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에노 편지 3신
다시 한번 “경계에서 말한다”(3)
혜정,
당신의 편지를 읽는 것은 늘 내게 기쁨이지만, 종종 폭소를 터뜨리고 맙니다. 어느 부분에서 웃음이 터져 나오는지는 뒷부분에 쓸게요.
‘일본 최초의 여성 총리’에 대해 내가 ‘기쁘지 않다’고 쓴 것을 뒷받침해 주는 여러 역사적 사실을 알려줘서 고마워요. 박근혜가 ‘위기에 강한 대통령’으로 지지를 호소했던 것도, 충분히 그럴 만하다고 느꼈습니다. 여성 후보자에게 여성의 지지가 모이지 않는 것에 대해, 한국의 남성들이 ‘왜 여성들이 여성 대통령을 선택하지 않는가’라며 화를 내는 것도 똑같지요. 영국의 총리였던 마가릿 대처도 ‘위기를 돌파할 인물’로서 ‘영국에는 남자가 딱 한 명밖에 없다. 바로 마거릿 대처다’라는 논리로, 그 무단정치가 지지를 받았던 것 같습니다.
다카이치 총리는 취임 이후 하나씩 하나씩 군사주의적 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세계 유일의 피폭국으로서 전후 일본의 국시였던 비핵 3원칙, 즉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고, 만들지 않고, 반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폐기하고, 무기 수출 5개 항목(구난, 수송, 경계, 감시, 소해)에 대한 제한을 없애려 하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무기 수출을 제일 많이 하는 군사대국 탑 3는 미국, 프랑스, 독일, 그 뒤를 이탈리아, 러시아, 중국이 잇고 있습니다. 한국도 8위에 올라 있죠. 이에 대해 일본은 21위. 군수산업은 수익이 크고 효율도 높습니다. 국가가 에누리없이 구매할 뿐 아니라, 파괴를 목적으로 사용한 뒤에는 지속적인 보충이 필요하고, 게다가 기술 혁신의 최전선이기도 합니다. 우크라이나 전장이 미국이 구형 무기 실험장으로 활용된다는 이야기도 있고, 일본은 오랫동안 미국의 낡은 무기를 잠자코 구매해 준 단골 고객이었습니다. 인터넷이나 GPS가 군사 목적으로 진화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구형 무기가 소진된 뒤 지금은 우크라이나 전장은 무인 드론을 활용한 군사 기술의 최전선이 되었다고 합니다.
다카이치 총리는 무기수출 5개 항목에 대한 제한 철폐와 함께 군수산업화 강화를 꾀하는 것에 대해, 반세기 거슬러 올라가1976년에 당시 외무대신, 이후에 총리가 되는 미야자와 키이치(宮澤喜一)는 무기 수출의 제한과 관련해서 “설령 어느 정도 외화를 벌 수 있다고 해도, 우리나라는 무기를 수출해서 돈을 벌 정도로 타락하지 않았다’고 국회에서 답변한 것을 인용하며, 평화주의 정당인 공명당 의원이 견해를 바로잡았습니다. 다카이치 총리의 답변은 ‘안보 환경이 가속적으로 변화하는 가운데, 억지력(역자 주: 적국의 공격과 위험을 억제하는 힘. 직접적 공격에 대한 방어가 아니라, 적이 공격을 주저하도록 강한 군사력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맥락)을 향상시킬 필요가 있다’라는 것이었죠. 힘으로 평화(라는 이름의 세력 균형)를 유지하는 트럼프주의 그 자체입니다.
바로 그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행하는 파괴와 공격. 세계 최강의 군사력으로 복종하지 않는 자를 짓밟아 침묵시키겠다는 폭거입니다. 1월에 베네수엘라를 갑작스럽게 공격해 마두로 대통령을 구속하는 폭거에 망연자실했고, 3월에 이란을 기습 공격해서, 최고 지도자인 하메네이를 살해했을 때에도 할 말을 잃었습니다. 무력으로 상대를 굴복시키는 공포정치에 전 세계가 휘말려 들어가서, 트럼프를 멈춰 세울 사람은 아무도 없어 보입니다. 걸프 지역에서 석유를 유통시키는 경로인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 때문에 대혼란에 빠진 뒤, 전세계가 어떻게 서로 의존하고 있는지도 분명해졌습니다. 하지만 유엔은 아무런 힘이 없이 속수무책입니다. 일본도 한국도 석유가 나지 않는 나라입니다. 당신도 나도 차를 운전하지만, ‘자동차도 석유가 없으면 그저 상자에 불과하다’고 자조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 뿐 아니죠. 비닐 제품이나 플라스틱 봉지 등 수많은 석유화학제품을 물쓰듯 쓰면서 이렇게 살다가는 언젠가 벌을 받는 것은 아닌가…라고 느꼈던 나날을, 씁쓸하게 되돌아 보게 됩니다.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국제형사재판소는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과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총리에 대해 전쟁범죄자로 규정하고 ‘체포영장’을 발부했습니다. 그렇다면 트럼프 역시 ‘전쟁범죄자’라고 보아야 마땅하겠죠. 미국은 조약에 가입하지 않았지만, 가맹국은 영장이 발부된 범죄자를 체포할 의무가 있습니다. 일본은 가맹국이니까, 그들이 일본에 발을 들이면 체포하게 되까요? 덧붙이자면 현재 국제형사재판소장은 일본인 여성인 아카네 토모코 (赤根智子)씨입니다. 러시아 정부는 아카네 씨를 포함해 국제형사재판소의 판사 3명에 대해 유죄판결을 내린 바 있습니다.
트럼프의 둘도 없는 동지를 자처하는 다카이치 총리는 총선거 이후 첫 해외 출장지인 미국에서 시험대에 오를 뻔 했습니다. 이란 침공으로 분주한 미국이 동맹국에 군사 지원을 요청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도 한국도 미국을 돕지 않았다’고 불만을 터뜨린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호르무즈 해협에 자위대 전함을 파견해달라는 요청에 대해, 다카이치 총리는 ‘일본의 법률상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이 있다’며 빠져나왔습니다. 그 억지력으로 작용한 것이 헌법 9조입니다.
다카이치 총리의 군사주의화가 도달하려는 최종 목표는 ‘헌법9조 개정’입니다. 비핵3원칙의 파기, 무기수출 5개 항목 제한 철폐는, 그 목표로 가기 위한 포석에 불과합니다. 헌법 개정 발의에는, 국회의원 3분의 2의 찬성이 필요합니다. 직전의 총선거에서 중의원 465의석 중 자민당 단독으로 316의석이라는 절대 안정 다수를 획득한 다카이치 정권은, 그녀의 후견인이자 전후 최장 재임 기록을 달성한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조차 이루지 못한 개헌이라는 숙원을 재임중에 실현한다면 정치가로서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일본이 전후 80년동안 지켜 왔던 평화주의를 여성 총리의 손으로 내버린다니… 이 무슨 역사의 아이러니란 말입니까?
하지만, 시민도 이를 묵인하지 않습니다. ‘평화’와 ‘반전’을 외치는 수만 명 단위의 시민들이 국회 앞으로 모이고 있습니다. 소중하게 ‘팬 활동(오시카츠)’에 사용해 왔던 응원봉을 들고, 랩의 리듬에 맞춘 구호와 연호가 커지고 있습니다. 밤에 이루어지는 데모에서 응원봉을 사용하는 것은 한국의 데모 문화의 영향이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촛불집회였는데, 촛불은 꺼지기 쉽기 때문에 응원봉으로 바뀌었다고 하죠. 어딘가 모르게 축제 같은 분위기로 데모의 문턱이 낮아지고, 여성 참가자도 늘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한국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뜬금없이 계엄령을 선포했을 때, 응원봉을 들고 거리로 나선 사람들 중에도 여성이 많았었지요. 그 때는 군대가 출동한다는 이야기도 있었으니까 목숨을 건 행동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서울에 있는 우리 WAN (역자주:우에노 치즈코가 설립한 비영리 단체Women’s Action Network, https://wan.or.jp, 페미니스트 네트워크로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동지들도 현장에서 실시간 중계를 해 주었는데, 보는 우리들도 손에 땀을 쥐었습니다. 그 때에, 군대의 일부가 대통령의 명령에 따르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미군 내부에서도, 이 정도로 심각하게 국제법을 위반하는 전쟁 행위에 대한 명령을 거부하는 군인은 없는 것일까요? 나치가 전쟁에서 패배한 뒤 뉘른베르그 재판에서는 ‘인도에 반한 죄’로 명령에 따른 군인들도 처벌되었습니다. 대통령도 그의 명령에 따른 군인들도 언젠가 ‘전쟁범죄자’로서 역사의 법정에서 심판을 받는 것… 그 작은 가능성에 기대를 거는 수밖에 없을까요?
데모의 이야기라면, 얼마 전 3월 6일, 일본판 ‘여성의 휴일’이 실현되었던 것을 당신에게 보고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세계 경제 포럼이 매년 발표하는 성차별지수 세계 랭킹 1위를 16년동안 유지하고 있는 아이슬랜드의 여성운동에 대한 다큐멘터리 <여성의 휴일>이, 한국에서 공개된 적이 있나요? 아이슬랜드도 반세기 전에는 흔히 볼 수 있는 남존여비 사회였습니다. 50년전, 1976년 10월24일 여성인구의 90%가 참여했다고 하는 ‘여성의 휴일’이 실현되고, 그 때부터 50년동안 아이슬랜드는 여성 대통령, 여성 총리, 관료의 절반 이상이 여성… 이런 사회를 만들어 왔습니다. 그 50주년 다큐멘터리가 지난해 10월24일에 일본에서 공개되어, 그 영화를 본 일본의 여성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습니다. 이 영화를 일본에 갖고 온 회사는, 모리시타 우타코(森下詩子)씨라는 여성이 홀로 운영하는 영화배급사입니다. 바로 다음날인 10월25일 일본판 ‘여성의 휴일’ 프로젝트의 킥오프 회의가 열렸고, 이후 반년 동안의 준비를 거쳐 올해 3월6일 전국 각지 500곳 이상에서, 총 1만명에 가까운 여성이 집회, 좌담회, 스탠딩 시위에 참여했다 소식이 온라인 네트워크에 공유되었습니다. 이 영화, 한국에서도 상영되었나요?
여기에서 ‘다메렌’의 이야기로 돌아가 봅시다. 여성들은 사회를 바꾸겠다는 생각으로 들고 일어났지만, ‘다메렌’은 “사회를 바꿉니까?”라는 나의 질문에 “안 되겠지요(다메데쇼). 다메렌이니까요.”라는 답이 돌아왔고, 나는 힘이 탁 풀렸습니다. 하지만 “그러니까 안 되는 거지”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는데, 이 때에 깨달은 것은 그들이 이미 변화한 이후의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당신이 말하는 것처럼 ‘그들의 존재 그 자체가 사회를 바꾸고’ 있습니다. ‘지즈코 표현대로 회사에 종속된 ‘사축’도, 집에 종속된 ‘가축’도 되기를 거부하고 제3의 길을 가고자 한 그들이야말로 ‘제국 이후’의 삶을 이미 살아가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크게 웃음을 터뜨린 것은 여기서였습니다. 당신이 1998년에 ‘전국백수연대’의 친구들을 데리고 일본에 왔을 때를 묘사한, “주 대표(역자주:전국백수연대 주덕한 대표)가 ‘무기력한’ 그들(역자주:다메렌 족)을 안타까워하면서 한 수 가르쳐주려고 무진 애를 썼죠. 상황이 눈에 선하죠?”라는 대목. 그들의 만남은 결국 ‘접점을 찾지 못했다’는 결말로 끝났었는데, 이후 30년 후, 한국에도 ‘다메렌 족’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로군요. 경쟁 사회와는 무관하게 느긋하게 생활하고, 노인이나 약자에게 다가가며, 스스로의 약함을 드러내고 서로 돌보는 것… 사회가 바뀌는 것을 기다릴 수 없다면 ‘내일의 혁명보다, 오늘의 해방을’이라는 것이, 반세기 전 일본의 ‘여성해방운동’이 내세운 구호 중 하나였습니다. 바로 지금의 순간을, 보증하기 어려운 미래를 위해 희생하지 않는다… ‘미래’가 차차로 줄어드는 연령이 되면서 이 구호가 더욱 마음에 와 닿습니다.
그러고 보니, 최근 낸시 프레이저(Nance Fraser)가 일본을 방문해서 동경대에서 강의를 했어요. 프레이저라면, ‘분배냐, 인정이냐’ 논쟁(역자 주:낸시 프레이저와 악셀 호네트가 대담 형식으로 낸 저작, <분배냐, 인정이냐: 정치철학적 논쟁>(2014년, 사월의 책)을 뜻함. 이 논쟁에서 프레이저는 자본주의적 부조리를 인정과 정체성의 질서로 환원시키는 것을 비판했다)에서 물의를 빚었죠. 또, ‘페미니즘이 왜 자본주의의 시녀가 되어버렸는가’라는 에세이로 논쟁을 불러 일으켰고, ‘99% 페미니즘 선언’(역자 주: 친지아 아루짜, 티티 바타차리야, 낸시 프레이저가 2019년 함께 펴낸 선언문 형식의 책, 2020년 도서출판 움직씨에서 출간되었다)에서는 신자유주의에 용감하게 도전장을 내민 정치학자입니다. 그녀를 초청한 두 젊은 철학자, 고쿠분 고이치로(國分功一郎)씨와 사이토 코헤이(斎藤幸平)씨의 기획으로, 프레이저와 나의 대담도 성사되었습니다. 동경대에서의 강연 시리즈에서 그녀는 ‘착취 exploited’ ‘수탈 expropriated’에 덧붙여, ‘가내화 domesticated’라는 세번째 노동 유형을 추가했습니다. ‘착취’란 표면적으로는 등가 교환처럼 보이는 노동 계약 속에 숨어 있는 잉여 가치의 탈취를 뜻하고, ‘수탈’이란 이에 폭력이나 구속 등의 강제력이 더해진 더 가혹한 약탈을 뜻합니다. ‘가내노동’은 노예나 주부와 같은 무급 노동을 가리킵니다. ‘domesticated’는 번역하기 어려운 단어입니다. 직역하면 ‘가축화된’이 됩니다. 야생 동물이 ‘가축화’되었지 판단하는 지표는, 우리의 문을 열어두어도 밖으로 나가지 않는 상태라고 합니다. 스스로 남편에게 헌신하는 아내는 어쩌면 ‘가축화’되었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나는 ‘순치 馴致’라는 일본어 표현을 떠올렸습니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노동처럼 보이지 않는 노동, 평가도 대가도 없는 노동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오늘날 ‘돌봄 노동’이라고 불리는 가정의 ‘무급 노동’이, 자본의 계속적이고 본원적인 축적의 기반에 있나는 것을 간파한 것은, 여성판 ‘세계 시스템론’의 마리아 미즈(Maris Mies, 역자 주:<여성, 최후의 식민지>(클라우디나 폰 벨로트, 베로니카 벤홀트-톰젠과의 공저, 절판), <에코 페미니즘>(반다나 시바와의 공저, 2020년, 창비)을 쓴 독일의 페미니스트 학자) 입니다.
생각하면 트럼프 이후의 세계는 착취 뿐 아니라, 무력을 사용한 명백한 약탈로 가고 있다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어쩌면, 지금까지 은폐되어 왔던 무력에 의한 강제가, 너무나 명백한 방식으로 ‘가시화’되었다고 말해야 할 지도 모르겠네요. 베네수엘라의 마두로 대통령을 폭력으로 납치한 뒤, 석유와 관련한 이권을 ‘미국의 관리 하에 둔다’든가,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해서 이란과 공동 관리하며 통행료를 반으로 나눈다든가 하는 말까지 나오니, 놀란 입이 다물어지지 않습니다. 부를 약탈하기 위해서는 그 어떤 무력 행사도 마다하지 않는 것이 트럼프 류의 ‘딜(거래)’인 것 같습니다. 주권 국가도 국제 질서도 미국의 강대한 군사력으로 짓밟히는 상황에서 국제 사회는 무법 지대가 되어 버렸고, 유엔의 무기력함에도 나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을 ‘석기시대로 돌려놓겠다’고 폭언을 하지만, 노골적인 폭력으로 사람들을 지배하는 석기시대를 살고 있는 것은 트럼프 바로 그 자신입니다. 아니, 이렇게 말하면 석시시대 사람들에게 실례가 되겠네요. 그들은 부족끼리 늘 힘겨루기를 한 것이 아니라, 서로 돕고 의지하며 살았습니다.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힘 뿐 아니라 신망을 얻어야 합니다. 당신이 말하는 것처럼, “‘역사 이전’, 즉 선사시대의 삶에서 배우고, ‘역사 이후’ ‘국가 이후’ ‘제국 이후’의 삶을 만들어낼 필요”가 있는 것이겠지요. 최근 아나키즘에 대한 관심도, ‘국가 이전’ 그리고 ‘국가 이후’ 사회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는 신호처럼 생각되어 집니다.
혜정, 당신은 청년이나 교육에 관심을 갖고 돌보는 사회를 추구해 왔습니다. 나는 주부의 무임 노동에서 출발해서, 고령자의 돌봄을 연구 주제로 삼아 왔습니다. 이제 돌봄은 어린이, 장애인, 고령자를 포함하는 넓은 개념으로 정착했습니다. 그 뿐 아니죠. 겉으로는 자립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돌봄에 의존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오랫동안 ‘보이지 않는 노동’이었던 ‘돌봄을 사회의 중심으로’라는 구호가, 일본의 돌봄 종사자들로부터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개호보험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들의 돌봄사회를 만드는 모임’이라는 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내가 쓴 <돌봄의 사회학>이 한국어로 번역, 출간되고, 그것을 읽은 당신의 동료 인류학자들이 일본의 개호 현장을 시찰하는 투어가 다음달에 예정되어 있습니다. 지금 그 투어 기획자로서 프로그램을 작성하고 있는데, 당신들이 일본의 개호 현장을 보고,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생각할지 기대가 큽니다. 어떤 현장도 살아있는 존재입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어떻게 성숙했는가, 어떤 과제에 직면했는가, 세대 교체는 이루어지고 있는가… 지금까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다양한 시설을 꾸준히 관찰해 왔습니다. 개호보험 시행 이후 25년이 지난 지금의 현장을 보는 것을, 나 자신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황금 연휴, 숲 속 집에서
치즈코