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회 인권 축제 축사를 쓰다 말았다.
연세대 2024년 3월 21일 연세대 제4회 인권 축제
<오늘부터 우리는>
67년부터 이 캠퍼스와 인연을 맺어온 조한혜정입니다. 79년 유학 생활에서 돌아온 후 30여 년을 이 캠퍼스에서 보내다가 은퇴하고 지금은 숲과 바다가 가까운 제주의 한 마을에서 지속가능한 지구살이를 위한 공부를 하며 우정과 환대의 마을살이를 하고 있어요.
얼마 전 인스타를 통해 한·중·일 비교하는 버스 안 풍경에 대한 영상을 보았어요. 일본사람은 자기가 아는 친구가 뒷자리에 앉은 것을 보고는 그의 곁으로 가서 앉더니 둘이서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눈답니다. 중국인은 뒤에 앉아 있는 친구를 보자마자 큰 소리로 소리치며 떠드는 데 한국 사람은 그 친구를 모른 척한다는 것이었어요. 세계 모든 곳에 경쟁에 찌들어 피곤하고 적대적인 사회가 되어가고 있지만 한국이 유독 더 그렇다는 의미일까요? 어쨌든 오늘 이런 인권 축제, 환대의 자리에 오니 감회가 무량합니다. 그것도 4번째라니요! 기획하며 수고한 이들에게 축하와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네요. 이 자리에서 인권에 대해 고민하는 후배들을 만나게 되어 반갑고, 덤으로 인류학자로서 대학 축제를 관찰하며 대학 민심을 파악할 기회를 얻게 되어 좋습니다. 앞으로의 시간을 즐겨보아요!
2000년대 중반 연세대와 고대 총장님이 만나 ‘명품인재’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을 때부터 자의식은 과잉인데 자존감은 바닥을 치고 자체 실험과 변화를 추구하는 시공간은 사라져갔죠. 자체적으로 벌이는 축제도 사라져갔고 대학의 공기는 적대와 냉소, 그리고 피로의 기운으로 채워지고 있었어요. 은퇴할 즈음이었죠. 학생이 찾아와 무임승차 하는 친구 때문에 잠이 안 온다며 문화기획 수업에서 팀 프로젝트가 중요한지는 알지만 ‘팀플레이’을 하고 싶지 않다고 강력하게 건의하더군요. 무임승차 하는 팀원과 어떤 관계를 맺는지의 경험 자체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말하려다 포기했죠. 설명해서 될 일이 아닐 듯해서 그렇게 하겠다고 말하고 좀 달리 수업을 기획했었어요. 각자의 재난을 가지고 재난 스튜디오를 만드는 식의 프로젝트로 가기로 했지요. 그런데 결과적으로 각자의 재난을 가지고 스튜디오를 차리려던 학생들은 자기 과제를 완성하기 위해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수업 끝머리에 가서는 팀 프로젝트가 되고 말았죠. 실은 모두가 서로를 돕고 있었어요. 지금 대학가에서 인권 축제를 벌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인간의 취약성과 상호 연결성을 인지하는 성숙한 대학생들이 조만간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신자유주의적 주체로서 자신의 고유성을 찾아보려고 발버둥을 치면 끝이 없지만, 나의 고유성이 다른 존재와 연결되면서 이루어지는 기적을 잠시나마 경험하게 되면 좀 다른 차원이 열리니까요. 나라는 존재는 고정된 무엇이 아니고 실은 상호작용의 과정에서, 곧 관계/인연의 작동으로 형성되는 것이기에 내가 되기 위해서는 타자를 만나야 하고 함께 일을 벌여야 하고 서로의 곁을 살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죠. 살펴보는 능력이 있으면 보살필 수 있게 되고, 살피지 않는 일방적 돌봄은 타인만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폭력으로 돌아온다는 것도 알게 될 것입니다.
대학은 한때 인권 운동의 보루였고 인권 축제의 장이었지요. 그래서 실은 지금 이 아주 조촐한 자리가 내겐 좀 낯설긴 합니다. 대학생들이 다수가 사회문제를 깊게 고민해보지 않았고 오히려 막연한 반감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듣고 슬퍼했습니다. 어쩌면 학생들이 인권에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좀 더 확장적으로 생명권을 이야기하면 모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사피엔스/인류의 폭력성이 지구상의 생명들을 멸종시키는 ‘인류세’ 시대에 인권 축제는 폭력적으로 들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편 초고속 압축적 근대화를 거친 한국사회에서는 인권 축제와 ‘탈인권/만물 생명권’ 축제가 동시에 벌어져야 하는 것일테지요. 인간 중심적 ‘권리’운동으로 시작하지만 지구상 생명들과 AI를 포함한 여타 존재들과 공존하는 지구를 만들어가는 운동으로 성숙해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쉽지 않지만 꼭 해야 할 캠퍼스의 운동이니 기운 빼지 말고 서로를 북돋우면서 즐겁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이어나가기를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