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교회 창립 95주년 기념하는 글
상주 양촌 교회, 함께 기도하고 서로를 돌보는 할머니들의 본향
- 강봉우 할머니를 기억하며
사촌 김단용 장로가 할머니에 대한 글을 쓰라고 해서 노트북 앞에 앉았습니다. “내 기도 하는 그 시간” 찬송을 들으면서 할머니를 불러봅니다. 어릴 적에 우리 가족은 부산에서 살았는데 상주에서 (친)할머니가 오시면 구포에서 고아들을 돌보시던 (외)할머니도 오셔서 자매처럼 다정한 시간을 보내시곤 했습니다. 두 분은 함께 감사의 기도를 올리고 기쁨의 찬송을 하셨습니다. 겨울에는 동래 온천, 여름에는 해운대 바다에 가서 모래찜질도 하셨습니다. 한번은 미장원에 가서 똑같이 커트 파마머리를 하고 오셔서 친척들과 이웃을 놀라게 한 적도 있습니다. 할머니 두 분 다 호걸 여장부셨지요.
그런 할머니들을 보며 자라서인지 저는 여자라고 기죽은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할머니들처럼 어떻게 하면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할 수 있을지 궁리했습니다. 중학교 때 할머니는 밤새 책을 읽는 저를 매우 대견하게 여기서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소설책을 읽은 것인데 말입니다. 유학을 끝내고 대학교수가 되어 바쁘게 다니는 저에게 한번은 “훈장 똥은 개도 안 먹는다”라고 하셨지요. 할머니는 고사성어나 속담을 많이 알고 계셨습니다.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물었더니 훈장질은 너무 힘들어 똥이 쓰다는 말이라고 했습니다. 사회활동을 하면서 힘들 때면 종종 할머니의 똥 이야기를 떠올리곤 합니다. 지금까지 어려운 세상을 잘 버티며 살아온 것은 두 할머니의 기도 덕분이라는 것 믿어 의심치 않고 있습니다.
갓 서른에 전염병으로 사랑하는 남편을 잃은 할머니는 하늘이 무너지는 경험을 하셨을 것입니다. 그 시절에 관한 이야기는 저의 동생 조혜순 권사님이 이 책에서 소상하게 정리해 주고 있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절망 속에서 할머니는 하나님과 만나고 그 기적을 믿게 되십니다. 집터에 작은 교회를 지은 할머니는 네 자녀를 믿음의 자녀로 키우고 이웃과 믿음의 공동체를 이루어 살기 시작하셨습니다. 해방 전후 혼란과 625전쟁으로 홀로된 어머니들은 교회에 모여들면서 무시당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새 세상을 만나게 되신 거지요.
기댈 곳 없는 사람들은 교회를 들락거리면서 친형제자매 못지않게 서로 돕고 사랑하는 관계를 맺게 되고 새 세상을 만드는 경험을 하시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수천 명을 먹이셨듯 서로를 먹이고 돌보면서 날마다 기적을 경험하셨던 것이지요. 교회를 나감으로 더 이상 악몽에 시달리지 않고 하루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고 조상신에게 따로 제사를 지내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일요일 예배를 위해 말끔하게 단장한 빛나는 얼굴로 서로를 마주하면서 교인들은 기쁨의 찬송을 부르셨을 것입니다. 자신보다 더 힘든 상황에 있는 이들을 위해 캄캄한 새벽에 기도를 올리는 할머니의 기도를 저는 지금도 들을 수 있는 듯합니다. 서로 의지하고 도우며 사는 우정과 환대의 마을을 만들고 경험하며 충만한 삶을 살아내신 것이지요. 그런 삶을 요즘 학자들은 ‘재난 유토피아’라고 부릅니다. 재난 유토피아를 만들어 사시면서 할머니와 교인들은 살기 좋은 동네를 만들고 나라도 부흥시켰습니다.
95년이란 세월이 지나고 한국은 부유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빈곤에서 벗어났지만 지금 우리 마음은 가난하기 짝이 없습니다. 무리한 경제 개발의 후유증을 심하게 앓고 있는 것이지요. 사람들 간의 존중과 우애는 크게 줄었고 혼자 살다가 고독사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우정과 협동이 아니라 경쟁과 적대가 사회를 움직이는 힘이 되어버렸습니다. 기후 위기로 지구 위 생명체 절반이 멸종하였고 인간의 생존마저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기후 위기는 극단적 인간의 탐욕이 초래한 상황입니다. 신학자들은 지금을 2천 년 전 예수님이 오셨던 때와 매우 비슷한 재앙의 시간으로 보고 있습니다. 전세계적으로 크고 작은 전쟁은 계속 일어나고 있고 정치가들은 부패했으며 교회에는 교인이 없거나 노년 분들만 남았습니다.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교회는 더욱 힘들어졌다고 들었습니다. 앞으로도 전염병은 계속 돌 것인데 그 우려로 교회 활동이 많이 위축되었다는 소식에 마음이 아픕니다. 이럴 때일수록 새벽 기도의 시간이 소중하고 묵상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저는 양촌교회에서 95년 전을 되돌아보는 이런 시간을 마련한 것을 참으로 귀하게 생각합니다. 교회가 처음 만들어졌을 당시의 절망, 그 절망에 굴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의 자녀가 되어 서로 돕고 살아간 선조의 이야기들이 우리에게 용기와 가르침을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삶의 취약함과 유한함을 받아들이며 겸손하게 하나님께 엎드림으로 얻는 기쁨과 용기를 양촌교회 새벽기도에 나오시는 신도들은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실 겁니다. 견디기 힘든 애통의 시간을 기쁨의 시간으로 바꾸어낸 기적의 힘은 95년 전부터 이 교회의 터에 생생한 성령의 힘으로 남아 우리는 지켜주고 있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함께 기도하고 서로를 돌보는 할머니들의 본향인 양촌교회에 하나님의 큰 축복 함께 하시기를 늘 기도하겠습니다. 바쁜 가운데서도 95주년을 맞아 하나님 보시기에 기쁜 교회가 되려고 최선을 다하시는 양촌교회 목사님과 신도들의 노력에 존경과 사랑을 보내며
2024년 9월 10일 조한혜정 (강봉우 권사 손녀)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