’이라며, 지렁이까지도 침입자로 만든 ‘포식자 인간’의 활동을 과학자답게 세세히 관찰하고 기록한다. 흙을 질식시키는 인간의 탐욕스런 활동을 확인하는 것은 고통스럽지만 흙에 관한 그의 애정 어린 수다에 위로를 받는다. 결국 흙으로 돌아갈 존재, 흙을 파며 살 수밖에 없는 인간 존재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돋보인다. 도나 해러웨이는 말했다. “아기 대신 비인간 친척을 만들라!” 인류가 직면한 생태 위기 속에서 우리가 관계 맺고 공생할 범위를 급진적으로 확장하자는 제안을 담은 말이다. 땅도 사람도 전환의 시간에 들어섰다. 이 책은 그 전환의 시간, 성찰적 논의를 위한 중요한 씨앗이다. ‘흙의 숨결’을 느끼고 있는 저자가 부럽다. 흙과 친척이 되려는 모든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