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딜런이 음악회 투어를 시작한 모양이다. 2025년 들어서, 이름도 outlaw festival, 50년 기념. 올해 수십번 할것이라고 한다. 노벨상 받고 침잠하던 그가 제대로 감사의 인사를 준비한 걸까? 어떤 scene으로 다시 등장할 지, 어떻게 남아 있는 시간을 쓸지를 두고 오랫동안 고심을 했을 것이다. 천재는 단명한다는 옛말이 무색해지는 세월이다. 그는 84세. 지금은 천재들도 오래 산다. 엄청난 돈을 벌고 상도 받고 돈이 지배하는 신자유주의 계급 사회의 상위 0ㅡ001 퍼센트, 꼭대기 계급으로 산다. "대중가수로는 사상 처음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밥 딜런이 평생 만든 노래의 판권 모두를 팔았습니다. 예술적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긴 어렵지만 최대 5천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검색해보니 채널 A 2020년 12월 8일 채널 A 뉴스에서 말한다. 딜런은 스티브 잡스의 우상이었다고. 자유로운 영혼을 추구하던 1960년대에서 80년대 청년들 모두의 우상일테지.
노장은 죽지 않고 있다. https://youtu.be/NdQbdU7H8kg 컴플리트 언노운. 가장 최근의 그에 대한 영화다. 개인적으로는 <I am not there>가 한결 좋다. 그는 원형은 흑인 소년이었으며 기타를 매고 집을 탈출한 흑인 소년으로 등장하는 영화. 사람은 각자의 기질과 운명과 스타일이 있고 그에 충실히 살다가면 괜찮은 삶을 산 것이라고 생각한다.
돈의 위력과 그와 연결된 주변의 지지와 지원 속에 그는 좀 더 잘 지내실 거다. 자기 관리를 충실히 하면서 삶을 유지해갈테지. 창조적 긴장 속에 어렵게 살다 죽어간 무수한 천재들, 반 고호와 베토벤, 그리고 제 3 세계에서는 더욱 많은 예술가들. 그들과는 아주 다른 시대를 최근의 예술가들은 살아가고 있다. 자신의 긴 인생의 단면들을 정리되어 나오고 나이들어가는 모습이 인스타에 경쾌한 음악과 함께 자주 나온다는 것을 그도 알고 있겠지. 아마도 콘서트 기획자들에게 둘러쌓여, 그들의 기획을 지루해하거나 기특해 하면서 자신이 만든 그 세계 안에서 나날을 보내고 새로운 기운을 받기도 하겠지. 8순을 넘기면 주변에서 살아주기를 바라면 만큼 살아가게 되는 것 아닐까 싶다. 조만간 80이 되는 나이라 이런 말도 할 수 있다. 자기 관리에는 폴 메카트니가 철저한 것 같고 유투브에 자주 등장하는 아이콘들, 가수 중 세계 10대 부자 음악가 등등을 보면 거의가 내 십대 시절, 그러니까 비틀즈가 나온 1960년대부터 청년 시절 즐겨 듣던 유럽과 미국 밴드의 리더 들이다. 창의적이고 저항적인 기백이 가득찬 카리스마 넘치는 백인 록 밴드들, 그리고 발라드 가수들, 엘톤 존까지, 기성세대를 향해 니들 때문에 우린 죽겠다고 아우성치던 이들은 이제 자신들이 상상하지 못할 부를 가지고 있다. 관심 경제가 이끄는 세계에서 점점 더 집중화되는 관심을 감당해내는 맷집을 가졌기에 이들은 오래 살아남을 것이다. 많은 돈과 선망을 받고 있는 이들은 관심 경제을 활성화 시키는 꽃이다. 꽃이 된 댓가로 상류 사회의 일원이 되었다. 플렛폼 사업자와 거대한 금융을 만지는 월가를 중심으로한 핵심 세력, 그리고 관심 경제를 풍성하게 이끌어가고 있는 월드 클라스 스타들, 클레스들은 특별하다. 이들은 더 이상 보통 인간은 아니다. 초반에는 그 막걍한 파워, 마나의 힘 때문에 마약을 하고 몹쓸 병에 걸려 죽어갔지만 이제 그 파워를 즐길 줄 알게 되었다. 아니 즐길 줄 아는 자만이 이 시스템에 간택되어 영화를 누리고 있다. 이에 속하지 않은 이들을 이미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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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중반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에서 그에게 영감을 받은 한대수. 딜런을 생각하게 하는 인물이다. '히피 상륙했다."라는 신문 1면의 표제와 기타를 매고 뉴욕에서 서울로 온 자유로운 청년 한대수는 내 6촌 이기도 하다. 그의 노래는 신선하고 신나고 아름다웠다. 주옥같은 노래들을 짓고 락 밴드의 붐을 일으키던 그도 힘들긴 하겠지만 잘 지내는 듯 하다. 최근 아름다운 아내 옥사나, 러시아와 몽고와 우크라이나 계 여성을 맞아 딸 양호를 낳고 그런대로 재미나게 살았는데, 양호와 뉴욕에 있는 세계 최고의 미술관을 다니며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던 그는 지금 양호 밴드를 봐주면서 지내고 있을까? 전화를 해보면 좋겠지만 아마도 안 한 것 같고, 그런 대로 잘 지낸다고 믿기로 한다. 러시아 아내인 옥사나를 작년에 잃은, 오해를 많이 받는 천재 가수 한대수. 대학 시절 한낮에 기타를 매고 집으로 와서 '고모요, 난 죽겠소'하면서 노래를 하나씩 불러대던 그. 명동의 작은 극장, 카페에서, 아니면 남한강 어딘가에서 노래하던 시간들, 그는 두 나라를 오가는 다이아스포라의 삶을 살고 있다. "쓰라린 자유의 길에 나는 지쳤다.'는 노래를 지금도 부르고 있을까.
그는 자신의 노래인 '바람과 나'를 좋아한 김민기의 친구다. 한국의 밥 딜런, 김민기, 둘이 살가운 친구가 되지 못한 것은 한대수는 자유를 김민기를 평등을 더 애착했기 때문이다. 김민기를 작년에 이 세상과 작별했다. 대수는 민기님이 '지나친 정치'감각으로 자기 노래를 부른다고 투덜대기도 했다. 순진한 자유주의자인 대수는 근대에 끌려가서 3년여는 복무하느라 죽을 고비를 넘겼고 민기님은 1970년대의 군부독재와 80년대의 대학생 투쟁에서 영적 지도자였다. 민기님은 그 짐을 끝까지 지고 가려고 했다. 학전의 기억. 민기 님과 딜런 님 사이의 거리는 한국과 미국 사이만큼 먼 것일까? 한 분은 세상을 떠났으나 세 호걸의 건투를 빌고 싶은 날이다. 그래서 딜런의 중얼거리는 노래를 듣는다. 그리고 한대수의 < 마지막 꿈>을 듣는다.
각자 자신의 시간을 되돌아보고 그것을 끌어안을 시간이다. 그렇게 살거나 사라진 이들을 기억하며 늙어가는 동시대인과 마주하는 이 시간을 애써 해석하려 들지 않는다. 덤덤하게 가보려 한다. 84세 딜런의 콘서트 댓글에 이런 글이 있다. You're definitely helping me to keep on keeping on, at 84. Beautiful sound on here! Love the dance beats that make me feel 34 and help with the old move-it-or-lose-it strategy.
3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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