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만에 다시 쓰는 편지 1 우에노 지즈코편
조혜정에게 쓰는 첫번째 편지
살아있을 때만큼은 끝까지 살아주리라
혜정,
이렇게 당신과의 왕복 편지를 재개할 수 있어서 진심으로 기쁜 마음입니다.
예전에 당신과 내가 주고 받았던 여섯 차례의 왕복 편지가 『말은 가 닿을까ことばは届くか』(번역자: 한국에서는 『경계에서 말한다』, 이하 한국책 제목으로 기술)라는 제목으로 이와나미쇼텐과 당대비평 (번역자: 출판사 명은 ‘생각의 나무’)에서 동시 간행된 것이 2004년. 그 때부터 12년이 지나, 당시에는 고령자에 합류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동갑이었던 우리가 지난해에는 희수를 맞았습니다.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에서 통용되는 환갑, 고희 등의 역법과는 달리, ‘희수(㐂寿)’는 일본에서 탄생한 축하 절기라고 합니다만, 럭키 세븐이 두 개 나란히 나열되는 77세라는 연령은 어쩐지 전환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일본에서는 75세 이상을 후기고령자로 정의합니다. 2025년에는 전후 베이비붐 때에 태어난 우리 세대가 모두 후기고령자 시기에 돌입했습니다.
환갑이 되었을 때도 그랬지만, 희수를 맞이해서는 잘도 여기까지 살아왔다고 스스로를 칭찬해 주고 싶은 기분이 듭니다. 주변에는 만사가 순조로웠던 것처럼 보여도, 많은 상실과 아픔을 견디면서 나도 당신도 이 연령까지 살아왔을 터입니다. 이 나이가 되자 인생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 사람은 늙고 언젠가 죽는다는 것, 늙음을 거부할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됩니다.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이 되고 싶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인생은 한번 만으로 족하다”고 대답해 왔습니다. 다시 태어나고 싶지도 않고, 불로장생도 원치 않습니다. 인생에는 끝이 있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하지만 살아있을 때 만큼은 끝까지 살아주리라…고 생각합니다.
부모님 세대나 선배들을 보내드린 뒤, 동 세대의 이 사람 저 사람의 부고를 듣게 되고, 요즘에는 나이가 더 어린 벗의 부고가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전에 나온 책의 일한・한일 통역을 김찬호 씨와 사사키 노리코 씨가 담당해 주었는데, 일본 측 번역자인 사사키 씨의 부고를 부군으로부터 들은 것이 작년이었습니다. 우리들보다 젊은 나이에, 노후를 함께 보내기를 기대하고 있었을, 홀로 남은 동반자의 슬픔을 헤아릴 뿐입니다. 마지막 편지를 주고받았을 때, 당신은 어머님을 간병하는 와중이었지요. 아버님와 이별하고, 어머님을 보내드린 뒤, 이제 당신도 홀로 맞이할 노후를 생각하면 되는 상황이 된 걸까요?
그런 당신으로부터, 생각지도 못하게, 둘이 함께 희수를 축하하자는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초대가 도착한 것은 지난해 봄이었습니다. 당신이 이주한 제주도의 ‘할머니들의 공동체’의 삶을 보러 오라는 제안에, 나 또한 꼭 가 보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바쁜 생활에 휩쓸려서 좀처럼 실행에 옮기지 못했던 계획을 이번에는 반드시 실현하겠다고 마음먹었어요. 권유에 따라 제주도의 기후가 제일 안정적이라는 10월을 선택하고, 이 일정만큼은 절대로 확보할 의지로 여행을 준비했습니다.
실제로 가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원래 당신은 서울 중심가에 살았던 만큼, 서울과 제주도를 왔다 갔다 하면서 살고 있겠지 짐작했는데 웬걸 제주도에 완전히 이주해서 공동체 주민이 되어 있더군요. 그 뿐 아니라, 비슷한 세대의 동지들도 공동체로 끌어들여서, 혼자 사는 여성들의 주거 단지를 만들었더군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이주한 지 4년 밖에 안 되는 동안 원래 있었던 지역 공동체에 개입해서, 고령의 여성들(할머니)과 함께, 믿을 수 없는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었어요. 그리고 그 변화 중인, 새롭고 오래된 공동체에 나를 초대해 주었던 것입니다. 혜정, 당신은 어디를 가도, 누구에게도, 배움과 성장을 이끌어내는 기획자(오가나이저)로군요!
독거 할머니들이 사는 작은 동네에, 당신은 서울에서 온 아티스트를 끌어들여 그림 교실을 열었습니다. 한 할머니가 그림을 통해 자기 표현에 눈을 뜨고, 숨겨진 재능을 발휘해 작품을 하나씩 만들게 되었습니다. 채소나 동물 등 주변의 대상에서 시작해, 어느새 괴물 그림이나 자화상 등 컬러풀하고 대담한 작품을 그리게 되었습니다. 이에 자극 받은 다른 할머니들이 그림 교실에 연이어 참가했고, 지금 그림 교실은 할머니 화백들의 공유 아틀리에가 되었습니다. 할머니들은 편한 시간에 그 곳에서 창작 활동을 합니다. 베이어 판에 입체적으로 그려진 거대한 작품도 있고, 키홀더로 쓰기 좋은 귀여운 사이즈의 작품도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작품이 쌓이자, 할머니들은 갤러리 전시회를 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갤러리라니, 도대체 어디에? 그녀들은 과거에는 반농반어업을 위해 활용했던 마당에 있는, 지금은 쓰지 않는 축사나 농기구용 창고를 각각의 방식으로 개인 갤러리로 개조했습니다. 제대로 된 문도 벽도 없는, 바람이 드나드는 허술한 건물입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할머니들은 갤러리의 주인입니다. 자기 갤러리에는 다른 작가의 작품은 두지 않습니다. 화가 본인의 등신대 패널이 입구에 서 있고, 할머니 한 분 한 분이 여왕처럼 자신감 넘치게 파안대소하고 있습니다. 그런 개인 갤러리가 작은 동네 여기저기에 있어서, 즐겁게 돌아볼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한 갤러리의 주인은 제주도의 해녀 출신이었습니다. 그녀의 작품은 바다에서 해산물을 한가득 따서 돌아오는 젊은 시절의 해녀 모습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그 뿐 아니었습니다. 제주도는 ‘4.3사건’이라고 부르는 참극이 벌어졌던 섬. 실은 내가 제주도에 가는 것을 주저했던 것에는 그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제주도는 지정학적 위치나 기후, 문화 등이 닮아서 ‘한국의 오키나와’라고 불리는 큰 관광지이지만, 나는 제주도처럼 오키나와에 발을 들이는 것에 대해서도 오랫동안 주저했습니다. ‘비극의 섬’이라는 점에서 오키나와와 제주도는 공통점이 있는데, 그런 역사에 둔감한 젊은이나 가족이 리조트에 놀러가기 위해 가볍게 방문하는 남도라는 점에서, 두 섬은 비슷합니다. 그리고 그 두 비극 모두 일본인인 나는 모르는 척 지나갈 수 없습니다. 제주도에 머무르면서 4.3기념관을 방문했습니다. 반도의 민족이 얼마나 큰 고난을 겪어 왔는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1948년 4월 3일, 동포가 서로를 살상하는 참극을, 지금 80대, 90대인 할머니들은 소녀로서 경험했습니다. 한 할머니는 10살 때에 남동생을 업고 도망쳤던 기억을 지금도 갖고 있습니다. 그림을 그리게 된 이후, 할머니들의 자기 표현은 점점 더 넓고 깊어져 왔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그녀는 오랫동안 봉인해 왔던 10살 때의 기억을 끄집어내어 그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그림은 비극의 현장에서 도망치는 소녀의 건너편에 무지개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무지개는 평화를 향한 희망, 실제로 도망친 곳에서 보았던 무지개의 선명한 기억을, 그녀는 재현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그림은 할머니들에게 있어서, 미술테라피 같은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갤러리 순회 투어가 어느새 섬의 관광 자원이 되어, 도시에서 온 관광객들이 할머니들의 작품을 구입하게도 되었던 것입니다! 화구나 물감, 아틀리에의 유지 관리비, 강사 인건비 … 도대체 어떻게 운영하고 있는 것일까, 궁금했던 수수께끼가 풀렸습니다. 이토록 큰 변화를 고작 4년 사이에, 무대 뒤에서 팔짱을 끼고 빙글빙글 웃고 있는 혜정이 일으켰던 것입니다.
서울의 하자센터(청소년 센터)에서는 혜정은 초대 관장으로서 젊은이들의 창의성을 끌어내는 장치를 만들었습니다. 제주도에서는 할머니들의 창조성을 자극해 자기 표현의 장을 만들어냈습니다. 혜정, 몇 번이나 말하지만, 당신은 어디에서도 누구에게도 엄청난 교육자로군요!
그 아틀리에에 끌려 들어가, 아티스트의 지도 하에 그림을 그리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림이라니… 몇 년 동안 붓을 잡아본 적도 없습니다. 하지만, 초심자의 마음으로 캔버스 앞에 앉는 것은 신선한 즐거움이었습니다. 그림을 다 그린 뒤, 서프라이즈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보라색 크림으로 데코레이션한 큼직한 케이크가, 당신과 나의 희수를 축하하면서 ‘해피 버스 데이 ‘ 노래와 함께 등장했던 것입니다. 덧붙이자면, 보라색은 희수를 상징하는 색깔. 그러고 보니 보라색 옷을 갖고 오라고 미리 조언을 해 주었었죠.
다음날의 희수 잔치는 더 본격적이었어요. 이 지역의 할머니들 뿐 아니라, 서울에서 이를 위해 날아온 당신의 동료와 지인, 친구들, 나와도 오랜 인연인 김은실, 김현미 등도 차례로 합류해, 이주자들의 거주 단지의 커뮤니티 하우스에서 노래하고 춤추는 대연회가 시작된 것입니다. 하이라이트는 77세를 축하하는 거대한 데코레이션 케이크! 이 정도의 이벤트를 꾸미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단 말인가 감탄하지만, 혜정 당신은 검은 옷의 조력자(번역자: 가부키 등 일본 전통 예능에서 무대 뒤에서 돕는 사람)처럼 곁에서 싱글싱글 웃고 있을 뿐입니다. 당신의 인격과 매력에 이끌려 모여든 개성 만점인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친구로 삼은 당신은 이렇게 멋진 여성이었구나, 새삼 스스로의 행운에 기쁨을 느꼈습니다.
제주에 체재하는 동안에는, 재회를 계기 삼아 ‘『경계에서 말한다』, 그 이후’의 둘의 대담을 온라인으로 발신한다든가, 일본의 개호보험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는 시간도 있었죠. 정말 알차고 충실한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제주도에서 보낸 4일간은 잊을 수 없는 나날이었습니다. 이렇게 값진 추억을, 우리 둘 공통의 기억으로 만들어 주어 정말로 고맙습니다. 우정이라는 것이 있다면… 나는 제주도에 머물면서 당신의 따뜻함과 배려에 감싸여 지냈습니다. 이 얼마나 큰 선물이었는지요!
제주도는 당신에게도 추억의 땅입니다. 당신이 인류학자로서의 연구 인생의 출발점이 된 학위 논문의 주제가, 제주도의 해녀들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당신이 제주도에 만든 이주자 공동체에는, 제주도와 인연이 없었던 사람이나, 오랫동안 해외 생활을 하다가 남편이 세상을 뜬 이후에 단신으로 고국에 돌아온 고령의 독신 여성도 있습니다. 확실히 ‘한국의 오키나와’라고 불릴 정도로 온난한 기후의 남쪽 섬은, 고령자가 살기 좋은 곳일 지도 모릅니다. 그 뿐 아니라, 현지에는 아이를 자유롭게 키우고 싶은 부모들에게 반가운 대안 학교도 있어서, 그 곳에 아이를 다니게 하려고 도시에서 온 학부모도 살고 있습니다.
‘시티 걸’이었던 그 혜정이?! 라고 나는 놀라울 뿐이지만, 어찌 되었든 제주도는 당신에게 단지 세컨드하우스가 아니라 영구히 정착하는 땅인 듯합니다.
12년 전, 우리들의 왕복 편지는 이렇게 마무리되었습니다.
“아무튼, 청소년들이 새로운 모험에 뛰어들듯, 우리들도 포스트모던한 노후라는 모험을 향해 출항하기로 할까요?”
당신이 만든 공동체 주민들도 틀림없이 나이가 듭니다. 고령이 될수록 몸은 부자유스러워지고, 치매가 될 지도 모릅니다. 아직 이주자 공동체 안에서 누군가를 떠난 보낸 경험은 없었다고, 당신은 말했었지요.
만약 그런 때가 온다면, 누가 누구를 돌볼 수 있을까? 그렇게 되기 전에 동네 할머니들이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된다면 어떻게 하나? 일본은 2000년에 개호보험을 시행했고, 한국은 2008년에 한국판 개호보험을 만들었습니다. 그것들이 어디까지 제대로 기능할까? 지역에서 개호 인력을 확보할 수 있을까?
일본의 개호보험의 앞길도 험난합니다. 우리들은 죽어도 죽을 수 없는, 미증유의 고령화 사회의 현실에 직면했습니다. 개호 보험이 시행된 이후 25년동안 나는 개호의 현장을 꾸준히 연구해 왔습니다. 언젠가 그 현장의 이야기를 들려줄게요.
그렇기 때문에, 당신이 제주도에 만든 이주자 공동체의 앞날에 대해서도 눈을 뗄 수가 없습니다. 전후에 태어난 우리들 세대가 어떻게 나이들고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인류사적인 실험이 시작되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겠죠.
혜정, 당신은 언제나 나의 호기심을 발동시킵니다.
2026년의 세계는 되돌리기 어려운 비참함과 혼란스러울 뿐이지만, 우리들의 이 왕복 편지의 출항은 희망에 가득차 있기를 바랍니다.
2026년 연초에
치즈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