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가부 폐지에 맞서 싸우는 한국 여성들
여가부 폐지에 맞서 싸우는 한국 여성들
- 진 맥켄지
- BBC 한국 특파원
유나씨는 국내 주요 은행에 입사한 첫날 생각지도 못한 업무 지시를 들었다. 팀원들을 위해 점심 식사를 준비하라고 하더니, 이후엔 남자 화장실에 비치된 수건을 집에 들고 가서 빨아 오라고 했다.
그리고 유나씨는 자신이 여성 신입 직원이라는 이유로 이 모든 업무 지시를 받았다고 말한다.
처음엔 정중하게 거절 의사를 밝혔다. 남자 직원들이 각자 수건을 집에 가져가서 빨면 되지 않냐는 유나씨의 질문에 상사는 귀를 의심하듯 "어떻게 남자들이 수건을 빨 것이라고 기대하냐"고 반문했다.
유나씨는 "상사는 (내 질문에) 매우 화나 했다. 그래서 내가 계속 이 일을 물고 늘어지면 괴롭힘은 더 심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냥 수건을 들고 가 세탁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의를 제기했다는 이유로 유나씨는 '찍히고' 말았다.
유나씨는 검은색 야구 모자에 품이 큰 청바지와 티셔츠 차림으로 모습을 꽁꽁 감춘 채 동네 먹거리 시장 뒤편 어두운 골목에서 경험을 들려줬다.
작은 동네이기도 했고, 해고당할 수 있는 일을 했기도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이 당한 일을 촬영한 뒤 다니던 은행이 수사받도록 정부 기관에 신고했다.
사실 유나씨를 궁지에 몰아넣은 건 계속해서 심해져만 가던 괴롭힘뿐만이 아니었다. 같은 20대 여성 동료들이 지지해주지 않는 것이 무척 힘들었다고 한다.
여성 동료들은 "어디 가나 다 똑같다. 괜한 소란 피우지 말라"고 말했다.
한국은 문화 및 기술 강국으로 번성하고 있는 국가일 수도 있으나,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중 하나로 빠르게 변화하는 와중에 여성들은 여전히 소외되고 있다.
한국에서 여성의 평균 임금은 남성의 3분의 1 수준으로, 이는 주요 경제강국 중 최악의 성별 임금 격차다.
또한 정치계와 기업 이사회도 남성이 지배한다. 상장 기업 중 여성 임원은 5.8%에 불과한 수준이다.
그리고 여성들은 여전히 집안일과 육아 부담 대부분을 도맡을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성희롱 문화 또한 만연하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디지털 성범죄 또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여성 화장실이나 탈의실에 숨겨진 소형 카메라가 여성들의 모습을 몰래 촬영한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를 고치겠다는 약속 대신 이번에 새로 대통령으로 당선된 윤석열 대통령은 구조적 성차별은 "과거의 일"이라고 언급했다.
윤 대통령은 불평등을 줄이려는 과정에서 자신들은 역차별의 희생자가 됐다는 젊은 남성 청년들의 지지를 얻었다.
취임하자마자 윤 대통령은 정부의 성별 할당제를 폐지하고 성별이 아닌 성과에 따라 고용하겠다는 약속을 내놨다.
그리고 실제로 윤 대통령의 19명 내각 인사 중 여성은 단 3명뿐이었다.
그리고 이제 윤 대통령은 여성과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등의 역할을 하는 여성가족부(여가부)가 구식이라고 주장하며 폐지를 시도하고 있다.
이에 800여 개 단체가 여가부 폐지는 여성의 삶에 피해를 줄 수 있다며, 폐지 반대를 위해 집결했다.
여론이 치열하게 나뉘었던 대선 이후 여성 권리 운동가 박지현(28)씨는 여가부 폐지에 맞서 싸우기 위해 진보 야당의 비상대책위원장이 돼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야당은 정치를 개혁하고, 젊은 여성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선 박씨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래서 박씨는 단 한 번도 정치에 뛰어들었던 적이 없었지만 손을 잡았다.
그러나 불과 6개월 후 서울 외곽의 어느 카페에서 다시 박씨를 만났을 때, 박씨는 더 이상 직함을 유지하고 있지 않았다.
게다가 자택 주소가 유출돼 이사해야만 했으며, 수많은 살해 협박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다. 특히 얼굴에 산을 붓거나 산을 먹이겠다는 협박이 잊히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정치권의 만연한 성차별 및 여성 혐오를 직접 목격했던 박씨는 인생에서 가장 힘든 6개월이었다고 인정했다.
박씨는 회의 참석자 중 자신이 유일한 여성이었으며, 자기 말에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았을 때의 절망감을 얘기했다.
"그들은 그냥 나를 무시했다. 나는 그저 공허하게 소리치는 것이었을 뿐"이었다는 박씨는 "내가 경제나 환경에 관해서 얘기하고 싶어 해도 그들은 '당신이 아는 거, 여성 이슈나 성범죄 그런 거에만 신경 써라'라고 했다. 나는 내가 여성들의 표를 모으기 위한 꼭두각시로 이 자리에 앉아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덧붙였다.
박씨는 원래 10대 청소년을 협박해 성 착취물 촬영 등을 강요하던 온라인 성범죄 집단을 폭로하며 학생 기자로 이름을 알렸다.
그리고 박씨의 조사에 힘입어 주범들은 현재 수감 중이다.
한국에선 온라인 성폭행과 괴롭힘이 점점 더 만연해지고 있다.
지난해 디지털 성범죄 신고 건수는 1만1568건으로, 전년 대비 82% 증가했는데, 숨겨진 카메라를 이용한 불법 촬영 범죄가 많았다.
한국 여성들은 화장실에 가기가 무척 두렵다고 호소한다. 비밀리에 촬영된 영상이 자신을 향한 협박 도구로 사용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 최악의 상황은 이러한 영상이 공개돼 여성들의 삶을 파괴할 때다. 어떤 여성은 그 두려움을 다른 나라 여성들이 밤늦게 귀가할 때마다 느끼는 두려움에 비교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내 성폭력 의혹에 대해 수사하자고 추진하자 박씨에게는 문제아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그리고 이어진 지방선거에서 야당의 성적표는 좋지 못했고, 결국 박씨는 사퇴했다.
한편 우리가 박씨를 인터뷰하는 동안 카페 여성 종업원이 "우리를 위해 싸워줘서 고맙다"며 무료로 커다란 케이크 조각을 가져다줬다.
박씨는 당황해하며 "전에는 이런 일이 없었다"고 웃었다.
박씨는 정치계에 있었던 시간은 짧았지만, 자신들을 대표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느끼는 젊은 여성들의 아이콘이 됐다.
2018년 한국에선 아시아 최초이자 가장 성공적인 #MeToo 운동이 일어났다. 그러나 그 여파로 반 페미니즘 물결도 전국적으로 퍼졌다.
극도로 경쟁적인 한국 사회에서 여성들이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우려하는 젊은 남성들은 최대 2년간의 사회 진출을 가로막는 병역 의무를 문제 삼았다.
이 남성들은 결국 페미니즘을 더러운 용어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제 몇몇 여성들은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부끄러워하거나 심지어 두려워하기도 한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이들의 집단적 외침에 대통령이 응답했다는 것이다.
이준석(37) 전 여당 대표는 "과거 여성들은 권리를 박탈당했지만, 많은 부분이 해결됐다"고 주장한다.
여가부 폐지에 찬성했던 이 전 대표는 이전 선거에서 젊은 남성 유권자들을 끌어들이며 여당을 승리로 이끌었다.
"성평등은 이제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우리는 페미니즘을 넘어 모든 소수자의 권리에 초점을 맞춘 새로운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한편 현재 정부 전체 예산의 0.2%만 차지하는 여가부이지만, 여성들은 자신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크게 바꿔놓았다고 말한다.
지난 20여 년간 여가부는 불법 촬영 범죄의 피해자들과 임신했다는 이유로 직장에서 해고된 여성 등을 지원했으며, 한부모 가정의 양육비 지원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
보호 쉼터에서 만난 안나씨는 여가부 폐지 소식을 들은 이후로 제대로 잠들지 못한다고 말했다. 여가부가 자신의 생명을 구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안나씨는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한 목소리로 지난날 자신을 보호해주리라 기대했던 모든 이들로부터 어떻게 배신당했는지 들려줬다.
6년 전 안나씨는 대학교수에게 성폭행당했다. 이를 알리는 안나씨의 전화를 아버지는 끊어버렸다. 안나씨가 가족들을 수치스럽게 했다는 이유였다.
#MeToo 운동 이후에야 안나씨는 도움을 구할 힘을 얻었다. 안나씨는 범죄 피해자 지원 센터에 갔지만, 이들은 돕기 전에 증거부터 원했다. 의사 또한 안나씨가 망상에 빠졌다면서 돕기 거부했다.
"가슴이 아팠다. 범죄 피해자 지원 센터에 일하는 의사가 어떻게 저를 이렇게 돕지 않을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는 안나씨는 "마치 출구 없는 어두운 방에 갇힌 기분이었다"고 회상했다.
몇 달 후 안나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했다.
그러자 여가부가 나섰다. 안나씨에게 보호 쉼터를 찾아주는 한편 고소를 도와줬고, 결국 가해 교수는 수감됐다.
그렇다고 해서 악몽이 멈추는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다시 살아날 수 있었다는 게 안나씨의 설명이다.
"피를 나눈 가족들보다 여가부에서 더 도움을 많이 받았다"는 안나씨는 옆에 앉아있던 상담사 남씨에게 손을 뻗었다.
"여가부 폐지는 위험한 생각입니다."
한편 한국 정부는 여가부가 현재 제공하는 서비스는 유지될 것이며, 단지 다른 부처로 흡수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지난 10월 윤 대통령 또한 이러한 방식이 "여성을 더 잘 보호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이유는 분명하지 않다.
물론 현재 국회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는 진보 야당에 의해 폐지 계획은 여전히 무산될 수도 있다. 야당은 여가부를 폐지하면 직장과 가정에서 아직 이뤄내지 못한 진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한다.
한편 한국 사회와 고용 시장은 성별 간 임금 격차를 더욱 공고히 하는 구조다. 여성들은 임신과 출산 후 다시 경쟁력 있는 직장으로 돌아오기 위해 고군분투해야만 한다. 그러다 종종 육아 부담과 겹쳐 결국 불안정하고 보수도 낮은 계약직 일을 하게 된다.
학교 행정 직원으로 일했던 신형정(50)씨가 바로 이러한 경우였다.
학교 측은 신씨가 토요일에도 출근하길 바랐지만, 주말엔 유치원이 문을 닫았고 신씨는 어린 딸을 맡길 곳이 없었다. 그런데 남편은 육아에 참여하려 하지 않았기에 결국 신씨는 직장을 그만뒀다.
신씨는 웃으면서 "남편은 전형적으로 가부장적인 남자다. 절대 돕지 않는다"고 말했다.
왜 웃는지 물었더니 "어이가 없어서. 그냥 말문이 막혀서"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렇게 직장을 그만둔 신씨는 이후 지난 20년간 정수기나 의류 스팀기와 같은 소형 가전제품을 관리하는 계약직으로 일했다.
그날 아침만 해도 벌써 아파트 3곳을 돌아다녔다는 신씨는 비싸 보이는 엘리베이터에 장비를 실으며 "끌고 다니기 어렵다"고 말했다.
"내일 아침 당장 해고될 수도 있죠.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입니다. 퇴직금도 없는 일이니까요. 하지만 적어도 딸아이를 학교에서 데려올 수 있습니다."
최근 정부 자료에 따르면 여성 근로자의 46%는 비정규직 계약직인 반면, 남성은 그 비율이 30%에 불과했다.
신씨가 속한 팀은 2명을 제외하곤 모두 여성들로, 모두 출산 후 이곳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올해 30대 여성 2명이 새로 입사했다. 20년 전 신씨의 상황과 거의 같은 사정이었다.
한편 이렇게 직장을 그만두고 싶지 않은 한국 여성들은 이제 아예 아이를 낳지 않는 길을 선택하고 있다.
한국의 합계 출산율(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자녀 수)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0.81명 수준까지 떨어졌다.
이에 따라 한국의 인구는 이번 세기말까지 절반으로 줄어들 수도 있다. 경제를 유지하고 군대를 소집할 만한 충분한 인원이 확보되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다.
이에 대해 지난 2017~2018년 여가부 장관을 지낸 정현백씨는 "한국은 성평등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출산율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면서 "#MeToo 운동으로 직장 내 성희롱과 차별 문화가 개선됐다. 그러나 이제는 성별 임금 격차와 여성의 기회 부족을 해결할 수 있는 구조적 개혁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문제를 정부가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했다.
지난 몇 달간 김현숙 현 여가부 장관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이후 어느 행사장에서 만난 김 장관에게 한국에 구조적 성차별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윤 대통령의 말에 동의하는지 물었다.
김 장관은 직접적인 대답을 피하면서 "정치계, 특히 지도부에선 더 많은 여성이 있어야 한다. 임금 격차, 그중에서도 특히 정규직과 계약직 근로자 간 임금 격차를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답했다.
물론 한국에서도 불평등이 개선되고 있다는 몇 가지 신호가 있다.
올해 초 신씨는 지난 10년간의 임금 동결을 끝내고 노조를 통해 임금 인상 협상에 성공했다. 해당 업계의 시간제 계약직 노동자들이 이런 투쟁에서 이긴 것은 처음이었다.
"사회가 서서히 변하고 있고, 내 딸의 미래는 더 나을 것"이라는 신씨는 "남편이 바뀔 것이란 기대는 포기했지만, 내 나라에 대해선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난달 유나씨는 정부 부처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조사 결과 해당 은행은 성희롱 및 성차별 관련 법을 어긴 것으로 드러나 벌금형을 받게 됐다는 소리였다.
그리고 유나씨는 다른 지점으로 옮겨갔다.
유나씨는 전화 인터뷰에서 다시 직장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니 아프다면서도 해당 은행을 신고해서 기쁘다고 말했다. 사건 이후 몇몇 여성 직원들이 비슷한 차별을 당했다며 손을 내밀었다.
"지난 10년간 불평등이 개선됐다고는 생각한다"는 유나씨는 "그러나 작은 동네인 이곳의 사정은 변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대통령은 현 상황을 깊게 들여다보지 않고 있다"며 최근 이룩한 성과가 수포가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여가부가 사라지면 우리가 세운 것들이 무너질 수 있습니다."
*신원 보호를 위해 유나씨는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추가 보도: 배원정, 이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