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함께 있다는 것> 조문명 해제 중
전 세계 경제가 급격히 글로벌화되어가는 상황에서 제임스 퍼거슨은 우리가 사라가는 구체적 삶에서 물리적으로 연결된 취약성을 환기하고, 현존 presence, 즉 여기에 함께 있다는 단순한 사실 위에서 공생의 자리를 구축하고자 한다. 내가 그를 알지 못해도, 굳이 그를 돕고 싶지 않아도 이미 지척에 있는 그의 '몫 share'을 나누는 행위가 빈번히 발생한다면, 그가 '여기'에 존재 한다는 명확한 사실 자체를 정치적으로 중요한 분배의 근거로 삶을 순 없을까? 시민과 국민을 가르는 배타적 성원권 대신, 우리가 이주민이나 난민과 이미 물리적으로 인접해 살아간다는 경험적 사실을 나눔의 근거로 삼는 세계를 지금과는 어떻게 다른 미래를 열어젖힐까?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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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렵채집 사회에 관한 연구들은 '성원권'(우리 중의 하나)과 '현존'(여기 우리와 함께 있음)의 조건이 동시에 작동할 때 분배요구가 강력한 힘을 발휘했음을 보여주는데, 양자는 실제 아프리카 남부에서 서구 정치 이론이 가정하는 것보다 훨씬 유연하게 맞물려 작동하고 있다. 신생 독립국 시절 남아공에서 시민권이 없거나 비용을 대지 못하는 사람들은 물을 공급받지 못했는데, 이런 상황이 콜레라 감염을 초래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당국은 정책을 전면 수정해야 했다. 불법 체류자의 자녀에게도 전염병 예방주사를 접종하는 일은 윤리적 고려를 넘어 실용적인 사안이라는 게 퍼거슨의 요지다. (16-17)
퍼거슨은 이 에세이의 초안을 2017년 가을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와 한국문화인류학회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했을 때 발표한 바 있다. 당시는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대결후 인공지 능발전에 따른 일자리 소멸의 위기감이 급증한때였고, 연구자와 시민단체뿐 아니라 주류 정치인들도 기본소득에 적극적인 지지를 표명하던 시기였다. 그해 1월에 출간된 『분배정치의 시 대』가 분배에 관한 묵직한 학술서였음에도 기본소득필독서로 대중적인 인기를 누린 배경이기도하다.
그 후 7년이 흐른 지금 한국사회의 기류는 꽤변했다. 기본소득이 철학적·이념적 논변에서 구체적·실용적인 정책의제로 빠르게 이동하면서 ***이념상의 기본소득과 실험 중세상이 됐다. 나는 갈데까지 간 지금이야말로로 축소되었던 분배 논의에 제대로 불을 지필 때라고 생각한다. 사회를 짓누르는 긴장과 울화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어떻게 인간'으로서 기어이 삶을 살아내고 있는지, 하루하루의 삶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현존을 통한 실천으로 몫을 확보해내는지 자세히 살피고, 그 토대위에서 새롭게 분배정치의대안과 전략을 만들어가야 할 때다. 이 책이 분배에 관한 사유와 실천적 대응을 확장하는 촉매가 될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