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사학과를 졸업한 조한혜정입니다.
문과대학 110주년을 자축합니다.
60년대 말 학생일 때는 교수님들이 휴강을 너무 자주 해서 놀기만 했는데
80년 교수가 되어 캠퍼스에 돌아오니 학생들이 시위하느라
강의에 들어오지 않았던 기억이 납니다.
보고 싶은 얼굴이 많은데 아쉽게도 영상으로 인사를 하게 되었어요.
너무나 어려운 시대가 와 버렸네요.
우리 동문 봉준호 감독과 한강 작가가
이런 시대를 탁월하게 그려내 주어서 자랑스럽지만
낭만으로 읽던 윤동주 선배의 시를 이제 참회와 눈물로 읽습니다.
그는 스물두 살에 이 교정에서 이런 시를 썼지요.
<아우의 인상화>
붉은 이마에 싸늘한 달이 서리어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
발걸음을 멈추어
살그머니 앳된 손을 잡으며
「너는 자라 무엇이 되려니」
「사람이 되지」
아우의 설은 진정코 설은 對答이다.
슬며시 잡았든 손을 놓고
아우의 얼굴을 다시 들여다본다.
싸늘한 달이 붉은 이마에 젖어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
그 아우(들)은 지금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요?
혹독하고 절망적인 조건 속에서도
함께 살아가기를 선택한 선배의 기도는
아직 이 교정에 남아 있습니다.
고난에 머무르기를 선택한 시인,
같은 교정을 거닐던 문과대 후배답게
이 난세를
지극한 사랑으로.
이야기로, 시로, 기도로 살아내시기 바랍니다.
2025년 5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