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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eism '플랜 75' 여고 카톡에 오른 글

조한 2022.08.04 02:13 조회수 : 35

이번 선거에서 보수당을 열렬하게 지지하던 동창 카톡에 

흥미로운 글이 올라왔다.

정치의 주체로 투표에서 열을 올리던 친구들이 마침 

 

이 글을 어떻게 읽어내고 있을 지도 궁금하다. 

 

노인 혐오가 생긴 지 오래인 일본.

청년들이 노인들 똥이나 닦아야 하냐는 소설이 생각난다.

(요즘은 나이가 들어서 소설가 이름도 소설 제목도 생각이 안 난다.  구태여 찾으면

온라인 검색의 시대라 가능하지만 흐름이 깨지니까 생략한다.)

그곳에서 이제 영화들도 쏟아져나오는 모양이다.

가족주의가 아직 강하고 유교 전통도 조금 남아 있는 한국에서는

생각을 하더라도 발설은 못하는 단계가 아닐까 싶다.

 

이 주제는 지금 시점에 공론화 해야 할 주제임은 분명하다. 

전통사회에서는 환갑을 지나면 다 산 것이고 덤으로 사는 것,

또는 신선이라고 보았을 것이다.

내 절친 고정희 시인은 43세에 등산하다 급류에 휩쓸려 세상을 떴고

나도 40대 말에 자궁내막증이 걸려서 자궁과 난소를 드러냈다.

마취에서 깨어나면서 그 때 나는 더 이상 정상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후유증을 앓으며 꾸역꾸역 살아야 할 지 모른다는 불안감.

자연의 법칙을 거슬러 살게 되었다는 생각. 

 

어쨌든 그 때 수술을 안 하고 서양 의술이 없었다면 죽었을 수도 있고 

한의사를 잘 만나서 한약 먹다가 하혈도 사라지고 자궁의 혹이 없어졌을 수도 있고

난소의 곪음도 치유되었을 수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수술을 하고 스탠포드로 안식년을 왔었는데 

날마다 아름다운 풀들이 가득한 뒷산을 오르면서 한없이 우울하다는 느낌이 들었던 기억이 새롭다.

지금 노인들은 대부분이 이런 저런 수술을 하고

여러가지 영양제를 챙겨먹고 체략단련 등으로 살아남았을 것이고

옛날이라면  환갑 나이일 75세을 맞은 인생은

여생을 어떻게 살 지 정말 진지하게 숙고 할 때가 되었다. 

 

최근에 지인 중에 오빠가 열심히 일하다가 암에 걸린 것을 늦게 알았는데

수술을 하지 않고 그냥 좀 쉬고 조용히 죽겠다며 경치 좋은 시골로 갔다며 고민을 하고 있었다.

놀라서 누가 곁에 있냐고 물으니까 반찬만 자주 갖다주는데 

게임을 워낙 좋아해서 혼자서 잘 지낸다고 했다.

이 말을 친구 발랄 천사에게 하니까 그는 10년 안에 가상의 세계속에서

황홀한 게임을 하면서 고민이나 고통없이 살아가는/죽어가는 이들이 많아질 거라고 했다. 

이미 그런 세상이 도래했다고 한다.

그런 사실을 알면서 우울하지 않은 친구 발랄 천사가 신통하다.

나는 청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며칠을 밥을 잘 못 먹었는데....

 

75세 이후라고 딱히 나이를 정하지는 힘들지만

환갑이 넘으면 각자가 할만큼 했고 살만큼 살았을테니까   

후배들을 믿고 투표는 그만하고 후대를 축복하고

곡간의 열쇠를 이양하면서 사라질 준비를 차분히 하는 것이 인간 생명체의 도리/순리일 것이다. 

이것이 산업화 이전, 대부분의 인류 사회에서 취해온 방식일 것이다. 

 

베르베르 베르나르가 단편집 [나무]에서 고려장 비슷한 것을 다룬 글이 있다.

일정한 나이의 노인들이 더 이상 집에 혼자 살지 않게 잡아다가 국가에서 보호하는 제도가 생겼는데

노인들이 그것을 피해 도망다니는 재미난 이야기였다. 

이런 노인 문제는 아래 글에서는 마치 일본 문화/문명 특유의 현상인 듯 말하고 있지만  보편적인 주제다.

고려장은 어느 지역에 국한 된 것이 아니라 많은 사회에서 무수하게 나타났던 적응기제 중 하나이다.

노인 거취문제는 늘 심각했고 농경사회가 그런대로 가장 잘 해결했던 시대에 속할 것이다.

정주하는 삶이다 보니 할아버지 할머니도 꼬물거리며 할 일이 있었고 

할아버지는 조만간 세상을 떠날 제관으로서 의례를 준비하고 기도하는 연습을 하면서 나름의 위엄을 가질 수 있었고

(이것도 신분의 문제이지만 그 영향권에 있었다.) 

할머니는 생활의 지혜를 가진 자로서, 그리고 조왕신과 가까운 존재로서

뒷뜰에 정하수를 떠놓고 달빛에 궂은 일을 없게하고 복을 빌 수 있는 존재로 존경을 받아왔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자기 세대 밖에 모르는, 실은 자기 밖에 모르는, 나이 값을 하지 못하는 세상이다.

그런데 노인 수는 점점 늘어나고 세대별로 가장 많고

아이들은 태어나지 않는데 노인만 늘어날 전망이다.

지금과 같은 정치 체제라면 투표권을 통해 노인 독재의 시대가 될 것임이 자명해진다.

실제로 세속 정치에서 물러나기는 사생결단의 태도로 대통령 선거에 참여하고

투표를 독려하는 동창들 카톡창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삶에 대한 저 대단한 애착과 열정은 어디서 오는 것일지 알고 싶어진다. 

 

그들은 돈이 있고 집이 있지만 아랫세대 많은 이들은 돈도 없고 집도 없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종종 노인들 앞으로 투표 그만하자거나

태어날 아이까지 다 투표권을 주어야 한다거나 

투표 종량제를 하자는 식으로 이 문제를 건드려왔지만 

막상 보면 실제로는 문제가 꽤 복잡하다. 

 

노인들이 투표를 그만 하는 단계로 가는 과정에서

일단 지금의 대의제/투표제에 의존하는 선거제도 자체가 변해야 한다.

너무 많은 권력을 대통령에게 이전하는 그런 정치체제를 바꾸면서 가야 한다는 것.

 

나이/세대와 성에 따른 차별이 인간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차별인데

그간 에이지즘은 모두가 늙어가는 존재라는 점에서 크게 문제되지 않았다.

억울하면 나이를 먹으면 자기도 그 자리에 서서 권력을 부릴 수 있었기에 나이 차별 운동을 그렇게 심하게 일었던 적이 없다.

자기 아버지에게는 아니더라도 아버지로서 자기 아들에게 권력을 행사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생명이 연장되고 노인이 죽지 않는 반면

아이는 태어나지 않는다면

그래서 극단적 불균형 인구비례 현상,

그리고 재산 소유에 따른 불평등은

인류사상 유례가 없는 불평등 현상을 낳고 있다.

 

그래서 크고 작은 많은 변화가 필요한데 일단 선거의 경우,

인구비례로 대표성을 주는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 

그러니까 2020년 생이 100명이고 1950년 생이 400명이라면

이들의 선택이 똑 같은 비중으로 반영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100명은 400명의 비중이 있는 발언권을 가지게 된다는 점을 모두가 인정하고 합의해야 하는 것.

그래서 투표 결과가 달리 계산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를 제도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어린 나이부터 정치교육이 제대로 되어야 할 것이고 

한명의 아이가 일당 백 하는 훌륭한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

 

에이지즘으로 인한 노인주도/지배현상이 이대로 지속되고 

사유재산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 사회는 미래가 없다.

한편에서는 투표가 아니라 마을에서 서로 소통하고 도우면서 사는 자치적 삶이 이루어지고

세대와 남녀가 서로에게 잘 보이려 노력하고 상부상조하면서 살아가는 삶의 양식이 뿌리내려야 한다.

지금처럼 모두가 고립되어 있고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고 있다면 어떤 제도 개선도 불가능하고

개선이 되어도 효과가 나지 않을 것이다.

 

사실상 국가는 점점 아무 일도 못하는 쇠우리 관료체제로 굴러가고 있다.

지금처럼 글로벌 차원의 문제가 속출해서 글로벌 정부가 필요한 시점에

에이지즘 문제를 진지하고 들고 논의하는 공론장이 생겨야 하고

이는 글로벌 차원의 기본소득 논의,

그리고 날씨에 따른 인구의 계절별 이동 이런 논의도 시작되어야 한다.

 

어쨌든 나는 노인들이 저 세상에 점점 가까이 가는 존재로서

일상의 수양 속에서 세상에 평화를 불러오는 기도를 하는 존재 

다음 세대를 축복하는 영적 존재로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상상한다.

 

스스로 늙은 것을 인정하지 않고

비아그라를 찾아먹고 욕망의 삶을 살 것이 아니라

생노병사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다음 세대를 위해 뭔가를 하고 떠나야 하는 지를 함께 궁리하면 좋겠다. 

조선시대 유교에서는 그 점을 강조했고 

그래서 죽어도 죽는 것이 아니라 조상 보기에 부끄럽지 않고

자손을 축복하는 존재로 세상을 떠나는 준비를 하고 떠났다.

  

에이지즘을 극복하는 사회운동이 노인 당사자들 사이에서 나올 때가 되었다.

실은 이미 좀 늦는 감이 있지만 일단 이 방향에서 모임을 가져볼까 한다. 

최근 고독사가 불행한 것이 아니라는 책을 쓴 우에노 치즈꼬와 이런 이야기를 나눠볼까....

성평등과 세대 평등 문제가 인류가 풀어야 할 가장 오래되고 가장 나중까지 남은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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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년 여고 졸업생을 위한  카톡방에 오른 글 

★플랜75

 

최근 일본에서 개봉한 영화 '플랜(plan)75'는 하야카와 치에(早川千絵·45)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지난달 열린 칸 영화제에서 신인상에 해당하는 '카메라 도르 특별 언급상'을 수상했습니다.  

 

"일본의 미래를 위해 노인들은 사라져야 한다. 

일본은 원래 나라를 위해 죽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나라 아닌가."

 

근미래의 일본, 이런 끔찍한 주장을 하며 노인들을 살해하는 사건이 연이어 일어납니다. 

 

고령화가 불러온 사회 혼란 속에서 75세 이상의 국민이라면 누구나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이 국회를 통과합니다. 

죽음을 국가에 '신청'하면 국가가 이를 '시행'해 주는 '플랜(PLAN)75'라는 이름의 제도입니다.

처음엔 반대의 목소리도 높았지만, 일본 사회는 차츰 이를 받아들입니다.  

 

75세 이상을 '후기 고령자'라고 부르는데, 감독은 이 단어가 주는 불편한 느낌에 이 영화를 기획했다고 합니다.  

 

"사람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존재인데 '네 인생은 곧 끝난다'는 식으로 '후기'란 말을 붙이는 게 기분이 나빴어요. 

나라가 나이로 인간을 구분하는 것에도 위화감을 느꼈습니다."

 

영화에는 정확한 연도가 드러나지 않지만, 일본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3년 후인 2025년을 떠올리게 됩니다. 

2025년에는 일본 국민 5명 중 1명이 '후기고령자'가 될 것이란 예측입니다. 

의료비·사회보장비 부담이 폭증하고 노동력 부족으로 경제는 점점 악화, 

노인으로 가득한 일본은 활기와 매력을 잃은 나라가 될 것이란 암울한 전망이 깔려있습니다.

 

영화 속 '플랜75'는 '2025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 도입됩니다. 

담당 공무원들이 공원에 나가 노인들에게 죽음을 '권유'하고, "원하는 때에 죽을 수 있어 너무 만족스럽다"는 광고가 TV에서 흘러나옵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들어주는 콜센터. 이 제도를 선택한 이들에게 나라가 위로금으로 주는 10만엔을 받아 마지막 온천 여행을 떠나는 여행 상품도 인기를 끌죠.

 

영화 후반에는 이런 뉴스 멘트가 나옵니다. 

"정부는 '플랜75'가 호조를 보임에 따라 '플랜65'도 검토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회를 방치하면 다음 순번은 '당신'이 될 것이란 경고, 그리고 관객들에게 어떤 선택을 하겠느냐 묻습니다.

"당신은, 살겠습니까(あなたは生きますか)?"

 

-이영희 중앙일보기자

 

#연금개혁 

 

요즘 일본에선 영화 ‘플랜 75’가 화제라고 한다. 

올해 칸영화제 수상작인데 설정이 섬뜩하다. 

75세가 되면 건강한 사람도 죽음을 선택할 수 있고 정부가 그 비용을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말이 좋아 선택이지 담당 공무원은 노인들에게 죽음을 권장하고 ‘원하는 때에 죽을 수 있어 좋다’는 ‘공익 광고’도 한다. 

제도화된 죽음으로 노인 부양 부담을 일거에 해소하려는 불온한 정책인 것이다. 

 

10년 전에 나온 일본 소설 ‘70세 사망법안, 가결’은 더 극단적이다. 

70세 사망법이 통과돼 2년의 유예기간이 끝나는 2022년부터는 누구나 70세가 되는 생일로부터 30일 이내에 죽어야 한다. 

연금제도 붕괴를 막기 위한 특단의 조치에 소설 속 인물들은 “이런 입법은 국가적 수치다” “노후 걱정 안 해도 되니 좋다”는 엇갈린 반응을 보인다. 

연금을 포기하면 예외를 인정해준다는 소문에 포기각서를 들고 구청으로 달려가는 사람들도 나온다.

 

늙은 부모를 산에 내다 버리는 ‘우바스테야마’ 설화의 나라, 

10명 중 3명이 65세 이상으로 세계에서 가장 먼저 초고령 사회에 도달한 일본에서나 나올 법한 상상력일까?

 

연금개혁 모범국인 일본은 올해 4월엔 연금 수령 개시 나이를 현행 60∼70세에서 60∼75세로 늘려 잡은 ‘75세 플랜’을 도입했다. 

공교롭게도 노인 안락사법을 다룬 영화 제목과 같다. 

75세부터 연금을 받을 경우 86세까지 살아야 손익분기점을 찍는다고 한다.

 

한국은 국민연금을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으로 방치하고 있다.

2055년이면 기금도 거덜 나니 그때부터는 일하는 세대가 월급의 최소 30%를 보험료로 떼어 줘야 한다. 과연 그렇게 할까?

 

국민연금공단이 지난달 ‘경축 국민연금 수급자 600만 명 돌파!!’ 현수막을 내걸자 

“이게 축하할 일이냐?” “완전 폰지 사기”라며 들끓은 게 젊은 민심이다. 

‘미래세대의 반란’ ‘연금 지급을 끊는 연금 고려장’이 경고에서 끝날 분위기가 아니다.

 

윗세대보다 더 배우고도 못 버는 젊은 세대, 태어나지도 않은 미래세대에 폭탄을 떠넘기기보다 내 몫의 손해를 기꺼이 감수하는 성숙한 공동체 의식만이 ‘그만큼 살았으면 그만 좀…’이라는 야만의 상상력을 이길 수 있다.

 

-이진영 동아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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