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감벤 <내가 보고 듣고 깨달은 것> 중에서
묵상 모임 1.
산 자코모 다 로리오에서 종소리를 들었다. 종교인들이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 위해 사용하는 목소리와 종소리 가운데 종소리는 무척 친근해서 들을 때마다 마음이 한결 부드러워지는 것을 느낀다. 목소리는 너무 직설적이라 나를 부를 때 경솔하다는 느낌마저 주는 반면 종소리는 이해가 필요한 말을 하지 않는다. 종소리는 부르지 않는다. 나를 부르는 것도 아니다. 그저 함께하면서 그 맹렬한 울림으로 나를 휘어 감고는 너무나도 감미롭게―울리기 시작할 때처럼 아무런 이유 없이―수그러든다. 아무런 말도 없이 무언가를 말할 수 있는 소리, 그것이 내게는 종소리다. 산 자코모 다 로리오에서 내가 들은 것이 바로 이 종소리다.
2.
‘거울’에서 나는 ‘우리’와 ‘우리 자신’ 사이에 미세한 간극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는 이 간극을 우리의 모습을 인지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으로 가늠할 수 있다. 이 미세한 틈새에서 우리의 온갖 심리학적 상태가, 우리의 모든 신경증과 두려움, ‘나’의 승리와 추락이 유래한다. 우리가 자신을 즉각 알아볼 수만 있다면, 그러니까 이 포착 불가능한 틈새만 없다면 우리는 심리학이 전혀 필요 없는 천사와도 같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심리학과 다를 바 없는 소설도 없을 것이다. 소설이란 등장인물들이 스스로를 알아보거나 오해하는 데 소비하는 시간에 관한 이야기니까.
3.
크레티우스를 통해 나는 신들이 일종의 사이 세계에, 여러 사물들 사이의 틈새에서 살아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훌륭한 신은 디테일에만 있지 않고 무엇보다도 모든 사물을 사물 자체와 분리시키는 미세한 틈새에 머문다. 스스로를 신성하게 만들면서 살아가는 기술은 집이 아니라 문턱에 머물 줄 아는 기량을, 중심이 아니라 여백에 머물 줄 아는 기량을 요구한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신성함이 아니라 후광을 추구할 줄 아는 기량을 요구한다.
4.
함께 살아간다는 것에서, 나는 타자의 존재란 풀리지 않고 공유만이 가능한 일종의 수수께끼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 수수께끼를 함께 나누는 일, 그것을 사람들은 사랑이라고 부른다.
5.
철학이 내게 가르쳐준 것은 무엇인가? 인간으로 존재하는 것은 우리가 아직 인간이 아니었던 순간들을 떠올리는 것과 같다. 인간의 과제는 유아기, 동물적인 것, 신성한 것을, 그러니까 아직은 인간적이지 않았던 순간과 더 이상 인간적이지 않은 순간들을 기억하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