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eld Trips Anywhere
CHO(HAN)Haejoang
Field Trips Anywhere
CHO(HAN)Haejoang

공생적 상상력을 키우기-작아 인터뷰 글

조한 2025.04.30 09:37 조회수 : 0

공생적 생존의 상상력을 키우는 국가그리고 마을     

조한혜정
 

조한혜정 – 문화인류학자  ‘동네 아이들에게 다정한 할머니가 되고 싶은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한다. 펴낸 책은 《자공공 : 우정과 환대의 마을살이》, 《선망국의 시간 : 당신은 지금 어떤 시간을 살아가고 있나요?》, 《다시 마을이다 : 위험 사회에서 살아남기》,《성찰적 근대성과 페미니즘》, 《학교를 찾는 아이, 아이를 찾는 사회》가 있고, 함께 펴낸 책은 《재난의 시대, 교육의 방향을 다시 묻다》, 《노오력의 배신 : 청년을 거부하는 국가 사회를 거부하는 청년》이 있다.      

# 머릿발문

망가진 행성에서 상호부조하며 살아내야죠. ‘15분 도시’에 대해 자주 이야기해요. 15분 거리에서 먹고 자고 농사도 짓고 병을 치료하며 문화나 교육, 의료와 복지, 여가를 자체 해결하는 마을을 말하는 건데요. 이러한 마을이 바로 희망의 자리라고 생각해요.       

---------------

선생님께서는 이 시기 어떻게 보내셨어요?  

한국은 일제 강점기와 분단, 내란을 거치며 내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위기 속에서 살아왔죠. 이제야 숨 좀 돌리고 케이-팝, 케이-컬쳐, 케이-민주주의 같은 것으로 자부심을 드러내놓기 시작했는데 비상 계엄령 사건으로 국민들 가슴이 또 한번 철렁 내려앉았죠. 다행히 위기의 고비는 일단 넘긴 것 같습니다. 그간 고난의 자리, 긴 흐름 속에서 축적해 온 역사적 경험이 쌓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흔들리거나 달라지지 않고 갈 수 있는 힘이길 바라고 있어요.  

이 시기를 지나면서 인간이 정말 징글징글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미국에서는 트럼프가 다시 등장하고, 한국에서는 말도 되지 않는 ‘내란’이 일어났어요. 암울한 세태에 아침에 눈을 떠도 우울함이 사라지지 않아 힘들었어요.  

넷플릭스가 한국 영화로 돈을 끌어모으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를 내내 봤어요. <히틀러와 나치>, <처칠과 전쟁>, 호아킨 피닉스가 주연한 <나폴레옹>, 2차 대전 당시 유럽으로 파병된 미국 흑인 여성 부대 <6688 중앙우편대> 같은 작품을 보면서 근대 문명을 주도한 인간들에 대해 많이 생각했죠. 1, 2차 세계대전은 사실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것이 부끄러운, 인간에 대한 절망을 안겨준 사건이죠. 유럽 자본주의가 일정한 단계에 이르면서 극단의 탐욕과 공격성이 인류를 멸망으로 이끌고 있었죠. 제국과 동일시하는 많은 남성들은 자부심에 가득 차서 스스로 전쟁에 나가 사람들을 죽였고요. 그 전쟁광들의 이름을 외우며 우리는 자랐죠. 그들을 흠모하거나 영웅이라 부르기도 했고요. 숨결 있는 생명체이자 더불어 사는 존재로서 감수성을 키우지 못한 사람들이 주도한 근대 문명의 끝은 어디일까? 이 전쟁광 남자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질문을 계속했어요. 근대사를 다시 들여다봤어요. 전쟁을 즐기는 자들이 주도한 문명을 어떻게 할 것인지, 침략하고 짓밟고 빼앗고 겁탈하는 죽임의 상황을 만듦으로 이어져온 문명과 조직화된 폭력의 시대는 누가 어떻게 끊어낼 수 있을지 고민했죠. 

그 역사의 뿌리는 꽤 깊죠. 계급 이전에 남성과 여성의 가치 충돌이 있었어요. 문명사를 보면 돌봄과 상생과 양육의 능력이 균형을 이룬 시대가 있었어요. 전쟁 중심의 문명으로 바뀐 것은 약 7,000년 전부터라고 보죠. 최근 문명학자 제레미 리프킨은 《플래닛 아쿠아》라는 책에서 수력 문명이 그 시작이라고 말하고 있어요. 농경이 시작되고 물적 축적이 가능해지면서 ‘문명개화’가 이뤄지는데 사람들이 문화적으로 성숙해지기보다 전쟁을 통해 부를 축적하는 방향으로 문명화가 진행되죠. 거대한 성전을 짓고 화려함을 과시하며 영생을 바라는 영웅들의 시대는 또한 전쟁 노예의 시대이기도 하죠. 성경 출애굽기에 나오는 극단의 비참한 삶은 그런 역사의 한 단계의 한 장면이고요. 성서학자 캐런 암스트롱은 철학자 칼 야스퍼스의 ‘축의 시대(軸-時代)’를 새로운 영성의 시대로 해석하면서 그 시대의 비참을 이야기해요. 

기원전 8세기부터 기원전 3세기까지 새로운 사상과 철학이 중국, 그리스, 인도, 페르시아에서 직접 문화교류 없이 발생했는데 그 사상의 발상지는 고대 왕조들의 과도한 축적과 전쟁으로 파탄이 난 지역이기도 하죠. 강력한 정복자에 반하는 강력한 유일신이 등장해 도탄에 빠진 민중을 구하려고 한 것이지요. 그 시대의 성현, 성자들은 한결같이 사랑과 자비와 자애를 이야기하고 불교적 보시와 기독교적 구제, 이슬람의 희사를 이야기합니다. 지금 우리가 복지와 상호부조, 그리고 기본 소득을 이야기하듯이 말입니다. 로마 제국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국교로 삼고 정교합치로 통치를 시작하면서 폭력적 문명의 방향을 바꾸지 못하고 말았지만 적어도 3,000년 전에는 문명의 축을 바꿔보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지난 4월 21일에 선종하신 프란치스코 교황은 생전에 우리는 지금 제 3차 대전을 치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지금의 상황을 긴 역사성 안에서 봐야 제대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종국에는 전쟁과 갈등과 반목으로 나아가는 도구적 문명을 화해와 소통과 상생으로 나아가는 소통과 돌봄의 문명으로 전환해가야 하지요.      

이 시기에 여성적 원리상생의 원리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뭘까요

그간 우리가 문명화라고 생각한 과정이 폭력적 과정이며 남성주도적 문명임을 인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물학적 여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간 여성들이 해온 돌봄의 세계와 관련된 상생의 세계관을 이야기하는 것이지요. 실제로 이제 남자들은 더이상 돈을 벌어오는 가장이 아닙니다. 인공지능(AI) 시대에 돈을 벌어오기 때문에 가졌던 특권은 사라졌지요. 예전에는 여성이 아이 낳고 기르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지만, 피임이 가능해지면서 여성도 남성도 ‘선택’이 가능해졌어요. 결혼하지 않는 선택도 하고, 출산하는 선택도 하고 아이를 낳지 않고 고양이나 강아지를 키우면서 가족을 이루기도 하죠.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를 응원하는 ‘팬덤’에 합류해 스스로 돌보고 관계 짓는 삶을 이어가기도 하죠. 

한국은 이런 변화를 직시하지 못하는 가운데 큰 갈등이 빚어지고 있지요. 산업 혁명 초기 남자들은 가장으로 돈을 벌어왔고 여성은 가정을 꾸리는 일을 맡았죠. 그 역할 분담이 산업사회에는 꽤 효율성 있는 분업이었고요. 어쩌면 남자들에게 가장 큰 권한이 주어진 시대였을 수 있어요. 그런데 지금은 맞벌이 부부의 시대가 되었고 실업의 시대가 됐습니다. 여전히 가장으로 권위를 주장하거나 실업의 시대 상태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분노에 싸이게 되고 적대적 존재가 되어버립니다. 다른 존재에 대해 적대하면서 뭉치게 되면 반이성 전체주의 파시즘으로 갈 가능성은 매우 높아집니다. 우리는 지금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싶어 하지만 혹 극단으로 대립하는 힘의 대결로 가고 있지 않은지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대립을 벗어나려는 의지도 없고 방법도 찾지 않는 상황은 아닌지. 상대를 오로지 ‘단호한 대처’를 해야 할 적대적 대상으로만 보고 있지 않은 지 살펴봐야 합니다.      

최근 드라마<폭삭 속았수다>를 50, 60대 남자들이 보면서 많이 운다고 해요부성애가 있지만 제대로 발현될 수 없는 사회를 지나온 시간 때문일까요?

저도 주변에서 그 드라마를 보고 엄청 울었다는 남자들을 많이 봤어요. 그 드라마는 격변기를 아내와 자녀에 대한 지극한 사랑으로 살아낸 남자 주인공을 아주 절절하게 그려내고 있지요. 그런 아버지가 간혹 계시기도 했지만 충분히 그렇지 못한 삶을 살아온 아버지들의 아쉬움의 표현이라고 생각해요. 전쟁 뒤로 현재 5060 남성들의 마음이 약해졌달까, 크게 변하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세상이 더 좋아지지 않을 것이고 자식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 부드러워지고 싶은 감정을 드러내는 것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사실 현실은 그렇지 않았고 그렇게 될 수 없는 시간을 살아왔잖아요. 이런 상황을 되짚고 이야기할 수 있는 드라마가 시의적절하게 나왔어요. 관찰해보면 40대 아래 젊은 세대는 제왕적, 가부장적 폭력의 판에 들어가지는 않으려 애쓰고 있어요. 문제는 아직 소수여서 부부 중심 가정에 숨으려는 경향으로 나타나는 것 같아요. 실제 그 거대한 폭력의 구도를 바꿔갈 생각은 아직 못하는 것이지요. 최근 또하나 인기를 끌고 있는 영국 영화 <소년의 시간>을 보면 온라인 알고리즘 시대에 폭력의 고리를 끊기 쉽지 않다는 걸 알게 되죠. 남성이 가장이자 ‘밥벌이하는 존재’가 아니라 상생하는 동료임을 알아가야 할 텐데 사회는 여전히 소년들에게 남자가 되라고 말하면서 공격성과 폭력성을 키워가게 하지요.     

희망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저는 ‘하자센터’나 ‘성미산 학교’ 같은 대안교육 운동을 오랫동안 해왔어요. 현재 교육 제도는 자기 자신을 만들어 갈 시간을 주지 않죠.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달리게 해요. 다른 한편에서는 알고리즘이 아이들의 주의를 산만하게 하고 있죠. 학교는 마을이 뒷받침돼야 하고, 마을이 학교를 품어야 지속가능해요. 난파선 같은 파국의 상황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노아의 방주 같은 마을, 우정과 환대의 시공간을 만드는 것이 대안이라고 봐요.

지금 제주 선흘 마을에서 살고 있는데 섬김의 마음을 가지려 노력하죠. 사람에게만 아니라 아침에 우는 새들과 숲, 바다와 고양이, 날마다 설레며 그 존재들과 인사해요. 그리고 점점 더 분주해지는 시대이지만 상부상조하는 관계망을 만들어가고 있어요. ‘15분 도시’에 대해서도 자주 이야기해요. 누구나 15분 거리에서 문화나 교육, 의료와 복지, 여가를 모두 누릴 수 있는 마을 주민이 되자는 건데요. 저마다 자기 삶을 돌아보고 익명이 아니라 이름을 가진 존재로 만나고 재미난 일을 도모하기도 하고 어려울 때는 도우면서 살고 싶은 마을을 만들어가는 것이지요. 이러한 마을이 바로 희망의 자리라고 생각해요. 

이곳에서 나는 할머니들 그림 그리는 일을 돕고 있어요. 4.3사건으로 학교에 다닌 적 없는 8090 할머니들이 아주 열심히 그림을 그리시는데 마을 그림 선생님이 할머니 창고를 갤러리로 만들어 줘서 미술관이 아주 많아지고 있어요. 미술프로젝트가 아니라 함께 살면서 관계를 맺는 새로운 방식의 ‘삶의 학교’인데, 할머니들이 최근 화제인 드라마 ‘폭삭 속았수다’ 홍보를 맡으면서 활기를 띄고 있어요. 드라마를 보고 마음에 닿는 장면을 그림으로 그리는 작업을 했어요. 서울에서 전시회도 열었고, 5월, 6월 제주에서 전시하기로 했어요. 

4월 22일이 ‘지구의 날이었잖아요. 우리 마을에서 ’지구의 날‘ 행사를 했어요. 제주 성산 바닷가에 있는 ‘별꼴학교’ 청소년들은 직접 지은 노래로 참여했어요. 지구를 위해 ‘별꼴 기후 협약’도 발표하고 그간에 지구를 위해 말만 했다며 ‘말만 했잖아’와 ‘지구에 놀러온 외계인’, ‘지구의 아픔을 다시 기억하자’는 자작곡을 발표했지요. 참가자들은 모두가 비인간 존재에게 편지를 썼어요. 편지 끝은 ‘우리는 하나입니다’라는 선언으로 마무리하면서 모두가 기도하는 마음이 되었죠. 마을에서 열리는 행사는 준비하는 사람과 참여하는 사람이 따로 있지 않고 자연스럽게 일이 이뤄져서 다들 부담 없이 그날을 기념하게 되죠. 마을의 요가 선생님과 ‘애니멀 플로우(animal flow)’를 하고 명상하면서 지구의 날에 함께 내 존재를 새롭게 보고 우리는 다시 찾아가는 겁니다. 우리는 더 이상 주체와 객체로 나눠지는 존재가 아니며, 관계에 집중하고 서로를 살리고 삶을 짓는 공동생성의 존재임을 알아차리는 시간이었지요.      

전환의 시대에 국민으로서 우선 만들어가야 할 변화는 무엇일까요?

국가 단위에서 생각해보면 예산 분배가 중요하죠. 거대한 건물을 짓고 비행장을 짓는 일은 그만하고 기본적 삶이 가능한 분배가 이뤄져야 하지요. 돈만 준다고 되는 것은 아니고요. 고립적 삶은 답이 없어요. 자치자활 능력을 키우는 교육제도도 정착되어야 하죠. 경쟁이 아니라 협동, 고립이 아니라 공존하는 존재로 키워져야 합니다. 저는 개별 학교만이 아니라 노인정에서도 풍성하고 아름다운 점심 식탁이 차려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을에 누구나 가서 한 끼는 풍성하게 먹을 수 있고 그곳에서 서로 얼굴도 익히는 것이지요. 고립은둔형 청소년들을 위해서는 따로 도시락을 사서 선반에 두는 방법이 있죠. 크지 않더라도 안전하게 잘 곳이 제공되어야 하죠. 저는 알고리즘이 시키는 대로 다수 청년 국민을 내버려 두는 국가는 국가라고 할 수 없다고 봅니다. 새 대통령은 돈 벌 일자리 자체가 부족한 시대에서 ‘저활성화된 상태’로 살아가는 청년들의 삶을 풀어낼 수 있기를 바라고 있어요.  일방적으로 돈을 지불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생성의 사회를 만들어갈 토대를 마련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하면 된다’고 밀어붙이기보다 ‘좀 다른 존재가 되기’가 필요함을 절감하는 대통령이 됐으면 합니다. 우리 스스로 부단히 ‘좀 다른 존재’가 되려고 노력해야 하겠지요. 인간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비인간 존재와 무기체, 로봇 같은 인공물도 감안한 테라폴리스(모든 존재들이 긴밀하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얽혀 있는 정치체)의 삶을 감안한 정책을 낼 수 있어야 하지요. 현재 테라폴리스에서 인간은 응답 능력을 거의 잃어버렸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스스로 응답 능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면서 공멸의 위기를 모면할 길을 찾아내야 한다고 봅니다. 국가 단위 정치가들의 독점적 권력을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지, 현재 남녀 갈등의 핵을 이루는 군징용제는 모병제로 바꾸고 남녀 모두가 수행하는 공생사회를 위한 ‘사회복무제’를 만드는 것도 새 대통령이 해야 할 핵심 과제일 것입니다. 

무엇보다 국가를 군사 작전하듯 운영해서는 안 된다는 것, 공생상생의 원리로 운영해야 한다는 것을 절감해야 할 것입니다. 여전히 국가가 지수와 지표 만들기를 좋아한다면 경쟁과 적대의 지수가 아니라 소통과 돌봄 상생의 지수를 재는 체제를 만들어 내야 할 테지요. 후기 근대, 탈근대 국가는 수많은 연결망으로 관계 맺는 이들이 함께 삶을 엮고 풀어가도록 지원해야 합니다. 호전적 남성주의를 벗어나 탈근대, 탈인간주의적 민주주의를 함께 숙고할 때입니다. 국민들이, 시민들이, 주민들이, 그리고 난민들이 서로에 대해 묻고 답하는 응답 능력을 키우며 공생의 삶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수천 년에 걸쳐 형성된 폭력적 세계의 틀에서 벗어나 국가의 회복력만이 아니라 지구의 회복력을 이야기하는 공생의 장이 곧 정치의 장임을 다시 한번 확인합니다. 절대주의와 위계주의 틀 안에서 하나의 중심을 고집하기보다 상황적 지식, 상대주의적이고 구체적인 지식을 통해 만들어가는 다중심적 세계관을 상상할 수 있는 시민들의 활약이 그래서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입니다.     

광장에 응원봉을 들고 나타난 여성들에 대해 이야기하시는 건가요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요

요즘은 ‘민주주의’ 말이 넘쳐나지만 공허한 느낌이 있죠. ‘민주주의’라는 말로 적을 만들어내기에 오히려 그 말을 쓰지 않게 되네요. 광장과 광장이 충돌하고 대결하는 상황이 끝없이 이어지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어떻게 적대감과 혐오로 가득한 에너지를 측은지심과 공생과 공존의 경험으로 바꿀 수 있을지, 계속 자기를 내줄 수 있는 관계로 갈 수 있는지 고민하고 있어요. 나는 1980년대 운동권에서 철저하게 여성들에 대한 폭력과 차별을 직시할 수 있었다면 지금 우리는 얼마나 괜찮은 사회를 살고 있을지 상상해보곤 합니다.  

내란 상황에서 응원봉을 들고 나온 여성들을 조명하고 갑자기 칭찬하는 말을 쏟아내고 있잖아요. 하지만 큰 틀에서 보면 정치판 남성들이 주도하는 흐름은 그대로죠. 여성은 여전히 끼워주는 존재이고 남자처럼 된 여자들이 정치판에 뛰어들지요. 소통하고 공감하는 과정은 생략되고 알아서 기는 일방통행식 정치가 판을 치죠.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면서 유권자 성향을 판단하고 분석하는 동안 사람은 사라지고 결국 표 계산만 남는 거죠. 지금 같이 복잡하고 심각한 난파선 같은 상황은 이런 계산적 사고로 풀 수 없어요.  

전쟁과 경쟁을 앞세운 남자들이 아니더라도 군사작전식 정치는 지속될 것 같은 예감이지만 여전히 나는 꿈은 꿉니다. 탄핵정국에 홀연히 나타난 여성들은 그럼에도 누군가를 위하고 누군가와 같이 살고 싶은 거예요. ‘키세스단’ 여성들이 추운 길바닥에서 밤샘하며 탄핵을 외쳤던 ‘누군가를 위하는 마음,’ 그 마음을 알아차렸으면 해요. 그 마음으로 타자에게 함부로 하지 않고, 섬기고 돌보는 정치를 해야 합니다. 단지 정치판에 여성이 몇 명이냐 셈하는 숫자 문제는 아닌 거예요. 이것을 주목하고 알아차려야 해요. 거기에 길이 있어요.  

지금 필요한 것은 ‘똑똑한 시민’이 아니라 마을을 이루고 일상을 함께 공유하며 살아가는 ‘주민’입니다. 지구 거주민, 마을을 사는, 마을이 되는 주민이 진정한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봅니다. 

<나의 해방일지>라는 드라마에서 ‘추앙한다’는 표현이 나오잖아요. 응원봉 든 여성들에게 왜 이 현장에 있는가를 질문하면, 내가 좋아하고 추앙하는 누구누구가 이런 끔찍한 내란의 국가에 살게 내버려 둘 수 없어서 나왔다고 말해요. 그런 마음이면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어요. 하지만 지금 정치 체제에서 그런 마음이 중심부에 있지 않아요. 여전히 전투적인 언어로 가득 차 있고, 차별과 혐오로 가득하죠. 왜 저러는지 비평하기 전에 왜 저렇게 됐는지 생각해야 해요. ‘추앙’이라는 단어에서 ‘그냥 내가 널 좋아하기로 했어!’, ‘어쨌든 네가 살기를 바라!’, ‘제발 죽지 않고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삶에 대한 절박한 감수성을 읽어요. 계속 관찰하고 삶의 원칙을 알아가려고 하는 사람들, 자기 시선과 언어를 가진 사람들, 서로 추앙하는 사람들이 만드는 마을에서 실제로 삶과 삶이 만나게 되는 겁니다. 한국 사회가 좇고 있는 가치와 욕망이 어디서 왔는지를 꿰뚫어 보면서 공생적 생존의 상상력을 키워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세상을 보는 태도를 바꾸면서 새로운 관계 맺기를 시작해야 합니다.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지 말고 더불어 사는 시간 자체를 늘리는 것부터 해도 좋아요. 나는 이 동네 주민이고 국민이고 지구의 주민이야 라면서 숫자를 셈하는 존재가 아닌 ‘무해한 존재’로 있을 수 있어야 해요.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는’ 능력과 용기가 필요하고요. 전쟁으로 시작된 문명의 끝자락에 이제 어떻게 새로운 생명 평화의 시대를 열어갈지 같이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

# 발문1

희망은 밖에서 누군가 던져주는 것이 아닙니다. ‘망가진 행성’을 스스로 품고 살아내며 고치며 만들어가는 과정입니다. ‘내가 살고 싶은 세상’을 누가 대신 만들어 줄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마을 단위에서 삶의 방식, 삶의 세포가 완전히 바뀌는 경험을 하는 것이 중요해요.       

# 발문2

세상을 보는 태도를 바꾸면서 새로운 관계 맺기를 시작해야 합니다. 나는 이 동네 주민이야, 지구의 주민일 뿐이야, 이런 생각으로 숫자를 셈하는 존재가 아닌 ‘무해한 존재’로 있을 수 있는 시공간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는’ 능력과 용기가 필요하다고 봐요.            

목록 제목 날짜
469 언세대 문과대 110주년에 2025.05.01
» 공생적 상상력을 키우기-작아 인터뷰 글 2025.04.30
467 < 마르셀 모스의 『선물론』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 2025.03.27
466 스마트폰 소송을 검토하다 2025.03.27
465 트럼프가 부정한 성별, 자연은 답을 알고 있다 2025.03.10
464 그들은 어떻게 세상의 중심이 되었는가? 2025.03.07
463 내편, 네편은 없다···‘거래’만 있을 뿐 2025.03.06
462 흑표범, 알 수 없는 것을 포용하게 해주세요 2025.03.02
461 _클레어 키건, 『이처럼 사소한 것들- 묵상 2025.03.02
460 책 사람과 북극 곰을 잇다- 지구의 날 기도문 2025.03.02
459 citizen, rebel, change agent & reformer 2025.02.15
458 하자 곁불 2025.02.04
457 yin MENT 인터뷰 질문 2025.02.04
456 지구와 사람 라투르 찬미 받으소서 2025.01.19
455 유물론에서 끌어낸 낯선 신학 2025.01.19
454 ‘죽은 물질 되살리는’ 신유물론 고명섭기자 2025.01.19
453 라투르 존재양식의 탐구 - 근대인의 인류학 2025.01.19
452 할망 미술관, 희망은 변방에서, 엄기호 2025.01.19
451 손희정- 그래서 시시했다/너무 고상한 죽음? room next door 2025.01.12
450 AI가 인간에게 보내는 편지 - 얼르는 버전 2025.01.12
449 AI가 인간에게 보내는 편지 2025.01.12
448 인간의 두려움 달래는 시 + 인간인척 하는 AI 2025.01.12
447 male frame female pictures 2025.01.05
446 감기 2024.12.30
445 걱정 드로잉과 재난 유토피아 file 2024.12.30
444 긴박했던 6시간, 내가 총구 앞에 2024.12.23
443 여가부 폐지에 맞서 싸우는 한국 여성들 2024.12.23
442 bbc 뉴스 상식적 사회면 좋겠다 2024.12.23
441 탄핵 투표 가장 먼저 국힘 김예지 2024.12.23
440 '탄핵안이 통과된 순간' 시민들의 반응은? 2024.12.23
439 BBC가 2024년 가장 눈길을 끈 12장의 이미지 2024.12.23
438 수력 문명, 그리고 플라넷 아쿠아 (리프킨) 2024.11.25
437 4. 3 영화제 2024.11.25
436 도덕적 우월감은 독약 (강준만) 2024.11.25
435 시 하나, 주문 하나 2024.11.25
434 돌봄이 이끄는 자리 추천의 글 2024.11.20
433 평창 예술마을 컨퍼런스 발표문 file 2024.11.16
432 오지랍의 정치학 2024.11.16
431 강원네트워크 2024.11.08
430 새로운 학교, 교사들의 즐거운 시작 file 2024.1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